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자 돼라” “말도 안 돼요”…‘세라젬 아들’ 된 22년 직원

최은경, 박영우 2026. 10. 2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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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세라젬 서울타운에서 만난 이경수 대표. 2003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창업주 이환성 회장의 양자가 돼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형제 간, 부자(父子) 간 경영권 분쟁도 적지 않은 재계에서 중견기업 창업주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문경영인을 아들로 삼아 회사를 물려주기로 했다.

세라젬은 창업주인 이환성(65) 회장이 이경수(48) 대표를 성인 양자로 입양하고, 자신의 지분 60.5% 중 10%를 증여했다고 20일 발표했다. 20년 넘게 함께 일한 직원에게 가족의 지위와 회사 소유권을 넘기는 파격적인 결정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승계 방식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해 7월 13일 일요일. 이 회장은 이 대표를 카페로 불러 뜻밖의 제안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대표가 나를 대신해 앞으로 쭉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을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줄까도 고민해 봤지만 아닌 거 같더라고. 그러다가 가장 순수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았네. 자네가 내 양자가 되는 거야.”

이 대표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각자 가족이 있는 데다 경영을 위해 굳이 법적 부자 관계까지 맺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 회장을 피해 도망 다니던 이 대표는 한 달 뒤 결국 마음을 바꿨다. “나를 부양하라는 게 아니라니까. 회사만 생각합시다. 복잡할 것 없어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세라젬 서울타운에서 이경수 세라젬 대표가 창업주 이환성 회장의 양자가 된 배경과 향후 경영권 승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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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자 되면 돼”…22년 인연이 父子 관계로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세라젬 서울타운에서 만난 이경수 대표는 “부모님도 처음에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설득을 드린 끝에 허락하셨다”며 “회장님 가족의 동의도 얻어 함께 구청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환성 회장의 30대 외동딸은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입양신고를 마친 뒤 이 회장은 “큰 부담을 지워 미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법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됐지만 호칭은 여전히 ‘회장님’과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자신을 이 회장의 아들이자 ‘세라젬의 아들’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4월 첫 증여가 이뤄졌고, 증여세는 5년간 분할 납부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타인에게 증여하든 자녀에게 증여하든 증여세율은 같다. (입양은) 경영 방식이나 지분 처분 등에 대한 어떤 조건도 없이 오직 신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라며 “최종적으로 최대주주가 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추가 지분 이전 규모와 시기는 미정이다.

이 회장은 2년여 전부터 경영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주요 결정을 이 대표에게 맡겨 왔다. 그를 후계자로 낙점한 배경에는 사업가 기질과 위험을 감수한 실행력이 있었다.

■ 세라젬은 어떤 기업

「 이환성 창업주가 1998년 설립한 홈 헬스케어 기업으로 척추 관리 의료기기, 프리미엄 안마의자 등이 주력 제품이다.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다 2018년부터 국내 사업을 본격화했다. 2019년에는 의료기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카페형 매장 ‘웰카페’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척추 온열 의료기기를 넘어 척추·운동·휴식·뷰티·순환·에너지·정신 등 7가지 건강 습관을 중심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확대하며 글로벌 웰니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

이 대표는 대기업에 합격했지만 건강 분야의 성장성을 예상해 2003년 세라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왔다. 입사 이듬해 터키 출장에서 개점 전부터 150명이 넘는 고객들이 줄 선 모습을 보고 판단이 옳았다는 걸 확신했다고 한다. 이후 34세에 팀장, 38세에 본부장으로 빠르게 승진했지만 2017년 직접 사업을 하겠다며 본사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과 아파트 판 돈으로 중국 쓰촨성에서 세라젬의 총판 개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격려금을 건네며 도전을 응원했던 이 회장은 2018년 이 대표가 잠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국내 사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둘은 거의 매일 사업을 논의하며 신뢰를 쌓았다. 이 대표는 “회장님과 제 생각이 거의 ‘동기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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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아 中 사업 도전…창업주 마음 얻은 실행력


2019년에는 내부 반대에도 의료기기 체험 공간인 ‘웰카페’를 선보였다. 첫해 8곳이던 웰카페는 2023년 120여 곳으로 늘었다. 국내 매출도 2019년 700억원대에서 2022년 6000억원대로 증가했다.

그의 목표는 세라젬을 기업가치 10조원 이상의 글로벌 웰니스(Wellness)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우선 중국 1200여 개 매장에 ‘7가지 건강습관’을 위한 신제품을 도입해 장기적으로 중국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웰니스 호텔과 시니어 주거시설 사업도 추진한다. 이 대표는 “미국 증시 상장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자녀가 아닌 사람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사례는 있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지분을 유한재단 등에 넘겼다. KSS해운의 경우 창업주가 물러난 뒤 직원 출신 전문경영인 체제와 우리사주조합 중심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문경영인 입양 승계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며 “경영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와 사업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승계 이후 후계자가 경영 능력을 입증하고, 실질적 성과를 내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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