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입해 가능했다”…멜라니아가 나선 우크라 주민 대피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올레시키에 남은 주민들의 대피를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오는 29일부터 현지 교전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이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중재 성과라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다. 지뢰가 깔린 도로와 교전에 갇힌 주민 약 2000명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안전한 탈출로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다.

이날 백악관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헤르손주 올레시키에서 모든 군사 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인도적 지원 물자 반입과 지정된 안전 통로를 통한 민간인 대피 준비를 허용하기로 했다. 한 도시에 한정된 국지적 휴전으로 양국 민간 인력이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필요한 지원과 대피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합의를 확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양국 군이 이행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대피 작업에는 최소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단에 참여한 다비드 아라하미야 집권당 국민의 종 원내대표는 “교전 중단 후 인도적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멜라니아 여사와 교황 등이 참여한 오랜 협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2만4000명 살던 도시에 2000명…대부분 노인
올레시키는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헤르손시와 마주한 도시다. 2022년 2월 러시아에 점령된 이 도시는 이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023년 인근 카호우카댐 파괴로 도시 면적의 약 90%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백악관이 추정한 현재 주민 수는 1700~2000명이다. 전쟁 전 약 2만4000명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남은 주민 대부분 노인이고 어린이도 약 50명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교전에 따른 직접적 위험뿐 아니라 식량과 의약품 부족에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는 성명에서 “이곳에 남은 주민은 대부분 의료 지원, 의약품, 식량, 깨끗한 물이 시급히 필요한 노인들”이라며 “주민들은 전기를 제한적으로 공급받으며 지뢰가 깔린 도로에 둘러싸인 채 빈번한 군사 공격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교황 레오 14세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올레시키에 구호품과 식량을 전달할 수 있도록 휴전을 요청했다. 당시 러시아는 휴전 수용 여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바티칸과 협력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아동 34명 가족 재결합 돕던 연락망 활용
백악관은 멜라니아 여사가 ‘독점적 중재자(Exclusive Intermediary)’ 역할로 양국과 협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멜라니아 여사와 그의 대리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지도부와 직접 접촉해 휴전의 목표, 시기, 조건, 실무 절차 등을 조율했다는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멜라니아 여사는 지난달 22일 뉴욕 유엔총회 기간 자신이 주최한 행사에서 비공개 대화를 통해 올레시키의 상황을 접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나와 내 대리인은 앞서 여섯 차례에 걸쳐 아동 34명의 가족 재결합을 지원하며 구축한 러시아·우크라이나와의 연락망을 즉시 활용했다”며 “양국은 지뢰 제거 등 복잡한 실무를 조율할 담당팀을 신속히 지정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 도시에 인도적 지원을 전하고 노인들을 대피시킬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부각하기도 했다.
대피 목적지는 주민 선택…휴전 기간·감시 주체는 미공개
백악관이 제시한 대피 원칙은 주민이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양국 민간 인력이 가정을 방문해 필요한 지원 수준을 조사하고 떠나려는 주민에게 교통편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대피 과정에는 미국 언론사도 동행한다. 멜라니아 여사는 “현장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팀에 동행하며 전 과정을 기록할 공정한 미국 언론사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발표문에는 매체 이름이 담기지 않았지만 이미 낙점한 친정부 보수 성향 매체로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로이터통신은 “보수 성향 뉴스맥스가 독점 취재를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주민 대피가 끝날 때까지 현장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 등 남은 협의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희망하는 곳으로 이동하려면 지뢰 제거와 안전 통로 확보가 이뤄지고, 대피가 진행되는 동안 양측이 공격 중단 약속을 지켜야 한다. 백악관이 교전 중단을 언제까지 유지할지와 합의 위반 여부를 누가 감시할지 등을 발표문에 명시하지 못한 것도 이런 어려움 때문일 수 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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