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387명에게 물었다... 그들이 답한 '생존자의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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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여성 뉴스를 전합니다.
연구진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누구'의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자원이 집중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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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여성 뉴스를 전합니다. 국내 소식은 '한걸음 더' 들어가봅니다. <편집자말>
[이정환 기자]
"성폭력 피해자들은 제도가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10월 7일, 조지메이슨 대학교)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교가 성폭력 피해 대학생 387명의 응답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전하면서 내놓은 요약입니다. 대학교는 사라 윌프 교수가 주도한 연구 결과를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했는데요. 해당 연구는 지난 10월 7일 국제학술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에도 실렸습니다.
연구진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연구진이 새롭게 내놓은 개념이 '생존자의 계산(Survivors' Calculu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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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해바라기센터에 설치된 진술녹화실의 모습. |
| ⓒ 성평등가족부 |
"우리가 '생존자의 계산'이란 개념을 만든 것은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경험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안전하고 도움이 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 구조적 장벽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피해자는 최초의 트라우마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여러 장벽과도 싸워야 합니다." (10월 7일, 조지 메이슨 대학교, 사라 윌프 교수)
<여성에 대한 폭력> 학술지에 실린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장벽은 곧 이런 '물음표들'이더군요. ▲ 내가 겪은 일에 대한 증거가 충분한가? 믿어줄까? ▲ 믿어준다고 해도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 신고했다가 내 정보나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건 아닐까? ▲ 조사 과정에서 더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피해자들은 전문 상담가나 지원 담당자 등을 실제 도움이 된 자원으로 판단한 반면, 피해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조사 담당자나 경찰 그리고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자들을 도움이 되지 않는 자원으로 꼽았습니다. 학술지에 소개된 한 피해자의 답변이 이런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비밀이 보장됐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꼈다(It was confidential so I felt safe)."
피해자들은 "정신적 위기 상황에서 대화할 수 있는 훈련된 전문가가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거나 "트라우마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정보 등을 제공해 준 심리치료가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연구진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대학생들은 도움을 요청할지, 어떤 방식으로 요청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계산을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위험과 안전, 사회적 낙인, 정서적 부담, 제도적 불이익, 자신의 말을 믿어줄 가능성 등을 하나 하나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사라 윌프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피해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접근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전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누구'의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자원이 집중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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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10월 7일, 국제학술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에 실린 '생존자의 계산'. 사라 윌프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 등 연구진이 성폭력 피해 대학생 387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가 담겨있다. |
| ⓒ journals.sagepub.com |
그 현실의 일단이, 2023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서울시 해바라기센터 운영 개선 방안 연구>에 나옵니다. 센터 종사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제가 만 6년 차인데, 처음에는 성인 피해자들을 여기서 조사를 다 받았어요. 그런데 아동학대 피해가 늘어나면서 아동학대 조사를 여기서 전담으로 하면서 성인 피해자를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거예요... (중략) 저희 조사관들 달력을 보시면 알겠지만 거의 매일 2건, 3건이 잡혀져 있고 주말은 거의 풀로 잡혀져있기 때문에, 성인 조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돼서, 성인들은 저희가 일선 경찰서로. 자연스럽게 이게 이동이 된 것 같아요."
또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피해자 통합지원은 유관기관으로의 연계를 통해 수행되는데, 실제로 피해자를 믿고 연계할 수 있는 지원기관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확인된다"고 전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상담가나 지원 담당자와의 연결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더해, 센터 자체에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성인 피해자 조사는 경찰이 맡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조지메이슨 대학교 연구 결과를 떠올리면, 성인 피해자 입장에서는 '생존자의 계산법'과 어긋나는 경우와 마주칠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다음 보도는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부산해바라기센터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수 개월째 피해 회복의 핵심인 '심리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월 28일자 <뉴시스> 보도)
2025년 해바라기센터 찾은 피해자 2만 4755명
해바라기센터가 처음 문을 연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성폭력 피해자의 정신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부족 문제가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명신 서울해바라기센터 행정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상담·심리·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처우가 낮아 구인난이 심각하다. 특히 지방 센터는 인력 확보가 매우 어렵다. 사명감만으로는 지속하기 힘든 구조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5 해바라기센터 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해바라기센터를 찾은 피해자는 2만 4755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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