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의 트렌드터치] 올드 바이 뉴

공장 하나 없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고, 제품 하나를 직접 만들지 않고도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낸다. 이제는 AI 에이전트들을 직원처럼 활용해 극소수의 사람만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유형자산을 거의 보유하지 않은 채 상당한 규모로 성장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AI 이미지 생성 기업 미드저니는 50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2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사례로 주목받았고, AI로 앱을 만드는 러버블은 약 45명의 팀으로 연간 반복 매출(AAR)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커서(Cursor) 역시 작은 팀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기업의 규모를 바라보는 기존의 기준에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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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 쌓아야 크는 올드 이코노미
연결 통해 성장하는 뉴 이코노미
스마트팩토리도 공장이 있어야
」

고객이 늘어도 직원과 유형자산이 같은 비율로 늘어날 필요가 없는 신생 기업들의 등장은 매우 흥미롭다. 과거에는 사람과 공장, 설비 같은 물리적 자산이 성장을 뒷받침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플랫폼이 더 많은 고객을 감당하며 규모를 키운다. 뉴 이코노미의 핵심은 자산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자산으로도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뉴 이코노미(New Economy)라는 용어가 널리 주목받은 것은 1990년대 후반, 특정 학자가 처음 만든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 당시의 경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확산된 개념에 가깝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ICT)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경제성장과 생산성의 작동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논쟁과 함께 기술과 지식, 정보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일었다.
제조업과 에너지·자동차·철강처럼 공장과 설비, 노동력과 원자재 등 물리적 자산을 기반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전통 산업인 올드 이코노미(Old Economy)와 대조되어 보이지만, 둘의 차이는 단순히 오래된 산업과 새로운 산업의 구분이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자원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올드 이코노미가 공장과 설비를 늘려 생산능력을 키우는 경제라면, 뉴 이코노미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존 자원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경제다. 전자가 자산을 쌓아 규모를 키웠다면, 후자는 연결을 통해 규모를 키운다.
AI 에이전트가 시장조사와 자료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고객 응대 같은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수와 사업의 규모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소수의 직원이 여러 AI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맡기고 결과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맥킨지는 인간 2~5명이 50~100개의 전문 에이전트를 감독하는 에이전틱 조직(Agentic Organization)이란 미래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에이전트 100개가 직원 100명과 같은 것은 아니다. AI가 모든 업무를 독립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생산능력을 더 이상 사람의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기업은 직원을 얼마나 더 채용할 것인가 뿐 아니라, 어떤 일을 사람에게 맡기고 어떤 일을 에이전트에게 맡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조직도 역시 사람의 직급과 부서만 나열하는 구조에서 업무와 결과를 중심으로 설계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조직의 규모를 결정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업의 성장이 물리적 자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다. 온라인 플랫폼이 아무리 커져도 실제 상품을 생산하고 보관하고 배송하는 과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 경제의 성장은 여전히 현실 세계의 물리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뉴 이코노미는 올드 이코노미를 대체하기보다 기존 산업의 작동 방식까지 바꾸는 변화다. 정보기술의 생산성 효과는 새로운 기술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신기술이 적용될 때도 나타난다. 오래된 공장이 데이터를 만나면 스마트팩토리가 되고, 제품이 소프트웨어와 연결되면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된다. 축적된 제조 노하우에 AI가 더해지면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오랜 기간 쌓아온 고객 관계에 데이터가 더해지면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가장 경쟁력 강한 기업은 잠재력을 가장 잘 끌어내는 기업일 것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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