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부터 더빙까지 책상머리서 뚝딱…게임하듯 영화 찍는 시대

나원정 2026. 10. 2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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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영화 특이점이 온다②
현장 갈 필요없이 ‘책상머리 제작’
한·중·일 160개팀 ‘AI 단편’ 경연
스포츠·게임하듯이 점수로 평가
극본·영상생성 동시에, 공정 혁신
심사위원 민규동 "AI 영화 만들기,
게임처럼 스포츠화 가능성"
지난 16~18일 서울, 도쿄, 상하이에서 동시에 진행된 탭나우 AI 영상 해커톤 대회 '아레나 피크 아시아'에서 3등상인 동상을 수상한 한국 AI 단편 영화 '서푼' 한 장면. 전래동화를 재해석한 코믹한 전개와 독창적인 도깨비 디자인이 점수를 받았다. 사진 야호

“5, 4, 3, 2, 1!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7시경, 이틀간의 인공지능(AI) 영화 제작 대회가 마무리된 서울 서초구 한 빌딩. 진행자의 종료 시간 안내에 작품을 마친 팀들의 환호와 업로드가 늦은 팀들의 탄식이 엇갈렸다. 이들은 홍콩 기반 글로벌 AI 창작 플랫폼 탭나우가 주최한 AI 영화 제작 대회 ‘아레나 피크 아시아’의 서울 대회 참가자들. 전날부터 32시간에 걸쳐 탭나우를 80% 이상 활용해 3~8분 길이 AI 영화 제작을 해낸 경연이 이렇게 끝났다.

“마치 아레나(Arena·원형경기장)에 들어 선 검투사처럼 짧은 시간 지력과 예술혼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고 점수를 매기는 새로운 문화”(심사위원 민규동 감독)가 서바이벌 게임처럼 펼쳐졌다.

총 상금 규모 8만달러(약 1억원)를 웃돈 이번 경연은 기획부터 촬영, 편집, 음악, 사운드, 더빙, 시각특수효과(VFX) 등을 모두 컴퓨터 한 대로 처리하는 ‘책상머리 제작’으로 이뤄졌다. 공모로 1차 선발된 한·중·일 총 160개팀(최대 3인)이 서울과 도쿄, 베이징에서 동시에 대회를 치른 가운데 서울 행사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과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SESIFF)가 공동주관했다.

창작의 민주화는 장비도 다양화했다. 서울 서초구 한 빌딩에서 열린 서울 대회에선 참가자들이 각자 가져온 장비도 다채로웠다. 소형 노트북, PDA도 많았지만, AI 영상 제작을 직업적으로 하는 참가자들은 대형 모니터와 본체를 둔 컴퓨터를 가져오기도 했다. 사양이 낮은 컴퓨터의 경우 생성형 AI 구동과 완성작 업로드 과정에서 과부하로 공정이 지연되기도 했다. 사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대회에선 “AI가 영화에 가져온 상상 이상의 변화”(손광수 초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6일 오전 11시 주제가 제시되자 다수 참가자가 챗GPT·클로드 등에 해당 주제로 영화화할 만한 줄거리, 장르를 문의했다. 전통 방식으로 손수 시나리오를 써도, 이를 토대로 생성할 장면의 콘티는 AI 분석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대부분 참가자들은 만족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회의를 거듭하며 머리를 맞댔다.

서울에서 진행된 32시간 AI 영화 제작에 참가한 40개 한국 팀이 대회 초기 다소 여유로운 모습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사전준비부터 후반 작업까지 기존 제작 공정을 따르지 않는 ‘혁신’도 관측됐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캐릭터 디자인, 배경 음악을 뽑고, 영상 생성과 편집을 동시에 하면서 필요한 장면을 재생성해 서사의 완성도를 기하는 식이다. 근육질의 고대 로마 패잔병이 그물에 걸린 세이렌과 교감하고(‘더 시그널’), 일본 소녀가 자신의 고양이의 정체를 의심하는(‘우리집에 외계인이 산다’) 등 국적, 언어, 인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사의 ‘경계 파괴’도 두드러졌다.

생성형 AI 영화는 기획부터 캐릭터 디자인(캐스팅), 배경 생성(헌팅), 시나리오, 영상 생성(촬영), 음악, 사운드 등 제작 전과정을 컴퓨터 한대로 가능한 '책상머리 공정'을 탄생시켰다. 사진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18일 한·중·일 참가 작품 전체를 각국 전문가들이 심사해 이날 저녁 시상식이 완료됐다. 개봉 영화 감독, 영화 연구가들을 제치고 AI 스터디로 만난 프리랜서 영화 제작 강사, 해양경찰, 한국산업단지공단 직원 등 동호인이 만든 단편 ‘서푼’이 한국팀 중 유일하게 3개국 본상(동상)을 받았다. 전래동화 속 도깨비 서사를 재해석한 독창적 디자인과 이야기로 코믹하게 전개한 점이 평가 받았다. AI 영화에선 전문 기술이나 지식의 ‘계급장’이 아이디어 우수성 앞에 무색해진다는 통설이 다시금 입증됐다.
‘서푼’ 제작팀의 이승희 팀장은 “좋은 엔딩을 찾으려고 기획만 13시간 넘게 고민하고 다 만든 도깨비 디자인도 바꿨다”고 말했다.

심사와 시상에 참여한 최정인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주어진 소주제로 AI를 활용하다보니 한·중·일에서 굉장히 유사한 작품도 발견됐다”면서 AI가 인간의 독창성을 대신할 수 없다는 관점을 드러냈다. 배우 겸 감독 이정현은 “티 안 나게 잘 만든 분도 계시지만, 아직 인간 감정의 섬세한 연기는 AI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규동 감독은 “영화 만들기가 게임처럼 스포츠화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17일 오후 7시, 작품 제출 제한 시간을 1분여 남겨놓고 참가자들이 제출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진 나원정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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