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타타타타, 타자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강득주 2026. 10. 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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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덕후 관점에서 영화 속에서 활약한 여러 타자기들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영화를 둘러싼 이슈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최근에는 당시 기자들이 타자기로 기사를 썼느냐는 고증 문제까지 불거졌다.

오늘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해 온 타자기들을 소개한다.

심지어 공병우 타자기로 출전한 한국 소녀의 연출에 감독도 타자기 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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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한 타자기 이야기

타자기 덕후 관점에서 영화 속에서 활약한 여러 타자기들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기자말>

[강득주 기자]

영화 <암살자(들)> 개봉 후 누적 관객은 300만 명을 넘어가고 있다. 영화를 둘러싼 이슈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최근에는 당시 기자들이 타자기로 기사를 썼느냐는 고증 문제까지 불거졌다. 고증 덕분에 타자기가 관심을 받으니 타자기 덕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  영화 암살자(들) 메인 예고편 한 장면 화면 캡처.
ⓒ ㈜하이브미디어코프
결론부터 말하면, 1970년대 기자들이 직접 타자기로 기사를 쓰는 일은 드물었다. 언론사뿐 아니라 문서를 다루는 여러 곳에서 타자기를 주로 다룬 사람은 여성 타자수였다. 남성이 종이에 초고를 써서 넘기면 여성 타자수가 타자기로 옮기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했지만 남녀의 일은 엄격히 나뉘어 있었다. 지금 보면 엄연한 차별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관례였다.

역사물에서 고증은 중요하다. 영화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서 자칫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허진호 감독도 <씨네 21> 인터뷰에서 당시 기자들이 타자기를 자주 쓰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펜보다 힘 있게 전달될 것 같았다며,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들의 의지를 시청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밝혔다.

타자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 스미스코로나 클래식12 타자기 스미스코로나 클래식12 타자기. 필자 소장품
ⓒ 강득주
고증 문제는 잠시 차치하고 타자기 이야기를 해 보자. 타자기라고 하면 대중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필자가 6년 넘게 타자기를 다루며 경험한 바로는 대부분 '골동품'을 떠올렸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물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타자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컴퓨터에 사무기기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다. 창고 구석에 처박힌 타자기도 있겠지만, 어떤 타자기는 제2의 직업을 얻어 우리 곁에 남았다. 오늘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해 온 타자기들을 소개한다.

스미스 코로나 클래식 12

가장 먼저 소개할 타자기는 <암살자(들)>(2026)에서 신문기자 역의 박해일과 이민호가 쓰는 미국 스미스 코로나의 클래식 12(1963~1983년경 생산)다. 박해일은 파란색, 이민호는 갈색 모델을 썼다. 영화의 배경이 1974년이니 시대와도 잘 맞는다.

한글 자판을 달아 OEM 생산되거나 국내에서 한글 타자기로 개조돼 널리 쓰였고, 캐리지 크기에 따라 클래식 12와 클래식 15 두 가지가 있다. 부드럽고 경쾌한 타건감에, 포터블 체급이지만 묵직한 무게감 덕분에 안정적으로 타이핑할 수 있어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사랑받는 명불허전의 기종이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2025)에서 이성민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장면에도, 강동원·김하늘 주연의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포스터에도 이 타자기가 보인다.

언더우드 넘버 5

두 번째는 tvN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2017)의 언더우드 넘버 5다. 1900년 무렵 출시돼 1930년대까지 주력으로 생산된 밀리언셀러로, 현대식 타자기의 원형으로 꼽힌다. 극의 배경이 1930년대이니 넘버 5를 고른 것은 적절하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짚을 것이 있다. 1930년대 한글은 주로 세로 쓰기였다. 고증을 제대로 했다면 같은 시기 송기주 타자기처럼 글자가 옆으로 누워 찍히고, 종이를 돌려 세로로 읽는 장면이 나와야 했다. 자판도 1969년에야 표준이 된 네 벌식 배열이다. 하지만 당시 이를 크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 언더우드 넘버5 한글타자기 시카고타자기로 불리는 언더우드 넘버5 한글타자기. 필자 소장품
ⓒ 강득주
스페리 레밍턴 100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2025)에서는 극 중 영화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칠 때마다 스페리 레밍턴 100 스탠더드 타자기가 등장한다. 1960~1970년대에 많이 생산됐고, 크기가 크고 내구성이 좋아 언더우드 터치마스터 5와 함께 1970~1980년대 타자 학원의 실습용으로 널리 보급됐다. 촬영팀이 타자기 손 대역을 구한다는 연락에 필자도 참여할 뻔했으나 일정 문제로 함께하지 못했다.

마라톤 1000 DLX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에서는 형사들이 조서를 꾸밀 때 타자기가 자주 나온다. 눈에 띈 기종은 동아정공의 마라톤 1000 DLX와 913, 크로바(경방)의 탑스타 10S이다. 두벌식 자판의 탑스타 10S는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구하기 쉬워 초보자가 접근하기 좋고, 마라톤 1000 DLX와 913은 네 벌식과 두벌식 모델이 모두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운이 좋으면 5만~10만 원 선에서 살 수 있다.

크로바 810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2014)에는 크로바 810이 나온다. 송승헌이 헌병대에서 엄태구에게 조사받는 장면이다. 탑스타 10S 못지않게 많이 팔린 기종으로, 일본 실버 세이코(Silver Seiko) 810과 디자인이 같아 기술 제휴로 국내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네 벌식과 두벌식 모델이 있고 지금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최근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2026)에도 마라톤 타자기가 화면에 잡힌다. 김선호의 집 서재가 나오는 장면이다. 아웃포커싱 처리돼 2000 DLX 모델인지 3000 DLX 모델인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국산 타자기가 여전히 현역 배우로 뛰고 있다는 증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도 타자기는 중요한 소품

이제 해외 영화로 넘어가 보자.

첫 번째는 국내에 <사랑은 타이핑 중!>으로 소개된 프랑스 영화 <포퓰레르(Populaire)>(2012, 국내 개봉 2013)다. 필자의 1순위 추천작으로, 타자기에 관심 있다면 꼭 봐야 할 영화다. 자동차에 F1이 있다면 1950년대 타자기 제조사들에게는 스피드 타이핑 대회가 있었다.

대회가 무대인 만큼 다양한 기종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인공 로즈 팡필의 주력기는 스위스 헤르메스의 앰배서더(1950년대 초~1970년대 생산)다. 심지어 공병우 타자기로 출전한 한국 소녀의 연출에 감독도 타자기 덕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타인의 삶>(2006)에는 동독 그로마Groama의 콜리브리(1954~1962년 생산)가 나온다. 얇고 가벼운 초경량 휴대용이지만 타건감이 좋아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고, 해외에서도 비교적 고가에 거래된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2000)에서는 언더우드 256과 청타기를,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1991)에서는 언더우드 유니버설(1930년대 중반~1950년대 생산)타자기를 볼 수 있다.

<리플리>(1999)에서 맷 데이먼이 쓰는 타자기는 올리베티사의 레테라 22(1950~1965년경 생산)이다. 원작 소설에는 헤르메스 베이비로 나오지만 영화에서 감독의 선택은 레테라 22였다. 콤팩트한 크기에 타건감이 좋아 필자도 3순위 안에 꼽는 타자기 기종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주인공이 쓰는 타자기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은데, 1920년대 출시된 언더우드 포터블 4 뱅크(1926~1947년 생산)와 가장 닮았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언더우드 4뱅크를 구매하려는 이들이 꽤 있었다.

<트럼보>(2015)에서는 주인공이 딸과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타이핑하는 장면에 회색 IBM 전동 타자기 Model A 이그제큐티브(1949~1954년 생산)와 검은색 수동 타자기가 함께 놓인다. 언더우드 넘버 5까지 등장해 수동에서 전동으로 넘어가던 타자기의 변천사를 한 편에서 훑어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도 타자기가 중요한 장면을 만든다. 전사자 유족에게 보낼 통지서를 타이핑하던 타자수가 같은 성(姓)의 형제 셋이 모두 전사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면의 한계로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타자기는 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사무기기가 아닌 배우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 광고에도 꽤 자주 등장한다. 이번 기회에 앞서 소개한 작품들에서 타자기를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 보시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 매거진 <타자기이야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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