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전시]노정란 회고전 '색과 함께 춤을: 색으로부터 색을 넘어'·박성배 개인전 'MOVE' 外

김희윤 2026. 10. 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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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이배와의 대화에서 시작된 'DAL 달 ~ Drawing A Line'은 목탄의 한 획을 공중에 멈춘 듯한 빛의 움직임으로 바꾸고, 'Maehwa'는 김택상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무라노 유리 구체의 미세한 색 변화로 매화가 피는 순간을 옮긴다. 한쪽 전시가 빛에 의해 달라지는 회화를 보여준다면, 다른 한쪽은 빛을 붙잡고 움직이고 색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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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주의 전시는 전국 각지의 전시 중 한 주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전시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지오파토 앤드 쿰스의 ‘Maehwa Chandelier custom’(2026). 매화가 피는 순간에서 착안해 무라노 유리 구체를 꽃봉오리처럼 배열하고, 빛과 미세한 색조의 변화를 담아냈다. 지오파토 앤드 쿰스
프리즈 하우스 서울 '일루미네이션'·'몽환'

빛은 대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바꾼다. 미국 클럽하우스 갤러리의 한국 첫 전시 '일루미네이션'은 알리시아 아다메로비치, 파이퍼 뱅스, 줄리아 조, 케일럽 한 킨타나 등 뉴욕과 인근에서 활동하는 네 작가의 회화로 그 차이를 보여준다. 아다메로비치의 유기적 형상은 화면 안쪽에서 빛을 내는 듯하고, 뱅스는 과일과 식물을 빛과 그림자로 밀어 올려 정물에 심리적 존재감을 부여한다. 줄리아 조는 색면과 서예적인 붓질 사이에서 형상을 드러냈다가 지우고, 킨타나는 명암의 대비를 기억과 남성성, 내면의 갈등으로 확장한다. 이들에게 빛은 조명이 아니라 이미지가 보이고 느껴지고 기억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장치다.

케일럽 한 킨타나의 ‘The Appaloosa’(2026). 달리는 말을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 속에 놓아 동물의 존재감을 신화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클럽하우스 갤러리

함께 열리는 지오파토 앤드 쿰스의 '몽환'에서는 빛 자체가 작품의 재료가 된다. 'Nokori'는 사라질 빛을 모아 간직한다는 상상에서 출발해 접힌 종이와 무라노 유리의 두께와 층 안에 빛을 담는다. 이배와의 대화에서 시작된 'DAL 달 ~ Drawing A Line'은 목탄의 한 획을 공중에 멈춘 듯한 빛의 움직임으로 바꾸고, 'Maehwa'는 김택상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무라노 유리 구체의 미세한 색 변화로 매화가 피는 순간을 옮긴다. 한쪽 전시가 빛에 의해 달라지는 회화를 보여준다면, 다른 한쪽은 빛을 붙잡고 움직이고 색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11월 6일까지, 서울 중구 프리즈 하우스 서울.

노정란의 ‘진달래와 분꽃 이야기’(1972). 어린 시절 꽃과 자연의 기억을 선명한 분홍과 청색, 녹청색의 추상적 색면으로 풀어낸 초기작이다. 성곡미술관
노정란 회고전 '색과 함께 춤을: 색으로부터 색을 넘어'·배종헌 개인전 '불면제색 不眠霽色: 잠 못 이룬 날들의 선물'

성곡미술관의 두 전시는 색을 정반대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노정란은 색을 쌓고 밀어내며 삶의 시간을 화면에 남기고, 배종헌은 색을 걷어내 그 아래 숨어 있던 풍경을 찾는다. 1관에서 열리는 노정란의 첫 대규모 회고전은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까지 반세기에 걸친 색채 탐구를 따라간다. 1975년 미국 유학 중 색면회화와 미니멀리즘을 접했지만, 그의 색은 서구 추상의 형식보다 한국의 자연과 어린 시절의 기억, 삶의 감정 쪽으로 향했다. 황금빛 논과 옥빛 우물, 꽃과 단청의 기억은 구체적인 풍경 대신 겹치고 스며드는 색으로 남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붓에서 벗어나 빗자루로 화면을 쓸고 닦고, 최근에는 바닥에 펼친 캔버스를 직접 밟으며 색을 몸의 행위로 확장했다.

배종헌의 ‘불면제색不眠霽色-고요한 요란_미장이의 흙손질, 시멘트 면의 균열, 도시 먼지’(2026). 금색 바탕 위에 청색을 덮고 다시 긁어내며 도시의 균열 속에 숨어 있던 산수의 형상을 드러냈다. 성곡미술관

2관의 배종헌은 반대로 지우면서 그린다. '불면제색'의 화면은 먼저 금색을 칠한 뒤 짙은 청색으로 덮고, 다시 물감을 긁고 쓸어내며 산과 바위, 구름과 물을 드러낸다. 도시의 시멘트 벽에 난 균열과 얼룩에서 산수를 발견해온 작가에게 불면의 밤은 평소 보이지 않던 장면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회화와 함께 선보이는 영상 다섯 점에서도 제한된 시선과 사소한 사건을 오래 들여다보며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꾼다. 한쪽이 색을 더하며 기억과 생을 축적한다면, 다른 한쪽은 색을 덜어내며 이미 그곳에 있던 풍경을 찾는다. 11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

박성배의 ‘MOVE(청록산수)’(2026).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성산일출봉과 바다를 청록의 색면으로 단순화해, 제주 풍경을 재현보다 사유의 대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제주갤러리
박성배 개인전 'MOVE'

박성배의 제주 바다는 풍경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나가는 방식에 가깝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제주 산수를 그려온 그는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 천제연 같은 익숙한 장소를 관광지의 외형으로 옮기지 않는다. 눈앞의 풍경에 쌓여 있는 시간과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질서를 읽으려 한다. 열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물'이 있다. 낮은 곳으로 흐르고, 담기는 곳에 따라 모양을 바꾸고, 생명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거대한 힘이 되는 물의 속성을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

박성배의 ‘MOVE(천제연)’(2026).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천제연의 짙은 암벽과 푸른 물을 대비시켜, 물이 품은 시간과 자연의 깊이를 담아냈다. 제주갤러리

'광치기 윤슬'과 '일출봉', '제주바다', '천제연' 등은 장지 위의 수묵과 채색, 천 위의 먹과 아크릴처럼 서로 다른 재료로 이어진다. 화면에서 물은 멈춰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시간을 축적하는 존재다. 작가는 "산수화는 바라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산과 바다를 한눈에 소비하기보다 화면 안을 천천히 유람하며 풍경에 새겨진 세월과 기억을 읽으라는 뜻이다. 전시 제목 'MOVE' 역시 자연의 이동과 순환, 열 번째 개인전에 이른 작가 자신의 변화가 겹쳐진 말이다. 1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제주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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