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 꼭 좋지만은 않죠, 어려운 길 통해 배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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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여러 종류 모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어떤 모자가 우선이냐고 하면 당연히 크리스천 김조한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게 모든 것의 베이스(기본)예요."
가수 김조한은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 중 하나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았다.
김조한은 "솔리드의 성공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축복의 크기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 드린다면 내가 가진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 하는데 아직 제일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대중가수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선물을 받았는데 제대로 쓰고 있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닫아뒀던 문이 열린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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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여러 종류 모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어떤 모자가 우선이냐고 하면 당연히 크리스천 김조한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게 모든 것의 베이스(기본)예요.”
가수 김조한은 자신의 이름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 중 하나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았다. 그룹 솔리드의 심장, 국보급 보컬리스트, R&B 대디, 그리고 크리스천 김조한. 그러면서도 신앙은 그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역할을 떠받치는 기반이라고 했다. 김조한은 “지금 내가 나무꾼으로서 나무를 자르고 있다면 일단 나무를 잘 자르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태도에서 믿음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K-CCM 오디션 ‘힐링보이스’(CGN) 녹화가 한창인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 일산 JTBC스튜디오 대기실에서 김조한을 만났다. 음악 얘기를 할 때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던 그는 신앙 이야기가 나오자 미간에 힘을 주는 등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전했다.
김조한에게 교회는 이민자 공동체의 사랑방이었다. 부모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교회를 다녔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로 둥지를 옮긴 뒤 집 앞 교회에서 훗날 솔리드의 멤버가 될 정재윤, 이준과의 인연을 쌓아갔다. 교회에서 함께 찬양하고 주말에는 파티에서 디제잉과 랩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자연스럽게 팀의 모양을 갖춰갔다.
가수 데뷔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뒤 맞닥뜨린 가장 큰 벽은 언어였다. 한국어를 제대로 읽지 못해 1집 앨범에 수록된 가사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 외웠고 받침 등 발음을 살려 R&B로 부르는 법도 혼자 익혀야 했다. 언어의 벽은 자존감까지 흔들었다. “말을 잘 못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절 다르게 대하는 게 느껴졌어요. 바보 취급받는 것 같았죠. 결국 ‘다시는 가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를 다시 붙잡은 건 우정이었다. ‘네가 없으면 안 된다’며 정재윤이 다시 해보자고 설득에 나섰다. ‘다른 멤버를 찾으라’며 버티던 김조한은 결국 ‘친구를 위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 결정은 1995년 솔리드의 2집 앨범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신앙적 조력자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다. 한동안 교회 공동체와 거리를 뒀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는 않았다. 10년 전부터는 자신이 받은 음악적 재능을 신앙 안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가 오랫동안 CCM을 조심스러워한 이유도 뜻밖이었다. “하나님께 드린다면 내가 가진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 하는데 아직 제일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대중가수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선물을 받았는데 제대로 쓰고 있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닫아뒀던 문이 열린 순간이었어요.”

요즘 그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드는 단어는 행복보다 기쁨이다. 모든 일이 잘 풀려야 행복한 것은 아니며 힘든 길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기쁨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과 가장 닮은 찬양으로 ‘나의 가는 길’을 꼽았다. “쉬운 길이 꼭 좋은 길은 아니에요. 어려운 길을 통해 배우는 게 분명 있으니까요.”
그에게 음악과 신앙은 서로 다른 두 길이 아니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결국 다시 같은 지점에서 만나는 두 언어였다. 한국어조차 서툴던 청년에서 한국 R&B의 한 축이 된 가수, 사람에게 상처받고도 다시 찬양의 문을 연 크리스천. 김조한에게 신앙은 무대 위에서 새로 쓰는 또 하나의 모자가 아니었다. 어떤 역할과 이름으로 불리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본모습, 곧 하나님을 향한 얼굴이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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