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미술 100년 기념 전시회

김명희 2026. 10. 20. 11:1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구 중구 약전골목 소재 교남YMCA건물은 1919년 3월 8일 대구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역사의 현장이다. 교남YMCA의 후신인 대구YMCA는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0월 19일 <대구 근대미술이 시작된 그 자리, 우현 박명조 그리고 박종규> 전시회를 열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구 중구 약전골목 교남YMCA건물에서, 박명조 화가와 박종규 화가 개인전

[김명희 기자]

▲  대구 최초 서양화 개인전 개최 10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교남YMCA건물(사진 가운데), 박명조 화백(왼쪽), 박종규 화백(오른쪽)
ⓒ 김명희
대구 중구 약전골목 소재 교남YMCA건물은 1919년 3월 8일 대구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역사의 현장이다. 뿐만 아니라 대구 근대미술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1926년 9월 23일 박명조 화가가 이곳에서 대구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교남YMCA의 후신인 대구YMCA는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0월 19일 <대구 근대미술이 시작된 그 자리, 우현 박명조 그리고 박종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열이틀 동안 계속된다.

이번 전시회 예술감독인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는 "1926년 열린 박명조의 서양화 개인전은 한 작가의 작품 발표를 넘어 당시 대구에서 성장하고 있던 새로운 미술문화와 시민사회가 직접 만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면서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오늘, 대구미술은 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 국제미술의 흐름과 호흡하며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906년생 박명조 화백, 1966년생 박종규 화백

김태곤 큐레이터의 발언 속에 이번 전시회가 건물 1층에 주로 박명조 화백 작품 전시회, 2층 전체에 박종규 화백 초대전을 마련한 까닭이 설명되어 있다. 박종규 화백은 계명대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회화· 조각·설치·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지각 및 인식의 관계를 탐구해온 대구 출신 현대미술가이다.

실제로 전시회에 들러보면 박명조 화백은 100년여 전부터 서양화 작업을 해온 초기 화가답게 사실적 화풍을 보여준다.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의 제목도 대부분 '풍경' 아니면 '정물'이다. 그에 견줘 박종규 화백은 모두 추상화로, 그의 작업을 이루는 중요한 조형요소는 픽셀(pixel), 펄스(pulse), 도트(dot)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는 시각적 기호들이다.
▲  박명조 화백의 <해인사 입구>(1956년 작)와 박종규 화백의 (2026년 작)
ⓒ 김명희
대구 서양화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인 만큼 박명조 화백에 대해 좀 더 소개할까 한다. 1906년 대구 중구 덕산동 104번지에 출생한 박명조 화백은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 1924년 자토회전 출품에 이어 제5회 1926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 '초춘'이 입선하면서 본격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힘찬 첫발을 내디딘 그는 그해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교남YMCA회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2년 남짓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1928년 제7회, 1931년 제10회, 1932년 제11회, 1933년 제12회,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속 입선했다. 1942년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 동안 포항 공영식당 전시실에서 제2회 개인전을 열었다.

주로 교직에 근무, 영화관 선전부장 이력도

1928년 오산학교, 1946년 대구공립중학교, 1948년 대구상업중학교, 1950년 대륜중고등학교 교사 등 주로 교직에 종사했다. 그런가 하면 1945년 <대구일보> 지방부장과 1947년 키네마극장 선전부장이라는 특이한 경력도 보여준다. 1969년 8월 24일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전시회를 마련한 대구YMCA 이충기 이사장은 "1926년에 박명조 화백의 개인전이 열린 교남YMCA는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만나고, 청년과 시민이 변화를 모색하던 근대적 문화공간이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100년 지나 우리는 다시 섰습니다", "이번 전시가 대구의 역사와 예술, 시민정신이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초대 인사를 하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