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극한 추위 넘은 50일…"해 뜨자 바닷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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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빙에 갇혀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뜨기를 기다렸고, 바닷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헤쳐 나갔습니다."
한국 선박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치고 돌아온 팬스타 1등항해사 박지정 부장은 22일 해양수산부에서 열린 '북극항로 시범운항 참여자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오행록 해수부 북극항로추진본부 부본부장은 "이번 시범운항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축적해 그 결과를 업계와 유관기관에 공유할 계획"이라며 "선박 경로와 화물 등을 다양화하고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선대 확충을 위한 내빙선박 도입 선사 지원과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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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항해 못할까 걱정"…유빙 사이 열린 바닷길 찾아
"첫 운항이라 데이터 부족…학습하고 습득한 부분 커"

"유빙에 갇혀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뜨기를 기다렸고, 바닷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헤쳐 나갔습니다."
한국 선박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마치고 돌아온 팬스타 1등항해사 박지정 부장은 22일 해양수산부에서 열린 '북극항로 시범운항 참여자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50일간 이어진 항해에서는 유빙이 앞을 막고 위성항법장치(GPS)와 통신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등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선원들이 항로를 다시 짜고 속도를 조절하며 길을 찾았다.
지난 8월22일 부산항을 출발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해를 지나 유럽으로 향한 뒤 다시 북극항로를 거쳐 지난 11일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한국 국적 선박이 북극항로를 왕복한 이번 시범운항은 50일 만에 마무리됐다.
성과는 컸다.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북극항로를 통과했고 기존 항로보다 운항거리는 약 35%, 운항기간은 약 10일 줄였다. 무엇보다 해외에 의존해온 북극항로의 실제 상선 운항데이터와 우리 선원들의 극지 운항 경험을 처음으로 축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해수부는 이번에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해 업계와 유관기관에 공유하고 후속 시범운항과 내빙선박 도입,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개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50일간의 항해는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가장 긴박했던 순간은 출항 열흘가량 뒤 찾아왔다. 8월31일 밤에서 9월1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다수의 유빙이 항로를 가로막았다. 해가 진 뒤에는 시야까지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유빙은 수면 위로 보이는 것보다 아래에 잠긴 부분이 더 커 레이더에만 의존해 운항하기에는 위험했다.
선장과 항해사들은 무리하게 배를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린 뒤 해가 뜨자 저속으로 운항하며 유빙 사이에 열린 바닷길을 찾아 빠져나왔다.
박 부장은 "선원으로서는 항해를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고 운항감독으로서는 이후 플랜B, 플랜C까지 고민해야 했다"며 "해가 뜨면서 보이지 않던 바닷길이 열렸고 저속으로 조금씩 헤쳐 나갔던 기억이 가장 깊게 남는다"고 말했다.

극지 환경은 선박에도 시험대였다. 고위도로 올라가자 나침반의 오차가 커지고 GPS 위치정보가 일시적으로 끊기는 구간이 나타났다. 통신 역시 일시적으로 단절됐다. 팬스타는 위성통신뿐 아니라 저궤도위성과 스타링크까지 복수의 통신망을 준비해 비상연락망을 유지했다.
낮은 온도도 문제였다. 북극해에서는 폴라코드에 따라 마린가스오일(MGO)을 사용했지만 낮은 온도에서 윤활유와 연료 순환계통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선원들은 보온과 히터 등을 이용해 선박의 주요 장비를 관리하며 항해를 이어갔다.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향후 북극항로 운항을 위한 데이터가 됐다. 특히 북극항로를 연구해온 연구자들에게 이번 항해의 의미는 남달랐다. 권영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2012년부터 북극항로 관련 교육과 연구를 해왔지만 실제 상선의 운항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북극항로를 먼저 이용해온 국가와 선사들이 실제 운항데이터를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제일 아쉬웠던 건 북극항로를 실무적으로 항해했던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며 이번 승선을 통해 10여년간 이어온 북극항로 연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항해에서는 교과서나 시뮬레이션만으로 얻기 어려운 노하우가 쌓였다. 출항 때 정해놓은 항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성으로 작성된 '아이스 차트'를 계속 받아 유빙의 위치와 밀집도를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새로운 항로를 만들었다.
권 교수는 "출항 때 세웠던 항로가 있더라도 중간에 아이스 차트를 받아 진입하기 전에 새로운 루트를 만들었다"며 이를 통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첫 운항인 만큼 시행착오도 있었다. 유럽으로 향하던 팬스타 아크로호는 베링해를 통과한 뒤 유빙과 역조를 만나 속도를 약 12노트까지 낮춰야 했다. 당초 계획보다 일정이 이틀가량 밀렸지만 유빙 구간을 빠져나온 뒤 속도를 높여 항해를 이어갔다. 권 교수는 "이번 항해는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항로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변화가 있었다"면서도 "첫 시범운항이라 데이터가 부족했던 만큼 이번에 학습하고 습득한 부분도 크다"고 평가했다.
선원들의 경험 역시 북극항로를 계속 열어나가기 위한 자산으로 남았다. 극지 운항 경험을 가진 국내 선원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부장은 "시범운항을 준비하면서 배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선원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극지 환경을 경험해본 선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넓어진 경험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이런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나중에는 분명 상업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팬스타도 이번 한 차례 운항에 그치지 않고 정기 운항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달 팬스타그룹 해운기획사업부 이사는 "5000~6000TEU급 선박 운항과 정기 스케줄이 가능한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주 운항하는 기존 정기선 개념을 벗어나 매년 특정 기간에 반복적으로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방식도 검토 대상이다.
경제성은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다. 팬스타는 현재 이번 운항의 비용과 수익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 김 이사는 "선사는 경제성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면서도 "사전에 정기적인 스케줄이 정해진다면 경제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운항 데이터를 토대로 경제성 분석을 진행한 뒤 다음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오행록 해수부 북극항로추진본부 부본부장은 "이번 시범운항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축적해 그 결과를 업계와 유관기관에 공유할 계획"이라며 "선박 경로와 화물 등을 다양화하고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선대 확충을 위한 내빙선박 도입 선사 지원과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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