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타 치즈와 김치, 이런 맛이 가능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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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현장을 찾았다.
이날 선보인 요리는 이탈리아식 쌀 요리인 리소토에 전주의 식재료와 한국의 발효 맛을 더한 특별한 메뉴였다.
여기에 잘게 썬 김치가 더해지자 치즈의 고소함 사이로 김치 특유의 산뜻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살아났다.
김치와 고추장, 치즈는 만들어지는 환경과 재료가 다르지만, 시간을 들여 맛을 깊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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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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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비 속에서 다채로운 세계 발효식품과 문화가 어우러진 제24회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현장 |
| ⓒ 정형미 |
행사장 한편에는 '이탈리아산 치즈의 발견'이라는 문구 아래 고르곤졸라와 페코리노 토스카노, 프로볼로네 돌체 등 이탈리아 각지의 치즈가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저마다 다른 빛깔과 질감을 지닌 치즈를 바라보니,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과 기후, 오랜 제조 전통에 따라 맛이 얼마나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잠시 후 롯데호텔 셰프를 초청해 진행한 쿠킹 시연이 시작됐다. 흰 요리사 모자 아래로 셰프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선보인 요리는 이탈리아식 쌀 요리인 리소토에 전주의 식재료와 한국의 발효 맛을 더한 특별한 메뉴였다. 지중해의 요리법과 전주의 식탁이 한 팬 안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먼저 팬 위에서 삼겹살이 천천히 익어 갔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흔히 사용하는 올리브유 대신 전주의 고소한 참기름을 활용해 재료의 풍미를 끌어냈다. 여기에 양파와 파 등 여러 채소를 우려낸 채수가 더해졌다. 토마토즙으로 산뜻한 맛을 살리고, 고추장과 매실청을 넣어 한국적인 감칠맛과 은은한 단맛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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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회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현장에 정갈하게 전시된 고르곤졸라, 페코리노 토스카노 등 |
| ⓒ 정형미 |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문득 10여 년 전 이탈리아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식당에서 리소토를 먹으며 나는 쌀이 덜 익었다고 생각했다. 평소 먹던 밥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을 기대했던 탓이다. 낯선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는 몇 숟가락을 뜨고는 이내 스푼을 내려놓았다. 그때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왜 이런 식감의 밥을 즐겨 먹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전주에서 다시 만난 리소토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내가 익숙한 밥의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판단하고 있었던 셈이다. 쌀의 품종도, 익히는 방식도, 음식에 기대하는 식감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깊이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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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의 참기름, 김치, 고추장과 이탈리아 치즈한 데 어우러져 근사한 풍미를 선사하는 완성된 리소토. |
| ⓒ 정형미 |
마지막에는 향긋한 올리브유가 한 방울 떨어졌다. 참기름으로 시작한 조리 과정이 올리브유 향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은 이 요리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 주는 듯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맛이 어느 한쪽을 지우지 않은 채 서로의 개성을 기분 좋게 살려내고 있었다.
완성된 리소토를 한입 맛보았다. 쌀알에는 꼬들꼬들한 탄력이 남아 있었고, 치즈의 진한 풍미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졌다. 참기름의 고소함과 토마토의 산미, 고추장의 감칠맛, 김치의 산뜻함이 차례로 느껴졌다. 매실청이 더한 은은한 단맛은 여러 재료의 풍미와 어우러졌고, 마지막에 더해진 올리브유 향은 그 맛들을 하나로 정돈해 주었다. 낯선 조합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맛이 만나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는 단순히 발효 식품을 사고파는 장터를 넘어, 음식에 깃든 지역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김치와 고추장, 치즈는 만들어지는 환경과 재료가 다르지만, 시간을 들여 맛을 깊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발효는 재료를 바꾸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기다림과 경험이 쌓아 온 문화다. 전주의 발효 전통과 이탈리아 치즈의 오랜 역사가 한 접시 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옛날 지중해의 햇살 아래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리소토를,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전주의 가을비 속에서 다시 배웠다.
여행은 반드시 먼 나라로 떠나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도 낯선 문화를 만날 수 있고, 한입의 음식이 오래된 기억의 해석을 바꾸기도 한다. 전주의 참기름과 김치, 이탈리아의 치즈와 쌀이 어우러진 그 한 접시는 내게 음식 이상의 의미로 남았다. 서로 다른 전통은 만나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고, 낯선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지나간 기억마저 새롭게 해준다. 전주의 가을날, 나는 리소토 한 접시를 통해 오래 닫아 두었던 여행의 문을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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