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9년 만에 돌아온 아들의 실체, 더 충격적인 엄마의 선택

장혜령 2026. 10. 2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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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통해 저예산 고퀄리티 제작의 성공 사례를 만든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험작이다.

극장을 나왔지만 찝찝한 기분이 맴돌아 끄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경을 통해 만나는 가상 현실일지라도, 다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려는 마음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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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실낙원>

[장혜령 기자]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원안으로 만들어진 소설 <블랙 인페르노>를 바탕으로 '정체성 '을 파고든다. <얼굴>을 통해 저예산 고퀄리티 제작의 성공 사례를 만든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험작이다. 약 5억 원의 예산은 이미 해외 선 판매로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두 영화는 연 감독의 다작 행보의 새로운 틀이자 유사점이 보인다. 일단 연 감독의 원작을 기반이며 열린 결말로 끝난다. <얼굴>이 가족사의 비밀을 부자관계로 풀었다면 <실낙원>은 낯설고도 친밀한 모자 사이가 단절로 인한 불연속성을 다룬다. 독립영화 수준의 예산으로 제작되었으나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대중 영화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초청되며 연상호라는 브랜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차이점이라면 생활 깊이 파고든 AI의 편리함 속에 잊어버린 부정적 측면을 <실낙원>에서 다루는 데 있다. 조각난 마음을 잇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정답. AI라는 양날의 검을 톺아본다. 과연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실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란 누구인가란 물음은 실존주의와 연결된다. 즉 태어남과 동시에 주체적으로 삶을 형성해 나가고 본질을 탐구하는 자유의지다. 설명문이 가득하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만 이 영화가 툭하고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극장을 나왔지만 찝찝한 기분이 맴돌아 끄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법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9년 전 캠핑스쿨 실종 사건으로 아들 선우(배현성)를 잃은 엄마 소영(김현주)은 '낙원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AI 프로그램(게임)에서 매일 선우를 만난다. 이 프로그램은 트라우마 치료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캐릭터에 몰입하며 좋은 엄마라는 사명감에 충실했다. 물론 안경을 통해 만나는 가상 현실일지라도, 다른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려는 마음도 품고 있다.

하지만 평화롭던 일상은 죽은 줄 만 알았던 선우가 갑자기 살아돌아오면서 달라졌다. 가정을 떠나 보육원과 거리 생활로 거칠고 피폐한 얼굴. 낯선 선우를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오므라이스를 좋아하고 긴장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선우의 어긋난 심리는 소영을 얼어붙게 했다. 청년의 모습을 한 선우와 AI 프로그램 속의 열 살 선우는 가까워질 수 없는 격차로 소영을 더욱 혼란스럽게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웃 아들을 납치해 범죄를 저질렀음을 알게 되고, 소영은 막중한 책임감에 휩싸인다. 갑자기 둘이 되어버린 아들로 인해 소영의 일상은 점차 파괴되어 간다. 사고는 사건이 되어갔다. 처음으로 되돌릴 수도 해결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자 소영은 뜻밖의 선택을 하게 된다.

불완전함이 인간다움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영화는 '인간다움'를 화두로 삼는다. 어릴 때 나와 지금의 나는 얼굴도 성격도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쉽게 증명하는 방법은 유전자, 신분 같은 법적 장치겠지만 살아온 궤적을 통해 한 사람을 규명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마저도 제거된다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까.

<실낙원>은 아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인공지능에 집착하게 된 엄마의 비극이다. 인간은 정보를 읽고 사색하고 처리하는 뇌를 지녔다. 하루 일과를 모두 기억하지 않고 꿈을 통해 선별적하고 저장한다. 따라서 다양한 기억이 머무는 심연은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른다. 하지만 충동, 본능을 제어하는 기관도 뇌에 있기 때문에 인간다움을 유지한다. 인간의 뇌와 흡사하게 만들어진 AI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사고'를 하지 못해 '인공지능'이라 부른다.

그래서일까. 소영의 선택을 두고 <이방인>이 뫼르소가 떠올랐다. 소영은 10여 년 동안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가상 공간에 몰두했다. 떠난 존재를 잊고 나아가야 할 인간의 발목을 잡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만든 AI다. 겉으로는 심리 치료 같았으나 정작 현실을 외면하며 편한 쪽으로 회피하려는 모양새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영화는 이런 의문을 계속해서 제기한다.

여전히 귀엽고 착한 아들에 익숙해진 소영은 천덕꾸러기 범죄자 아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온다. AI 아들을 진짜라고 착각하고 실제 아들은 타인처럼 대한다. 종국에는 인지부조화로 사실을 부정하려고까지 한다. 마치 수년간 게임(낙원의 아이들)에 중독되어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 중독자 같다. 가짜 위안은 달콤하고 쉽지만 진짜 현실을 뼈아픈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그램에 깊게 빠져든 소영은 그 속으로 침잠한다.

책임이 따르는 선택
▲  영화 <실낙원> 스틸컷
ⓒ CJ ENM
영화는 존 밀턴의 소설 <실낙원> 속 '원죄'를 끌고 온다. 추락한 천사(사탄)가 뱀의 형상으로 이브를 유혹한 후 꾀에 빠져 과실을 탐한 선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택에 따른 책임 없는 상황, 인간이 천국(낙원), 유토피아, 이상향을 꿈꾸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고통 없는 기쁨, 책임 없는 자유는 달콤하지 않은 까닭이다. 공허한 행복을 인간 세상에서 찾으려니 불행한 것이고 소영은 다른 세상에서 충족하고자 한다.

악의 근원을 본인으로 돌리고 AI 캐릭터를 지키려는 태도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끝까지 아들의 존엄을 지켜주려는 엄마의 마음일까. 소영의 선택을 가슴으로는 이해하겠는데 머리로는 이해 못 해 괴로운 건 나뿐인 걸까.

어려운 논쟁의 실마리는 원안자인 연 감독의 어머니다. 세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은 원작 소설 <블랙 인페르노>로 확장되었고, 영화 <실낙원>으로 영화화되었다. 원작은 미국의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검은 지옥을 뜻하는 블랙 인페르노(절벽)로 향하는 여정이다. 블랙 인페르노는 소영의 심연, 탄광의 어둠,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로 상징화되었다.

<실낙원>은 인간성이라는 보편적 주제와 뒤틀린 모성이 만난 기이한 에너지를 대중적 시선으로 풀어냈다. 극명한 호불호와 열린 결말, 어둡고 불친절한 이야기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이나, 곱씹어 볼만한 문제임은 확실하다. 이게 바로 연니버스의 추구미인 셈. 이미 대중은 중독돼 빠져 나갈 수 없다. 극장 문을 나서며 물음표를 한가득 안고 돌아가겠지만 곧 차기작 <예토>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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