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탁지일·지원·지웅 (12) 학자 99명 ‘통일교 옹호’ 신문 광고에 반박 성명 발표

양민경 2026. 10. 26. 03: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재학 시절인 1974년 아버지 탁명환은 우리 사회와 학계를 뒤흔든 사건을 목도한다. 그해 일간지 광고면에 전국 주요 대학의 내로라하는 저명한 교수 99명이 통일교 활동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성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성명은 "지난 11월 24일을 전후해 통일교 활동을 지지하는 교수 일동 99명 이름으로 된 성명서가 게재돼 종교인은 물론 사회인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학자 99명, 통일교 지지 성명
신문 광고 속 명단엔 기독 학자도
신아일보, 교수 이름 도용 기사화
이후 기사 취소 요구·항의 받아
父, 명단 확인 거쳐 반박 성명 발표
1974년 4월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교의 ‘희망의 날 대향연’ 모습.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재학 시절인 1974년 아버지 탁명환은 우리 사회와 학계를 뒤흔든 사건을 목도한다. 그해 일간지 광고면에 전국 주요 대학의 내로라하는 저명한 교수 99명이 통일교 활동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성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통일교회 활동에 대하여’란 제목의 성명에는 통일교 교리인 통일원리의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은 “한국에서 창설한 통일교는 41개국에 200만 신도를 가진 세계적 교회”라며 “최고의 학술을 자랑하는 지성인으로서 (우리는) 통일교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교수 가운데는 기독교인도 상당수였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일언반구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신아일보가 74년 11월 28일자로 ‘통일교서 교원 이름 도용’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엔 “성명서 광고에 이름이 실린 교수들은 대부분 이름을 이용당했거나 통일교회 관계자들에 의해 자기 뜻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이름이 나가게 된 것이라고 주장, 일방적 광고 게재에 분개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보도가 나온 당일 신아일보엔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찾아와 기사 취소를 요구하며 1시간여 동안 항의했다. 이날의 상황을 보도한 매일경제 등에 따르면 “이들은 ‘윤전기를 부수겠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신흥종교연구소 명의로 그해 12월 2일 교수 99인에 대한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지난 11월 24일을 전후해 통일교 활동을 지지하는 교수 일동 99명 이름으로 된 성명서가 게재돼 종교인은 물론 사회인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됐다. 아버지는 “통일교에 대해 이미 한국 기독교계는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며 “분명히 정통 기독교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말했다. “99명의 교수 중 통일교인이나 골수 지지 세력은 10여명에 불과했다”며 성명에 이름을 올린 교수들을 면담해 그 진위를 파악한 내용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는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학자들이 신흥종교 집단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사회의 계도적인 위치를 지켜주길 바란다”는 당부도 전했다.

성명 발표 이후 아버지는 대전으로 떠나셨는데 당시 심경을 일기로 남겼다. “통일교에 대한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신아일보와 동아일보만 기사를 취급하고 나머지는 모두 벙어리 신문이었다. ⋯ 반박 성명을 발표하자 나를 기다리던 형사에 의해 남대문경찰서에서 2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그 길로 대전으로 향한 것이다.⋯ 처자식을 두고 도망치듯 떠나는 마음이 괴롭다.” 신흥종교 연구가로서의 삶에 대한 고초가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이었다.

이즈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일교에 관한 보도가 잇따랐다. 중앙일보는 75년 2월 ‘프랑스에서 반통일교 운동’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통일교에서 탈출한 청년 4명과 자녀들이 통일교에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부모 60여명이 ‘가정의 가치와 개인을 보호하는 협회’를 결성해 통일교를 규탄했다. 이 내용은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이 보도해 프랑스 사회에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grieg@kmib.co.kr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