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의 ‘숨은 부활’…휴대폰에서 자동차 OS, 피지컬 AI까지

사라진 줄 알았던 블랙베리가 운영체제(OS)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돌아왔다. 실시간 제어와 기능안전 역량을 갖춘 자회사 QNX가 핵심이다. QNX의 OS 등 기반 소프트웨어는 이미 전 세계 2억7500만대 이상 차량에 탑재돼 시장 검증을 받았다.
최근 분위기는 좋다. 블랙베리의 2026회계연도 매출은 5억4910만달러로 전년보다 2.7% 늘었다. 이 중 QNX 매출 비중은 48.8%다. 올해 8월 말 종료 분기 QNX 매출은 803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 증가했다. 조정 EBITDA(이자,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빼기 전 영업이익)는 2900만달러로 41% 늘었다. 2027회계연도 QNX 매출 전망도 3억1500만~3억2500만달러로 상향했다.
주가도 종가 기준 3월 30일 3.15달러에서 7월 1일 12.81달러로 4배 넘게 뛰었다. 최근 8~9달러대를 오간다. 다만 스마트폰 전성기에는 못 미친다.

재도전 끝에 스마트폰 사업 철수
블랙베리는 1984년 리서치인모션(RIM)으로 출발했다. 무선 통신 기술을 토대로 1999년 ‘회사 밖에서도 이메일을 주고받는’ 모바일 기기 블랙베리를 내놨다. 같은 해 나스닥에 상장했고 물리 키보드와 높은 보안성으로 기업·정부 시장을 공략했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도 가세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컴스코어에 따르면 블랙베리는 2010년 미국 스마트폰 이용자 점유율 43%로 1위를 차지했고 2011회계연도 매출 199억달러(약 26조원), 순이익 34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는 메시지 전송을 넘어 웹서핑·사진·게임을 즐기는 ‘작은 컴퓨터’를 원했다. 앱 생태계 경쟁에 밀리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2014회계연도에는 약 59억달러 순손실을 냈다.
반전을 노린 시도도 있었다. 2010년 하만인터내셔널의 자동차·산업용 실시간 운영체제(RTOS) 업체 QNX 인수가 대표적이다. 블랙베리는 이를 기반으로 태블릿 플레이북과 2013년 블랙베리10 스마트폰을 내놨지만 반등하지 못했다. 2016년 자체 스마트폰 하드웨어 개발을 중단했고 2022년 1월 구형 OS 서비스도 종료했다.

차량용 기반 SW로 체질 전환
돌파구는 모빌리티였다. 차량 출고 후에도 업데이트로 기능을 개선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트렌드로의 전환이 기회가 됐다. 여러 제어기 기능을 고성능 컴퓨터에 모으다 보니 안전한 통합이 중요해졌다. QNX의 주력 기술이 정해진 시간 안에 작업을 처리하는 RTOS와 시스템을 분리해 장애 확산을 줄이는 하이퍼바이저다. QNX OS for Safety는 자동차 기능안전 표준 ISO 26262의 최고 등급 ASIL D 인증을 받았다. 블랙베리는 상위 25개 전기차 OEM 기업 중 24개 기업이 QNX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개발 효율도 강점으로 내세운다. QNX가 원폴에 의뢰해 8개국 개발자 1100명을 설문조사한 ‘Under the Hood: 2026년 SDV 개발자 리포트’에 따르면 응답자는 업무의 34.8%를 OS·미들웨어 연결 등 기반 통합에 쓴다고 답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기회를 찾고 있다. 한국 응답자 100명의 통합 업무 비중은 41.6%로 조사국 중 가장 높았고 88%가 개발 속도 압박을 호소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차세대 SDV 경쟁의 과제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가격을 내릴지일 것”이라고 했다.
QNX는 공급 범위를 넓혀 차량당 로열티를 높이려 한다. SDP 8.0으로 고성능·멀티코어 차량 컴퓨터에 대응하고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업 벡터와 개발한 알로이 코어(Alloy Kore)로 OS·가상화·통신·진단 등을 통합한다. 개발도구와 안전·보안 검증 자료도 제공한다.
가상환경도 활용한다. 지난 22일 ‘QNX 테크포럼 코리아 2026’에서 실제 로봇팔과 가상모델을 연동하는 서비스를 시연했다. 하드웨어가 준비되기 전부터 클라우드에서 개발을 시작하고 부품사·완성차 업체가 검증을 병행할 수 있어 시간 단축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수익은 개발용 라이선스·기술지원에서 양산 후 로열티로 이어진다. 지난 9월 다임러트럭·볼보그룹 합작사 코어튜라가 알로이 코어를 처음 채택하며 예상 로열티 잔고에 1억달러 이상이 추가됐다. 10월 20일 발표한 전체 잔고는 12억달러 이상으로 2026회계연도 말보다 26% 넘게 늘었다. 실제 매출은 양산 일정과 생산량 등에 달렸다.
단,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와 오픈소스 활용은 변수다. 고객은 라이선스뿐 아니라 통합·인증·유지보수를 포함한 전체 비용을 따진다. QNX는 사전 통합과 기술지원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자동차 밖에서는 로봇 시장이 기회다. 정 교수는 “피지컬 AI 등 대중 시장으로 가면 실시간 OS의 사용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로봇에서도 네트워크 분석과 기능안전 검증이 필요해진다는 설명이다. QNX는 대학 등 학계와 로봇·자동차 부품사 등과 제어·통신에서 RTOS의 효용을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개발 문턱 낮춰 고객 저변 넓힐 것”

Q. 자동차 외 어떤 분야로 확장하려 하나.
A. 제조·물류 현장의 자율이동로봇(AMR), 수술로봇, 국방 로봇, 중공업으로 넓히려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작업을 안전하게 수행해야 하는 분야다. AI가 행동을 결정할수록 실행 기반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해진다.
Q. 시장 지배력을 높일 전략은 무엇인가.
A. 개발 초기부터 QNX를 쓰도록 접근성을 높이려 한다. 과거에는 리눅스로 시제품을 만들고 양산 단계에서 QNX로 옮기곤 했다. ‘QNX Everywhere’ 프로그램으로 비상업적 용도에 무료 제공한다. 국내에서 국민대 등과 교육·산학협력, 기업 컨소시엄을 추진해 잠재 고객군을 형성하려 한다.
Q. 리눅스 기반 경쟁 제품과 비교한 강점은.
A. 안전이 중요한 기기의 개발 절차와 장기 지원 경험이다. QNX는 수십 년간 쓰이는 자동차·공장 설비를 위해 장기 지원 계약을 맺어왔다. QNX 8은 멀티코어 성능과 확장성을 개선했다. 당사 벤치마크에서 리눅스와 동등하거나 앞섰다. 하드웨어 활용도를 높여 비용을 줄이는 것도 목표다.
Q. AI 확산에 따른 보안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나.
A. 침입을 막는 데 더해 기기의 접근권한과 제어권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QNX는 OS를 기능별로 쪼갠 마이크로커널 구조로 공격에 노출되는 영역을 줄이고 다층 방어 체계를 제공한다. 고객·파트너의 시스템 설계와 보안 규제·표준 대응을 지원해 검증 부담을 줄이고 자체 기능 개발에 집중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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