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와 손잡은 북한, 한국은 '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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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정식 개통했다.
한 달 앞서 9월 7일에는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두만강 자동차다리가 개통했다. 그동안 북러 육상 물류는 1959년 개통한 러시아 하산과 북한의 두만강역을 잇는 철도교 '우정의 다리' 하나에 기대왔다.
한 달 간격으로 개통된 두 다리로 북한은 동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중국과 이어지는 육상 통로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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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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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중 신압록강대교 개통식 북한과 중국이 지난 15일 압록강 현지에서 신압록강대교 개통식을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
| ⓒ 연합뉴스 |
신압록강대교는 총연장 3026m, 폭 33m, 왕복 4차로 다리다. 2010년 12월 착공했다. 건설비 약 22억 위안(약 4400억 원)은 중국이 전액 부담했다. 다리는 2014년에 다 지어졌지만 북한 쪽 연결도로와 세관 시설이 없어 12년간 쓰지 못했다. 2013년 친중파로 분류됐던 장성택의 숙청, 거듭된 핵실험과 유엔 제재에 대한 중국의 동참, 코로나19 팬데믹과 국경봉쇄 등 북중 간의 정치적 긴장이 원인이었다.
그동안 북중 교역은 1943년에 지은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와 나진으로 연결되는 신두만강대교(원정리~취안허)에 의존했다. 조중우의교의 경우 단선 철도와 1차선 도로가 한 다리에 붙어 있는 낡은 교량이다. 온성-도문을 연결하는 두만강대교는 기존 1941년에 세워진 낡은 다리 옆에 2016년부터 4차로로 확장해서 건설하여 2019년에 완공되었지만 여전히 개통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개통된 신압록강대교는 대형 화물차가 양방향으로 다닐 수 있는 왕복 4차선으로 수송 능력이 크게 늘어난다.
한 달 앞서 9월 7일에는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을 잇는 두만강 자동차다리가 개통했다. 2024년 6월 평양 북러 정상회담에서 합의했고, 2025년 4월 착공해 495일 만에 완공했다. 왕복 2차로이고, 교량 본체는 약 1km, 연결 구간을 포함하면 약 5km다. 러시아는 하루 최대 300대가 통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러 육상 물류는 1959년 개통한 러시아 하산과 북한의 두만강역을 잇는 철도교 '우정의 다리' 하나에 기대왔다. 이번에 개통한 자동차 다리는 사실상 북러를 잇는 첫 도로교다.
한 달 간격으로 개통된 두 다리로 북한은 동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중국과 이어지는 육상 통로를 갖게 됐다. 정상 간 합의가 있었고, 교량과 세관, 검역소, 물류단지가 함께 들어섰다. 북중·북러 교류는 이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물동량이 확대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같은 시기 남북은 반대 방향으로 갔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2024년 10월 15일에는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신압록강대교 개통일과 정확히 같은 날짜다. 2년 사이에 북한은 남쪽 길은 끊고 북쪽 길은 열었다.
끊긴 것은 비정치적 관계의 끈이었다
남북 간 단절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쪽은 북한이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정찰위성, 오물풍선, 도로 폭파가 모두 북한에서 시작됐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 남북 사이에는 정치 갈등과 별개로 유지되던 관계가 있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9·19 남북군사합의다. 이것들은 협상용이나 레버리지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남북이 서로를 완전히 적으로 돌리지 않게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신뢰 기반이었다.
하지만 이 셋은 모두 보수정부에서 멈췄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건 뒤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중단했다. 북한 군인의 과잉대응으로 인한 사건으로 우선 북한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협의를 통해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할 길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 정치는 중단 결정을 강력한 대응으로 치켜세웠다. 금강산 관광은 지금까지 재개되지 못했다.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전면 중단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가 이유였다. 개성공단은 2013년 4월 8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이유로 북한이 공단 내 북측 노동자를 전원 철수시키고 우리 측 인원의 진입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하지만 남북은 수차례의 실무회담을 거쳐 같은 해 8월 14일에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5개 항의 정상화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166일 만인 9월 16일에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개성공단은 남북 노동자가 매일 함께 일하던 유일하며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공간을 스스로 닫았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윤석열 정부가 먼저 멈춰세웠다. 2023년 11월 북한 정찰위성 발사 뒤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고, 하루 뒤 북한도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윤 정부는 2024년 6월 오물풍선을 이유로 다시 전부 효력을 정지하면서 9.19 남북군사합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접경지역 우발 충돌을 막는 장치가 사라졌다. 이어 대북확성기가 다시 켜졌다.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단 중단, 9.19남북군사합의 정지 모두 북한의 행동이 계기였다. 그러나 우리의 대응 방식은 모두 '중단'으로 같았다. 우리는 정치·군사적 갈등을 이유로 비정치적 관계까지 끊었다. 물론 다시 이을 방법을 남겨두지도 않았다. 이것은 현명한 대응 원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무책임이고 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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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향하는 중국 컨테이너 트럭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하루 앞둔 14일 중국 트럭들이 대교를 건너 북한 쪽으로 향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지금 북한은 남쪽에서 얻을 것이 없다. 대신 중국과 러시아에서 얻는다. 다리를 놓아주고, 물자를 사주고, 노동력과 항만을 쓰는 쪽이 중국과 러시아다. 북한의 계산에 한국은 없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제안해도 북한은 반응하지 않는다. 굳이 우리에게서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우리는 오리알이 된 셈이다.
나진항이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는 나진항 부두를 50년 장기 임차했고, 중국 기업도 부두 10년 사용권을 확보했다. 러시아산 석탄은 하산-나진 철도를 거쳐 나진항에서 배에 실린다. 2014~2015년에는 이 석탄이 나진항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왔다. 남·북·러 3각 물류 시범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된 대북·대러 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코레일·포스코·현대상선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이 사업으로 총 3차례에 걸쳐 시범 운송이 진행되어 시베리아산 유연탄이 하산에서 나진을 지나 포항제철소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사업도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우리 정부는 강력한 독자 제재를 발표했다. "북한을 기항한 외국의 선박은 180일 이내에 국내 항구에 입항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단한 것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쓰고 있다.
석탄과 광물 같은 자원, 항만, 물류망, 사람의 왕래까지 북한이 바깥과 연결되는 모든 통로에서 한국은 빠져 있다. 한국은 북쪽 육로가 막힌 채 바다와 하늘로만 대외 교류를 하는 사실상의 섬나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대륙철도, 가스관 구상은 모두 북한을 거쳐야 하는 사업이다. 지금은 논의조차 어렵다.
북한이 앞으로 변한다면 그 변화는 중국, 러시아와의 교역과 협력 속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그 과정에 개입할 수단이 없다. 이니셔티브를 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은 결과다.
다시 이을 수 있는 것부터
강경 대응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대응의 목표와 출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금강산, 개성공단, 9·19 합의를 멈출 때 정부는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언제 어떻게 되살릴지 트랙을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북한의 고립이 아니라 한국의 고립이다.
북중·북러 교류가 제도로 굳어질수록 남북 관계를 되돌리는 비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군사 갈등과 비정치적 교류를 분리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9·19 군사합의 복원처럼 우리 정부가 먼저 할 수 있는 조치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러·한중관계를 통해 어떻게든 북한에 숟가락 얻을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당장 응하지 않더라도 다시 이을 수 있는 끈을 남쪽이 먼저 준비해 두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다 가져가기 전에.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한다. 정치개혁, 분단체제 해체 등을 연구하며 주체적 시민의 참여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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