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유홍준 소장품, 전시할 가치를 얻었다

고정애 2026. 10. 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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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건 그가 쓴 ‘불찰(不察)’이란 단어 때문이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이 자신의 소장품인 친일파의 글씨를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전시했다가 철회한 건을 두고 “뉘우치고 부끄럽다”면서 “미술사학자로서 중대한 착오이자 불찰”이었다고 했다.

‘중대한’을 붙인들 불찰의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마땅히 살펴야 할 일(察)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不)는 의미다. 그저 못 살핀 것뿐인가.

■

「 '뉘우치고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관리 책임인 양 ‘불찰’로 축소
자리 지키며 무슨 책임 다하는 건가
」

요약하면 그는 2019년 땡처리 옥션에 1만원에 나온 유묵(‘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을 5만원에 샀다. 전임 관장 시절부터 기획된 특별전에 올 5월 자신의 소장품 2점을 추천했다. 하나가 유묵이었다. 보험평가액으로 30만원을 적었고 대신 내는 양 ‘代(대)유홍준’이라고 적었다. 친일파의 작품으로 결론난 다음에 네 차례 사과했는데 “박물관이 기본적 책무에서 미흡했다. 박물관 역량의 부족이자 실수”라고 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드러난 뒤인 19일 국감장에서야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소장품이라 밝히지 않은 걸 두곤 “부끄러워 그냥 지나가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기야 그는 이전 논란도 그런 식으로 대했었다. 여전히 문화권력이니 이번에도 통할 거라고 봤을까.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쯤에서 박물관에서의 전시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좀 극단적 사례지만 ‘살바토르 문디’다. 2005년 일군의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일 가능성을 보고 구매했다. 이후 조심스럽게 복원한 뒤 전문가들에게 보여줬다. 이 중엔 내셔널갤러리의 니콜라스 페니 관장도 있다. 페니는 내셔널갤러리 소장품인 ‘암굴의 성모’와 직접 비교를 위해 그림을 런던으로 옮겼고 전문가들을 불렀다. 옥스퍼드대 교수 마틴 켐프도 한 명이었다. 2019년 인터뷰에서 켐프는 이렇게 말했다.

“방에 들어갔을 때 다른 레오나르도 전문가 세 명 등이 있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대 흥분해선 안 됐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인지 아닌지에 따라 걸린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엄청난 돈이 걸렸고 전문가로서 명성이 걸렸다. 직감을 믿지 말자고 생각했다. 과학적 분석과 미술사적 연구를 비롯해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자고 했다. 가능한 모든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모든 검증과 반론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이 작품은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작품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내셔널갤러리는 2011년 레오나르도 특별전에 이 작품을 포함했고, 레오나르도 ‘작품(autograph)’으로 표기했다. 이후 그림은 천문학적 금액(4억500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 여전히 레오나르도 작품이 맞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켐프는 “검증 후 전시는 작품에 엄청난 신뢰성과 권위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유 관장도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추사 김정희의 말을 인용, 서화를 감상하는데 “금강역사 같은 무서운 눈(金剛眼)과 혹독한 세리의 손끝(酷吏手) 같은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왔을 것이다.

2017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가 역대 최고가인 4억5030만 달러에 낙찰됐다. 사진은 그해 10월 영국 런던에서의 ‘살바토르 문디’.로이터=연합뉴스

관장으로서 그는 그러지 않았다. 검증이 미비한 채 전시했다. 그는 사적 이익을 얻을 게 없다고 했다. 기증할 거니까. 그렇다면 그 글씨가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다른 박물관에 보관돼도 좋다는 말인가. 이익이 없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 금전적으론 몰라도 ‘땡처리된 애국지사의 유묵을 발견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했고 그걸 기증했다’는 명예를 얻을 뻔했다.

19일 그는 사퇴하겠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한 지인은 “오늘 하루(국감일)만 버티면 된다는 싸구려 판단 때문이겠지. 자리를 지키면서 무슨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일까”라고 했던 데 동의한다.

아이러니한 건 해당 글씨가 이젠 전시할 ‘가치’를 얻었다는 점이다. 유홍준이라는 문화권력의 오판과 그가 관장인 국립중앙박물관의 검증 실패가 친일파의 글씨에 새로운 역사적 맥락을 부여했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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