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가 깨달은 실력이 느는 진짜 순간 [오늘도 서툰 한국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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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 머리 용량이 다 찼어요. 그만해요."
교사로서 내 실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업 시간에 받아 적느라 바쁘게 만들기보다는 한마디라도 더 말하게 하고 싶다는 나름의 수업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수업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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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기자]
"아, 선생님. 머리 용량이 다 찼어요. 그만해요."
지난 10월 22일, 9월 말에 시작한 초급반의 네 번째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슬슬 학습량이 늘고 워크북의 문제 난이도가 높아지자 마지막 4교시는 그야말로 꾸역꾸역 진행됐다. 영어와 몸짓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표현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그 답답한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에게도 진도를 끝내야 하는 임무가 있으니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들은 늘 한국어가 어렵다고 말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성인이 되어 완전히 낯선 문화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최근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나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낯선 것일 뿐'이라며 안심시켜 주곤 한다. 한국어를 최대한 재미있고 생생하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드라마 장면을 캡처하고, 한국 간식을 준비해 미션 데이도 진행해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한국어 표현을 연습하고 짝꿍과 대화를 완성한 뒤 환하게 웃던 학생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일시적인 재미와 성취감이 꾸준한 학습 효과로 이어지는지는 체감하기 어려웠다. 다만 언젠가 한국어가 꼭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첫 한국어 공부가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다시 한번 흔쾌히 도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한국어 실력이 가장 많이 느는 순간
한국어 교사가 되어 첫 학기를 앞두고 있을 때, 동료 선생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 년을 가르쳐도 한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학생이 방학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실력이 월등히 좋아졌더란다.
"어떻게 이렇게 한국어 실력이 늘었어요?"라는 물음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정작 자신에게 한국어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늘더라는 이야기였다.
순간 바짝 타오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학습의 주체는 결국 학생'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졌다. 최선을 다해 가르쳐야 하지만, 내 욕심에 따라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는 기준이 생겼다. 교사로서 내 실력을 인정받기 위한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는 것이니 좀 더 빡빡하게 시켜야 하나, 순간순간 고민이 되기도 한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두 번, 총 네 시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다. 영어와 한국어 트랙으로 비자를 받은 학생들이라 이틀을 제외한 나머지 사흘은 영어 수업을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에게 한국어 공부의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과제를 좀 더 많이 내주거나 매 수업 퀴즈를 치르고, 벌과 보상을 확실히 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숙제를 많이 내주고 수업 시간에 교재 문제를 빠짐없이 풀어야 집에 보낸다는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너무 느슨한가?' 하고 돌아보게 된다. 학생들이 편안해진 상태를 넘어 살짝 무례해진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내 유한 태도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받아 적느라 바쁘게 만들기보다는 한마디라도 더 말하게 하고 싶다는 나름의 수업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기계적으로 단어를 적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기계적으로라도 써 봐야 익숙해지는 걸까?'라는 의심으로 바뀌기도 한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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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전, 영어 회화 학원 선생님에게 받은 메모 메모를 자주 보던 책에 붙여두었다. 10여 년 만에 찾아보았는데 세월의 흔적이 더해졌다. 더 많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구나. |
| ⓒ 이영민 |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내게 한 외국인 선생님이 남겨 주신 포스트잇 메모는 스스로를 믿고 시도해 볼 용기를 주었다. 지금의 수업 목표와 방식을 갖게 된 데에도 영향을 준 경험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내 수업 시간만큼은 학생들이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는 분위기에서 공부하고, 조금만 잘해도 칭찬받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적어도 한국어 공부에 대한 거부감만큼은 심어 주고 싶지 않다.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수업일 테다.
아직은 내 수업 방식을 믿어 보고 싶다. 다만 방식 자체가 문제인지, 그 방식을 제대로 운영할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는 앞으로 더 경험해 봐야 알 것 같다. 지금은 수업을 이끌어 가는 역량을 기르는 데 조금 더 힘을 쏟으려 한다.
다음 주에도 학생들이 한국어를 조금 덜 낯설게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발표를 잘하거나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줄 초콜릿도 한 움큼 챙겨 둔다. 이 달콤한 초콜릿이 학생들의 뇌와 마음을 활짝 열어 주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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