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장례위원장에 권노갑·김덕룡

김보름 2026. 10. 24. 16: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사진은 1993년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시절의 고인. 연합뉴스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10월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공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 대표였다. 1968년 4·19혁명과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인 6·3항쟁에 참여한 청년들이 중심이 된 ‘4·19 6·3범청년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사무총장으로서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이끈 고인은 1970년 4월 무교동 광남빌딩의 김영삼(YS)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YS를 처음 만났다.

둘의 깊은 인연은 1971년 8대 총선에서 단단해졌다. 고인이 신민당 소속으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하자 YS가 적극적으로 지원 유세를 했고, 36살에 처음 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때부터 고인은 YS의 사람이 됐다. 이후 9, 10,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잇달아 지낸 6선 정치인이자 YS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26년간 정치적 동지로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 YS와 가까운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김동영(1936∼1991)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1995년 2월 13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최형우 당무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인은 초선 때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에 의한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해 서빙고 인근에 있던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대공분실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 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의원직까지 상실했다.

하지만 고인은 멈추지 않았다. 1981년 YS가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984년 정치 규제에서 해금된 이후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 및 원내총무 등을 역임했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주자유당에 합류한 뒤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1992년 12월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내면서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작업을 뒷받침했다.

고인이 1993년 쓴 자전 에세이 ‘더 넓은 가슴으로 내일을’의 책 표지에는 “역사의 장이 넘어간 뒤 ‘여보시오, 정치인들 그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소’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라고 쓰여있다. 역사의 물음에 행동으로 답하려 했던 고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1995년 10월 19일 최형우 전 민자당 의원이 제177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의사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 내 차기 대선주자인 이른바 ‘9룡’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 등 대선주자로 거론됐다. 당시 ‘정부엑스포96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미래 산업 설계를 주도했던 고인은 같은해 7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만나 정보사회의 도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비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 행보를 이어가던 1997년 3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랫동안 투병했다. 2015년 11월 22일 YS 별세한 뒤 빈소를 찾은 고인은 영정을 보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오열했다. 상도동계 1세대로서 겪은 애환을 쏟아내면서 오랫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투병 중이던 지난 4월 고인은 김영삼민주센터 명예이사장으로 추대됐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최 전 장관은 오랫동안 민주화운동과 정치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으로는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김대중재단이사장과 ‘YS의 분신’ 상도동계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참여한다. 공동장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다.

유족으론 배우자 원영일 여사, 딸 은지·은실씨, 아들 석균·제완씨, 사위 스벤리, 며느리 장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419 민주묘지다.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사진은 2001년 1월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고인. 연합뉴스

김보름 기자 kim.boreum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