83년 만에 짝 찾은 월성 비편…AI가 맞춘 역사의 퍼즐

이종길 2026. 10. 2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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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에서 나온 비석 조각 두 점의 연결 가능성을 식별한 쪽은 연구자의 가설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었다. 신라 기와의 생산·유통 구조를 추적하는 연구로 활용 폭이 넓어질 수 있지만, 데이터 품질과 표준은 과제로 남았다.

AI 분석의 경위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한국고고학회가 22일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AX 시대의 신라 기와 연구,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주제로 연 공동 학술 연수에서 드러났다.

AI가 이를 정밀하게 대조하면 같은 와범으로 만든 기와를 자동으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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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데이터 융합 기술로 파편 결합
신라 기와 생산망 추적으로 연구 확장
데이터 품질·데이터 기준 합의는 과제

월성에서 나온 비석 조각 두 점의 연결 가능성을 식별한 쪽은 연구자의 가설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었다. 신라 기와의 생산·유통 구조를 추적하는 연구로 활용 폭이 넓어질 수 있지만, 데이터 품질과 표준은 과제로 남았다.

경주 월성 서편 수습 비편/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월성에서 수습한 비편 두 점은 83년의 시차를 두고 따로 나왔다. 하나는 1937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직원이던 최남주씨가 월성 서편 지표에서 발견했다. 다른 하나는 2020년 월성 해자 발굴 현장 배수로 교란층에서 발굴됐다. 두 점은 지난해 5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국립경주박물관의 공동 조사에서 한 개체로 확인됐다. 파손된 면이 틈 없이 맞물렸다. 붙이면 가로 27.19㎝, 세로 16.58㎝, 무게 3.93㎏으로 두 손바닥을 합친 것보다 조금 크다. 남은 글자는 학자별 집계로 15~17자이며, 서체는 고구려 '광개토왕비'와 닮았다.

AI 분석의 경위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한국고고학회가 22일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AX 시대의 신라 기와 연구,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주제로 연 공동 학술 연수에서 드러났다. 서현주 캐럿펀트 이사는 "이번 프로젝트가 지니는 가장 큰 기술적 의의는 두 비편의 결합이 전문가의 육안 관찰이나 사전 가설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캐럿펀트 연구진의 프로토타입 서버에는 여러 기관의 유물 3차원(3D) 스캔 데이터가 쌓여 있었다. AI 모델은 이 자료로 다중 연산을 하다 두 점의 연결 가능성을 스스로 식별했다.

깨진 면의 비교는 쉽지 않았다. 두 조각은 수습 시기와 매장 환경이 달라 깨진 면 일부가 심하게 닳은 상태였다. AI는 조각 전체가 아닌 국소 부위의 불규칙한 굴곡을 가벼운 패턴으로 줄여 비교했고, 두 면의 형태 정보가 같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서 이사는 "인간 전문가의 선행적 판단 없이도 숨겨진 고고학적 사실을 규명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캐럿펀트의 다중 데이터를 활용한 유기적 분석 프로토타입.

이번 성과는 앞선 연구의 연장선이었다. 캐럿펀트는 지난해 한국고고학회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 '빅데이터 시대의 고고학'에서 3D 메쉬(표면을 수많은 작은 면으로 쪼개 입체로 옮긴 모델)를 분석해 형태 유사도를 가리는 알고리즘을 제안했다. 월성 해자 출토 수막새를 포함한 3D 데이터로 학습시켰지만 연산 부하가 커서 실제 검증은 여섯 점에 그쳤다. 연구진은 올해 국가유산진흥원이 주최한 학술대회 '디지털 고고학 기술 적용의 실제와 한계'에서 이 한계를 넘는 틀을 내놓았다. 딥러닝으로 표면의 국소 특징을 가벼운 수치로 압축해 대규모 3D 데이터를 한꺼번에 연산하는 방식이었다.

집중 연구 대상은 기와였다. 와범(瓦範)이라는 일정한 틀로 대량 생산돼 형태가 규칙적이기 때문이었다. 서 이사는 "기와는 AI 기술을 적용해 분석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특성을 지닌 대상"이라며 와범을 공유한 기와나 제작 집단을 묶어 보는 데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3D로 분석하면 눈이나 평면 사진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표면의 미세한 질감과 와범의 흔적까지 읽을 수 있다. 같은 틀로 찍은 기와, 곧 동범와(同?瓦)를 구분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서 이사는 "당시 기와가 어떻게 만들어져 퍼지고 쓰였는지까지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방향의 제안은 다른 발표에서도 나왔다. 이은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특별연구원은 3D 형상 데이터를 비교해 접합 확률이 높은 파편을 AI가 연구자에게 제안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그는 출토량이 많은 대규모 유적에서는 수작업만으로 접합 가능한 파편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며 AI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럿펀트의 월성 출토 비편 디지털 접합 복원.

동범와 판별에도 AI를 쓸 수 있다는 구상이다. 와범은 오래 쓰면 닳거나 깨지는데, 그 흠집이 기와에 그대로 찍힌다. 막새(처마 끝에 얹는 문양 기와)의 문양에 남은 이런 흔적을 범상이라 한다. AI가 이를 정밀하게 대조하면 같은 와범으로 만든 기와를 자동으로 찾을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생산지와 소비지 유적 사이에서 동범와를 확인하는 작업은 기와의 생산과 유통 관계를 추적하는 핵심적인 공간적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석의 관건은 데이터다. 캐럿펀트는 자체 개발한 3D 기록 소프트웨어로 유물 자료를 연간 약 3만 점씩 모아 누적 12만 점을 확보했다. 실측 도면을 그리기 위해 고정밀 스캐너로 얻은 자료여서 품질을 고르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도면을 그리는 연구자가 특징 부위를 정해 단면을 뽑고 중심축을 잡는 판단 과정도 소프트웨어에 순서대로 기록된다. AI가 완성된 형상뿐 아니라 전문가가 유물을 읽는 과정까지 배우게 하려는 시도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다. 서 이사는 "3D 데이터를 2D 이미지처럼 완벽하게 읽어내고 그 의미를 스스로 판단하는 AI 기술이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데이터의 품질도 걸림돌이다. 스캐너가 얼마나 촘촘하게 읽는지, 여러 방향에서 찍은 스캔을 어떤 기준으로 이어 붙이는지, 표면을 어떻게 다듬고 잡티를 지우는지에 따라 같은 유물도 분석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국가유산청이 공개한 3D 데이터는 수량이 제한적이고, 표면을 나눈 면이 성겨 AI가 학습하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서 이사는 "3D 스캔 표준 가이드라인을 최신 기술 수준에 맞춰 고치고, 국가기관과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이 데이터를 서로 호환할 수 있는 기준에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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