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저널리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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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언론 등 12개 분야 거장들의 시선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EBS 프로그램 <시대목격>에서 지난 13일 '손석희의 대답들' 편이 방송됐다.
김 = "저 역시 일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해 왔던 것 같아요. 지상파의 영향력이 컸던 시절에 방송 작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큐멘터리조차 예전 같지 않잖아요. 요즘 미디어 지형은 점점 양극단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내 편 저널리즘'처럼 확증편향만 부추기는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역설적으로 발로 뛰어 팩트를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언론의 기본 원칙이 더 절실해졌어요. 레거시 미디어가 예전 같은 파급력을 갖기는 힘들지 몰라도 그 기본의 무게감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고 봐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레거시가 지켜 온 검증 기준이 중심을 잡아 줘야 언론이 언론다워지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손석희 저널리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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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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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목격>의 한 장면 |
| ⓒ EBS |
사실 손석희 앵커는 언론 인터뷰 등에 잘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를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해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의 EBS 사옥 내 <시대목격> 스튜디오에서 해당 회차를 연출한 이혜진 PD와 김미지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기획 의도에 이보다 더 들어맞는 인물은 없었죠"
- <시대목격>이 문화·예술·언론 등 12개 분야의 거장으로 시대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죠. 이번에 손석희 앵커를 통해 언론계를 조명했잖아요. 가장 신뢰 받는 언론인이기 때문일까요?
이혜진 PD(이하 이)= "'20년 연속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이라는 기사도 최근에 나왔잖아요. 어느 분야든 20년 동안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꼽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평가가 엄격한 언론계에서 20년 연속 1위를 지켜 왔다는 건 정말 이례적이면서도 존경스러워요. 그리고 저희 프로그램 제목이 '시대목격'이잖아요. 언론인 손석희는 한국 현대사의 목격자이면서, 대중이 시대의 주요한 사건들을 함께 목격할 수 있도록 전달해 준 인물이기도 해요. 저희 기획 의도에 이보다 더 들어맞는 인물은 없었죠."
- 그러면 손석희 앵커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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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진 PD |
| ⓒ EBS 홍보부 |
이=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처음 만나기 전엔 솔직히 무서웠어요. 좀 냉철해 보이잖아요(웃음). 제 생각에는 저같이 본인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셔서, 상대의 긴장도를 낮춰 주는 노하우가 있으신 것 같아요. 섭외를 위해 대화하면서 저 스스로 금방 편안해지더라고요. 또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동료 의식 같은 것도 생겨서, 처음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김미지 작가(이하 김)= "저도 비슷한데요, 제가 원래 취재나 인터뷰를 할 때 별로 긴장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아서 편하게 다가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PD님보다 제가 더 긴장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만난 지 한 10분 만에 프로그램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싹 만들어 주시더라고요."
-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 잘 안 하시거든요.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 "우선 작가님이 '손석희'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를 일반적인 기획안보다 훨씬 깊고 자세하게 써 주셨어요. 저희는 손석희라는 한 언론인을 통해 한국 언론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후퇴해 왔는지를 짚고 싶었는데, 그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였고 작가님이 그 행간을 읽어 주신 것 같아요."
- 다른 편과 달리 인터뷰 비중이 높았던 거 같은데.
이= "늘 질문만 던지시던 분이 온전히 대답하는 자리에 앉으신 거잖아요. 그래서 그 대답들을 시청자분들께 충분히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인터뷰만 4시간 반을 했는데, 그걸 50분짜리 프로그램에 욱여넣자니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였고 미처 다 넣지 못한 귀한 이야기도 많았어요. 보도 당시의 심정이나 숨은 뒷이야기를 최대한 들려주고 싶어 인터뷰 비중을 다른 편보다 늘렸어요. 대신 주변 인물 인터뷰도 꽤 많이 촬영했는데 방송엔 조금밖에 못 담아서, 취재원분들께 따로 연락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웃음)."
- 스튜디오 꾸미는 건 어떻게 했나요?
이= "미술팀에 '어느 언론인의 진짜 서재 같았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어요. 낯선 방송 세트가 아니라 본인의 공간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책상 위에 과거 사진들을 올려두고, 평소 읽으실 법한 책과 직접 쓰신 글, 진행하신 프로그램의 큐시트 등도 배치했어요. 편안하고 익숙한 공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언론인의 서재'로 꾸몄습니다."
손석희 앵커에게 세월호는
- 손석희 앵커의 방송 인생이 고등학교 방송반 활동까지 하면 50년이 넘잖아요. 현장 인터뷰 중 가장 인상 깊었거나 울림이 컸던 대목은 무엇이었나요?
이= "저는 손석희라는 인물이 늘 완벽주의자 같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남들에게 빈틈이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할 것 같은 이미지요. 그런데 본인 인생에서 '비겁했던 순간'을 꼽으시면서, 80년대 초년생 시절 공정방송 리본을 재킷 안쪽에 몰래 달았던 일화를 꺼내 놓으셨잖아요. '아, 거목처럼 서 있던 저 사람도 초년생 시절엔 비겁함에 부끄러워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청년이었구나' 싶었죠. 아주 멀리 있는 사람 같았던 분이 더 인간적으로 가깝게 느껴졌어요.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기억이 훗날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기준점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대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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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목격>의 한 장면 |
| ⓒ EBS |
김= "글쎄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요? 섭외하기 전에 손석희님이 쓰신 글도 찾아 읽고, 그분에 대해 쓴 책도 많이 찾아봤어요. 제게 손석희라는 언론인은 팩트와 중립, 공정성 같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치열하게 고민해 온 사람이었는데, 세월호 보도에서는 조금 다른 면을 보게 됐어요. JTBC가 마지막까지 목포신항 현장을 지켰잖아요. 유가족들과 워낙 가까운 관계가 되다 보니 현장 취재팀이 철수할 때 고민이 많고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떠나면 유가족분들이 또다시 덩그러니 남겨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사회적 참사를 '사건'으로 취재하는 것을 넘어, 거대한 사회적 '고통' 앞에서 언론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고 어디까지 함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번에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세월호 보도가 우리 언론계에 큰 반성과 변화를 가져왔고 재난 보도 준칙이 제정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더라고요. 손석희라는 한 언론인이 보여 준 책임감과 진심이 언론이 사회적 참사를 취재하는 기준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20년 동안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꼽힐 수 있었던 힘이 뭘까요?
이= "의외로 저는 그 힘이 '상식'에서 나온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취재하면서 '그때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러실 수 있었어요?' 하고 여쭤보면 돌아오는 대답이 늘 비슷했거든요. '그게 상식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같은 식이었죠. 결국 언론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켰다는 건데, 그 기본을 지켜 내는 게 현실에서는 제일 어렵잖아요. 그 상식적인 판단과 선택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보여 줬기 때문에 대중이 오랜 시간 신뢰를 보낸 게 아닐까 싶어요."
앵커, 기자, 사장은 중요치 않아... 늘 일관되게 언론인으로 살아와
- 손석희 앵커가 기자로 전직한 시절이 있던 거로 알아요. 그 시간도 손석희 앵커의 언론 생활에서 중요했을 것 같은데 안 나오더라고요. 이유가 있을까요?
이= "그분의 공식 직함이나 호칭만 세어 봐도 아나운서, 앵커, 기자, 교수, 사장 등 여덟 개가 넘어요. 그게 참 흥미로워서 세트 소품으로 뭔가를 준비했을 정도였죠. 그런데 구성하고 편집하면서 내린 결론은 '직함이나 직종의 변화' 자체가 그리 본질적인 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40여 년의 언론인 인생을 보면 아나운서든 앵커든 기자든 사장이든 늘 일관된 '저널리스트'로 존재해 온 거잖아요. 그래서 '이 시기엔 기자로 전직했고, 그다음엔 무엇이 되었고' 식의 구분에 매몰되기보다, 그가 관통해 온 저널리즘의 궤적 자체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 방송 초반 '손석희의 저널리즘은 지금도 유효한가'란 질문을 던졌잖아요. 답은 얻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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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지 작가 |
| ⓒ EBS 홍보부 |
- PD님도 언론인이잖아요. 손석희라는 가장 존경 받는 언론인의 삶을 들여다 보며 언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이 = "예전부터 방송인들이 공정 방송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투쟁해 왔다는 건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는 잘 몰랐어요. 이번에 다큐를 준비하며 깊이 알게 됐죠. 혹자는 '지금 언론이 공정하고 자유롭냐,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냐'고 냉소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분명 나아진다고 믿는 사람이거든요. 앞선 세대의 치열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언론 환경도 이만큼이나마 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나와 내 세대는 앞으로의 언론 환경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더 생겼어요."
- 과거 방대한 방송 자료 화면과 현재의 손석희를 교차하는 구성에서, 시청자들에게 '그가 지나온 시대'를 직관적으로 전하기 위해 가장 공들인 편집은 무엇이었나요?
이 = "글쎄요, 방송에서 티가 났을지 모르겠지만 딱 한 군데만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컷에 공을 들였어요. 47분을 한 땀 한 땀 다듬었거든요(웃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작가님이 주신 자막 원고 중에 '시간의 축적'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지금의 손석희라는 언론인은 그 오랜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내용이었는데, 편집에서도 바로 그 지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손석희라는 인물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타고난 언론인이 아니라, 숱한 번민과 매 순간의 선택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교차하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을 달력 이미지로 시각화하기도 했어요. 또 세월호 참사를 500일 넘게 끈질기게 취재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선체가 인양되는 과정의 아카이브를 시간순으로 엮기도 했고요. 그가 한결같이 버텨 온 '시간의 축적'을 직관적으로 체감하실 수 있도록 편집의 호흡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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