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스케이트화에 남은 흔적, 지나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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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려 1200개를 넘어섰다. 발에 채는 것이 박물관이라지만, 과연 그 수많은 공간 중 우리 국민의 가슴에 진한 감동과 뜨거운 눈물을 끌어내는 곳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시상대 위에서 조그만 월계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던 그 순간은 식민지 조선인 모두의 뼈아픈 승리였다.
박물관은 단지 과거를 가두는 벽장이 아니라, 그 유물에 밴 사람의 체취와 이야기를 관람객과 더불어 호흡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유기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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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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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스포츠박물관 전경 올림픽공원의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웅장하게 자리를 잡은 국립스포츠박물관의 외부 전경이다. 개관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는 외관은 앞으로 이곳이 우리 체육계의 흩어진 100년 역사를 하나로 모으는 굳건한 베이스캠프가 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
| ⓒ 엄원식 |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 깊고 고요한 성찰의 감동을 준다면, 지난 15일 올림픽공원에 문을 연 '국립스포츠박물관'은 핏줄을 타고 흐르는 역동적인 펄떡임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의 핍박 속에서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그리고 IMF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뿔뿔이 흩어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늘 스포츠였다. 태극마크를 달고 사력을 다해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그 벅찬 감격의 파편들이 마침내 제집을 찾아 한자리에 모였다는 소식에 만사를 제쳐두고 박물관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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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의 긍지이자 뼈아픈 승리, 손기정 선수의 월계관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단연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징표, 월계관이다. 9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 바싹 마른 참나무 잎사귀 하나 하나에, 가슴의 일장기를 이 작은 나무로 가려야만 했던 식민지 청년의 비애와 그럼에도 세계 제패의 쾌거를 이룬 조선인의 긍지가 서려 있다. |
| ⓒ 엄원식 |
어디 그뿐이랴. 잃어버린 나라의 슬픔을 안고 쉼 없이 페달을 밟았던 '자전거왕' 엄복동의 활동 모습, 1984년 LA 올림픽에서 온 국민을 열광케 한 하형주의 땀방울 밴 금메달을 보며 심장 박동은 주체할 수 없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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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화 수많은 점프와 빙빙 도는 회전, 그리고 얼음판을 긁으며 착지하던 순간들이 하얀 가죽 위에 온통 생채기로 남았다. 은반 위에서 전 세계를 홀렸던 '피겨 퀸'의 화려하고 우아한 몸짓 뒤에는 피나는 훈련의 땀방울이 배어 있었다. 닳고 닳은 스케이트화를 마주하는 순간, 완벽한 연기를 위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였을 선수의 숨결이 느껴져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
| ⓒ 엄원식 |
우리가 지켜야 할 스포츠 유산
푸른색과 흰색이 대비를 이루며 스포츠의 역동성을 찰나로 박제해 둔 감각적인 전시실을 걷다 보면, 체육이 걸어온 다이내믹한 100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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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나의 역동성을 박제하다, 생동감 넘치는 상설전시실 축구공을 향해 슈팅을 날리는 순간, 맹렬하게 페달을 밟는 사이클, 배트를 힘껏 휘두르는 타자의 폼까지. 스포츠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기하학적인 백색 조형물로 세련되게 형상화한 전시실 풍경이다. 푸른색과 흰색이 대비를 이루는 감각적인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고대 전통놀이부터 현대 엘리트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체육이 걸어온 다이내믹한 역사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
| ⓒ 엄원식 |
전시된 수많은 스포츠 유물이 그저 흥밋거리로 남지 않도록 제대로 된 학술적 평가를 거쳐 하루빨리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훼손을 막기 위한 체계적이고 신속한 보존 처리 시스템도 시급히 갖춰져야 한다.
고향 문경에서 시골 학예사로 숱한 문화유산을 어루만지며 늘 가슴에 새겨온 철학이 있다. 박물관은 단지 과거를 가두는 벽장이 아니라, 그 유물에 밴 사람의 체취와 이야기를 관람객과 더불어 호흡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유기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스포츠박물관 역시 화려했던 어제의 영광을 박제해 둔 전시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메달과 낡은 유니폼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을 되살려 미래 세대에게 살아있는 가치를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먼발치 시골 학예사 출신으로서, 우리 스포츠 유산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진정한 기억 창고로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애정을 쏟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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