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사 안건엔 '후하게', 주주 안건엔 '깐깐'... 주총 '집사' 10년의 민낯

류승연 2026. 10. 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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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시대,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은 고객과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기관들이 실제로 어떤 안건에 반대했고, 왜 찬성했는지 전체 가입기관을 놓고 따져본 조사는 사실상 없었다.

다만 기관투자자들이 회사 안건과 주주 안건을 같은 잣대로 들여다봤는지, 이것이 스튜어드십의 실질을 평가할 때 중요한 지점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외부 기관 3곳 중 2곳이 반대한 안건에서 계열 운용사는 판단을 내놓지 않았고, 안건은 찬성률 84.9%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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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는 누구를 위해 일하나②] 스튜어드십 코드 10년, 265곳 기관투자자 의결권 19만7079건 전수 분석

투자의 시대,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은 고객과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를 규정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 <오마이뉴스>는 자산운용사 265곳의 지난 10년간 투자 활동 20여만 건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세계 최초 도입국인 영국도 직접 찾았습니다. 한국 운용사들의 침묵과 영국의 대답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류승연, 이진민, 복건우 기자]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남의 돈을 맡아 굴리는 기관투자자는 주주총회에서 어떻게 표를 던졌을까.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들고만 있지 말고, 투자한 회사의 지배구조와 경영을 감시하는 '집사(steward)' 노릇을 하라는 원칙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기관들이 실제로 어떤 안건에 반대했고, 왜 찬성했는지 전체 가입기관을 놓고 따져본 조사는 사실상 없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ESG기준원이 운영하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된 가입기관 265곳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모았다. 기간은 기관별 코드 가입 시점부터 올해 8월 7일까지, 모두 19만 7079건이다.

결과를 보면, 상장사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기록이 확인되는 곳은 4곳 중 1곳뿐이었다. 가입기관은 해마다 늘었지만 실제 주주활동은 일부 기관, 일부 업권에 몰려 있었다. 가입기관 265곳 가운데 자산운용사가 67곳이다.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 같은 기관의 가입도 꾸준히 이어졌다.

스튜어드십코드 10년, 의결권 19만 7079건이 남긴 것… 가입과 선언, 실천은 따로?
▲  가입은 265곳, 일한 흔적은 4곳 중 1곳.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하지만 의결권 행사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은 68곳(25.6%)에 그쳤다. 공시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랐다. 자본시장법상 공시 의무가 있거나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연기금·은행·보험사(10곳)와 자산운용사(67곳 중 55곳)는 대부분 내역을 공개했다.

반면, PEF 77곳과 벤처캐피털 등 기타 기관 97곳에서 상장사 의결권 행사 내역은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공모펀드와 달리 일반에게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는 PEF 상당수는 코드 원칙에 따라 '보고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정작 보고 대상은 '펀드 투자자'로 한정했다. 일반 주주나 시민은 이들이 어떻게 표를 던졌는지 알 길이 없다.

자산 운용사 40곳은 코드 도입 이듬해인 2017년부터 2년 사이에 가입했다. 이는 전체 자산운용사 가입기관의 60%에 달하는 수치다. 2020년 이후부터는 PEF와 벤처캐피털의 가입이 크게 늘었다.

이들은 코드에 가입하면서 수탁자 책임에 관한 7대 원칙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가입기관의 91.7%(243곳)가 7개 원칙을 모두 지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적는 '수탁자책임 활동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직접 공개한 곳은 33곳, 12.5%에 불과했다. 자산운용사만 따져도 67곳 중 28곳(41.8%)이다.
▲  반대율, 7~9%대 머물다 올해 처음 11%대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지난 10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가입 자체가 곧바로 실질적인 주주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분석대상 의결권 행사 19만7079건 가운데 찬성은 88.03%(17만3496건)였다. 반대는 9.43%(1만8576건), 중립 1.13%(2234건), 불행사 1.41%(2773건)였다. 반대율은 2020년 7.74%, 2021년 7.98%, 2022년 9.14%, 2023년 8.78%, 2024년 8.44%, 2025년 9.01%로 줄곧 7~9%대에 머물렀다. 그러다 올해(8월 7일 기준) 11.93%로 뛰었다. 처음으로 11%대에 올라선 것이다.
▲  자기주식·자본거래 안건에 반대 가장 많아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어떤 안건에 반대표가 많았을까. 자기주식·자본거래 안건이 19.3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임원보수 13.08%, 정관변경 12.02%, 자본구조 10.21%, 합병·분할·영업양수도 10.16%, 감사·감사위원 10.09% 순이었다. 전체 안건의 34.7%를 차지하는 이사 선임·해임 안건의 반대율은 8.10%, 재무제표·배당 안건은 4.57%로 낮았다.

임원보수 안건 가운데선 이사 보수한도 반대율이 14.41%로 감사 보수한도보다 높았다. 국민연금은 이사 보수한도 안건 3건 중 1건꼴(33.69%)로 반대해 기관별 보수 안건에 대한 판단과 차이가 컸다.

전체 의결권 반대율은 9.43%... 주주가 낸 안건엔 '깐깐', 회사 안건엔 '후하게'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건 주주제안이다. 주주가 직접 주총에 올린 안건으로 주주제안으로 분류된 2782건 가운데 1036건, 37.24%에 반대표가 나왔다. 전체 반대율(9.43%)의 약 4배다.

특히 연기금의 주주제안 반대율은 24.96%였지만, 연기금이 아닌 기관투자자는 41.22%에 달했다. 같은 종류의 안건을 놓고 봐도 그렇다. 회사가 올린 재무제표·배당 안건의 반대율은 4.4%였다. 주주가 올린 같은 유형의 안건에선 36.0%로, 8배가 넘었다.

물론 주주제안에 반대가 많다고 곧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안의 내용과 목적, 기업가치에 미칠 영향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관투자자들이 회사 안건과 주주 안건을 같은 잣대로 들여다봤는지, 이것이 스튜어드십의 실질을 평가할 때 중요한 지점으로 여겨지곤 한다.
▲  주주가 낸 안건엔 '깐깐', 회사 안건엔 '후하게'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90%에 가까운 찬성율을 보면 기관투자자가 주주총회 안건 대부분에 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질을 반대율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모든 안건에 반대하는 게 책임 있는 주주활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왜 찬성했고, 왜 반대했고, 왜 기권했는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혔느냐다. 그런데 기관별로 들여다보니 극단적인 사례들이 나왔다.

밸류시스템자산운용은 분석 기간 408건의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전체 찬성표를 던졌다. HDC자산운용 역시 분석 기간, 724건의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5건의 불행사를 뺀 나머지 전체 안건에 찬성했다. 더블유더블유지자산운용은 또 다른 경우다. 143건의 행사 내역이 있는데, 143건 모두 '불행사'였다. 사유는 사실상 두 가지 문구의 반복이었다. 이 중 90건에는 오탈자까지 똑같은 문장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의결권 행사 여부가 주주총회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의결사항이 펀드 손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치(원문 그대로) 않는다고 판단"

나머지 31건에도 비슷한 문구가 쓰였다. 그밖에 개별 기업의 안건 내용이나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 의결 결과의 중요성 등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없었다.
"당사 의결권 행사 여부가 주주총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여 불행사 함."

물론 상황에 따라 불행사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유를 143건 전체에 반복적으로 사용했다면, 각각의 안건을 실질적으로 검토한 결과인지 아니면 의결권 행사 자체를 최소화하기 위한 판단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찬성 사유도 마찬가지였다. 기관별로 찬성 사유를 적은 비율은 100%부터 0%까지 제각각이었다. 많이 쓰인 찬성 사유 상위 100개 문구가 전체 찬성 사유의 34.7%를 차지했다.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은 찬성 998건 가운데 75.3%에 "검토한 결과 특이사항이 없기에 찬성함"이라는 같은 문구를 썼다. KB자산운용도 찬성 1만222건 중 56.4%(5765건)가 같은 문구였다.

계열사 안건 1949건, 반대는 '0'… 이해상충에선 '중립'이 반복됐다

계열사 안건에서는 독립적인 판단이 작동했는지 의문이 커진다. 계열사를 둔 자산운용사 가운데 계열사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한 12곳의 1949건을 분석했다. 반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중립이 1870건(95.9%), 찬성 40건, 불행사 39건이었다. 찬성 40건도 대부분 부동산투자회사(리츠)의 단순 운용·배당 안건이었다. 이해상충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안건들이다. 계열사 경영진을 견제하는 표는 사실상 없었다.
▲  계열사 안건 1949건, 반대는 '0건'
ⓒ <오마이뉴스> 자료를 바탕으로 AI 생성이미지
이유는 법에 있다. 자본시장법은 자산운용사가 계열사 안건에 표를 던질 때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중립'하도록 했다. 같은 조항 단서는 계열사 안건이라도 펀드 투자자에게 손실이 명백히 예상되면 투자자 이익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게 했다. 이는 투자자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계열사 안건의 행사 사유 원문 1803건을 살펴보니, '계열'이라는 표현이 1574건, 자본시장법 제87조를 인용한 사유가 598건 이었다. '손실'이나 '예외'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가장 흔한 사유는 '계열회사로 중립 행사함'이었다.

문제는 이 '중립'이 결과적으로 지배주주와 경영진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올해 삼성전자 주총이 그랬다. 삼성전자는 '이사 및 사외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는 정관 조항을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로 바꾸는 안건을 올렸다. 이사 임기를 엇갈리게 해 주주들이 새로 뽑을 수 있는 이사 수를 줄일 수 있는 조항이다. 의안명으로 이 안건을 확인할 수 있는 기관 54곳 가운데 36곳(66.7%)이 반대했다.

계열사인 삼성자산운용과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은 '중립'을 택했다. 두 회사 지분만으로 안건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 기관 3곳 중 2곳이 반대한 안건에서 계열 운용사는 판단을 내놓지 않았고, 안건은 찬성률 84.9%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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