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이코노믹스] 40년 저금리 시대의 종언, 금리 대폭 하락 기대 접어야

2026. 10. 2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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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지속될 고금리 시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오랫동안 경제활동을 해 온 중장년층은 대부분 금리가 하락하는 시대를 살아왔다. 유가 급등과 통화 팽창으로 나타났던 197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던 2020년까지,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는 40여 년에 걸쳐 장기적인 하락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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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 후퇴, 큰 정부, AI 투자로
고금리는 구조적 변화의 산물

가계는 무리한 차입부터 줄이고
부동산은 보유 비용 잘 따져야

주식도 현금 흐름이 더 중요해져
잘못된 투자판단의 대가 커질 것
」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를 살펴보면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981년 9월 15.8%를 고점으로 장기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2020년 8월에는 0.5%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과 유럽 주요국에서는 장기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는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언젠간 금리 내려갈 것’이란 기대
워낙 오랫동안 금리가 하락했던 만큼, 아직도 ‘언젠가는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관성처럼 남아 있는 듯하다. 직업적으로 채권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조차 이런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 확장세가 조만간 꺾이고 금리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투자에 반영하고 있지만, 시장금리는 좀처럼 이들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물론 경기 둔화 국면에서 금리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순환에 따른 단기적인 등락과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금리의 장기 추세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지난 40년 동안 금리를 끌어내렸던 힘이 약해지는 반면, 금리를 밀어 올리는 새로운 힘들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저금리 환경은 실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였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금리는 긴 호흡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 왔다. 금리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물가와 기업의 설비투자 수요였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20여 년 동안 금리가 기조적으로 상승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라디오 등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전력망과 공장 설비에 대한 투자가 확대됐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전쟁 지출도 물가를 자극해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1920~30년대에는 금리가 장기적으로 하락했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는 기술 진보로 공산품의 생산능력이 확대됐지만 당시의 화폐 제도였던 금본위제하에서는 통화 공급이 탄력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웠다. 재화가 흔하고 돈은 부족하니 물가 하락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어진 1930년대에는 대공황으로 수요가 붕괴하면서 디플레이션이 심화했고, 이는 장기적인 금리 하락으로 귀결됐다.

이후에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 길게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시안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재정지출이 늘어났고, 1971년 미국의 금태환 중단에 따른 통화 팽창과 두 차례의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금리는 장기적인 상승세를 이어가 1980년대 초 역사적 고점에 이르렀다. 40여 년에 걸친 금리의 장기 상승세가 나타났고, 물가 안정은 거의 모든 나라가 추구한 목표였다.

1980년대 이후 시작된 금리 하락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출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폴 볼커 의장은 기준금리를 20% 안팎까지 끌어올리는 강력한 긴축을 단행했다. 경기침체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었다. 다만 이후 40여 년의 물가 안정을 중앙은행의 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금리를 낮추는 구조적 변화가 함께 진행됐기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가 오래 유지된 이유
첫째는 세계화다. 냉전 종식 이후 기업들은 비용이 낮은 곳으로 공장을 옮기고 국제 분업을 확대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글로벌 생산체제에 편입된 중국은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값싼 공산품을 세계에 공급했다. 중국이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던 세계화의 진전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면서 금리의 하향 안정을 뒷받침했다.

둘째, 정부 역할의 변화도 금리에 하방 압력을 높였다. 물가 불안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면서 케인스 경제학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장 중심의 경제사상이 힘을 얻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가 집권한 1980년대 초 이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흐름은 자본주의의 표준적 모델처럼 받아들여졌다. 감세와 규제완화, 민영화 등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관료들은 재정건전성 제고라는 족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였던 미국도 ‘작은 정부’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었던 19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 때 역사적인 재정균형을 달성하게 된다.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재정건전성이 중시되면서 재정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이 물가와 금리에 가하는 상승 압력은 이전보다 현저히 약화했다.

셋째, 미국 기업들의 자본 사용 방식이 금리 하락에 기여했다. 제조업 생산기지가 아시아로 옮겨가는 동안 미국에서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플랫폼 기업들이 급성장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체와 달리 이미 구축된 인터넷망과 소프트웨어의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추가 투자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벌어들인 이익을 설비투자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에 배분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기업의 외부 자금조달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점 역시 저금리 환경을 뒷받침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이젠 고금리, 바람의 방향이 바뀌다
지금은 이 세 가지 조건에 정확히 반대되는 역풍이 불고 있다. 먼저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디에서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누가 생산하는지가 중요해졌다. 미·중 갈등은 경제적 효율보다 안보와 진영의 논리가 앞서는 현실을 상징한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은 멀리 떨어진 생산기지에 지나치게 의존한 공급망의 취약성도 드러냈다. 주요국들이 리쇼어링을 염두에 둔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기업들은 더 높은 생산비를 감수해야 한다. 세계화의 물가 안정 효과는 현저히 약화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다시 커지면서 ‘큰 정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는 흔들리는 금융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해 AIG와 GM 등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민간 경제활동이 멈춘 자리를 정부의 재정지출이 메웠다. 문제는 비상 상황이 끝난 뒤에도 재정이 좀처럼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6% 안팎에 이른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재정 규율은 느슨해졌고, 정부가 대규모로 발행하는 국채는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재정적자 확대는 정부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면서 역시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을 높여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 변화는 미국 기업들의 투자다. 그동안 투자에 대한 부담 없이도 높은 수익성을 향유해왔던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시대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막대한 설비투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오라클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반도체를 사들이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전력을 확보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효과가 중심이던 성장 방식이 하드웨어와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무거운 성장’으로 바뀐 셈이다. AI 투자의 수익성이 어떻게 검증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자금은 막대하다. 투자를 위한 기업의 자금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리를 끌어올리는 또 하나의 힘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화의 후퇴는 생산비를 높이고, 큰 정부는 국채 공급을 늘리고, AI는 민간의 자금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금리를 낮춰온 요인들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의 산물로 봐야 한다.

금융투자의 기준도 달라져야
이런 환경에서는 금리가 언젠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가계는 대출금리가 다시 과거의 낮은 수준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며 빚을 늘리기보다, 금리가 더 상승하더라도 원리금을 감당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무리한 차입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부동산 역시 가격 상승만을 기대하기보다 보유 비용과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금융투자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채권은 금리가 높아진 만큼 이자수익의 매력이 커졌지만, 장기채는 금리가 추가로 오를 경우 가격 손실이 클 수 있다. 금리 하락에 대한 베팅보다 만기를 나누고 투자기간에 맞게 채권을 보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주식도 막연한 성장 기대보다 실제로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저금리 시대에는 돈을 빌리는 비용이 낮았고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도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었다. 고금리 시대에는 현금흐름이 더 중요해지고 잘못된 차입과 투자 판단의 대가도 커진다. 금리가 오르내리는 순간마다 방향을 맞히려 하기보다, 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러도 버틸 수 있는 자산과 부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고금리 시대는 언젠가 찾아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현실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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