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중년] 적중률 높은 오늘의 운세, 그 말이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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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이 운세의 적중률이 은근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막상 떨어지니 마음이 상했다.
"나도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데, 우리 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차라리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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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10월에는 ‘이 나이에도 가능할까’ 싶은 순간들을 담아 봅니다. <편집자말>
[정현주 기자]
10월 19일 오늘의 운세
오늘은 컨디션이 떨어지고, 의욕과 판단력이 함께 둔해지기 쉬운 흐름입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길 일도 유난히 예민하게 받아들여져 오해가 생기고...
아침마다 배달되는 오늘의 운세이다. 2주째 비슷한 내용이다. 무료 고객이라 그런가. 같은 내용을 '은·는·이·가'만 바꿔서 보내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운세의 적중률이 은근 높다는 것이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2주 전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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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료 운세가 맞았어. 컨디션이 떨어지고, 의욕과 판단력이 둔해지는. ?AI생성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마음이 아이들 손에서 뒹구는 말랑이처럼 제 모양을 못 찾고 있었다. 주방에서 된장찌개 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콩나물을 무치다 한 입 맛보고 엉덩이를 흔들던 나는 사라지고 영혼이 반쯤 가출한 여인이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되면 쌀을 씻어 밥솥 버튼을 누르고, 시간이 되면 줌바 수업에 가서 몸을 움직이는데 이렇게 슬픈 춤은 본 적이 없다. 축축한 우울감은 목젖까지 차올라 찰랑거리고 있었다. 무료 운세가 맞았어. 컨디션이 떨어지고, 의욕과 판단력이 둔해지는...
그래도 딱 한 가지 일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씩씩하게 변신 모드에 돌입한다. 바로 재수 중인 딸의 수시 시험이다. 노래 제목처럼 '벌써 일 년'이 되었다. 올해도 수시 1차 원서를 접수했고, 잡아놓은 날은 빨리 온다더니 시험 날짜가 따박따박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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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영상 시험장 안내문 영화영상 실기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시험이 있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1년 만에 소집된 국가대표팀이 된다. |
| ⓒ 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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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날엔 과일 도시락 딸을 시험장에 들여보낸 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는 동안 펼쳐놓은 부부용 과일 도시락과 커피. |
| ⓒ 정현주 |
"갔다 올게."
"딸, 편하게 하고 와! 파이팅!"
"우리 딸, 파이팅!"
차에서 내려 낯선 건물로 들어가는 딸을 향해 우리 부부는 1단 고음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손 네 개를 열심히 흔든다.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지면 그때서야 우리는 손을 내리고 발길을 돌려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캠퍼스 임장이다. 아파트처럼 대학도 마음에 드는 곳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학교는 운동장을 새로 했나 봐. 여기 붙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될 거야. 믿어보자고!"
새로 깐 듯한 운동장에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농구공이 쿵, 쿵 튀는 소리에 심장도 덩달아 뛰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들어갈 때보다 한 뼘은 내려간 어깨로 딸이 나온다. 딸은 뒷좌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우리는 드라마에 나오는 푼수 부부처럼 서로를 힐끔거리며 운전기사와 비서 역할에 충실한다.
떨어져 보니 딸아이 마음 알겠다
오랜만에 경기(!)가 없는 지난 주말,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렇게 안 올 것 같더니만 어느새 가을이 썰렁한 미소를 지으며 곁에 와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단골 치킨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2층 테라스 좌석도 비어 있었다. 운이 좋았다. 오랜만에. 목을 축이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남편이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안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공모전 낙방 별거 아니라고. 오히려 붙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내가 눈만 껌뻑거리며 대꾸가 없자 결심한 듯 텐션을 올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힘을 내라고.
딱 작년 요맘때가 떠올랐다. 딸이 지원한 대학의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딸은 방에 있었고 나는 안방에서 발표 시간을 기다렸다. 나는 미리 핸드폰에 찍어둔 수험번호를 까먹을까 봐 중얼거리며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화면에 뜬 빨간 볼드체의 '불합격'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래도 바다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딸을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표정 관리를 하고 아이 방 문을 열었다. 경쟁률이 백 대 일이 넘으니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별거 아니라고. 힘을 내라고. 그렇게 딸을 안아주려다가 벼락을 맞았다. 딸은 왜 자기 수험번호로 결과를 확인했느냐고, 그 한 마디만 반복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뭐가?"
"나도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데, 우리 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차라리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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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모습 대학 실기시험장으로 향하는 딸과 우리 부부 모습. 실제로는 양손을 번쩍 들어 열심히 흔든다. |
| ⓒ 정현주 (AI 생성 삽화) |
그리고 나에게도 다른 위로를 해보려 한다. 괜찮지 않은 거 안다고. 세상에는 별거 아닌 건 없다고. 억지로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갑자기 내일의 운세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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