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 소리 듣던 아버지... 딸이 물려받은 유기농 과수원의 속사정

변정정희 2026. 10. 1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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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샐러드! 멸망 직전의, 혹은 멸망한 지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삭한 샐러드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지구적인 대의'를 품고 유기농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느덧 자리 잡힌 유기농 배 과수원을 부모님은 딸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관행농에 반하며 유기농을 시작한 것처럼, 딸은 아버지와 싸우며 자신만의 과수원을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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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환경생태 현장르포] 유기농 배 농사 짓는 '청년 여성 농부' 김후주 이야기

[변정정희 기자]

기획의 말
기후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한 그릇의 샐러드! 멸망 직전의, 혹은 멸망한 지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삭한 샐러드일지 모른다. 모든 게 사라진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AI도, 반도체도, 주식도 아닌 식량이 필요하니까.그중에서도 오염되지 않은 공기, 물, 흙 속에서 자란 신선한 농산물이야말로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사치가 된다. 그래서 영화 <설국열차>에서는 머리칸 사람들만이 바퀴벌레 양갱 대신 샐러드를 먹고, 영화 <마션>에서는 척박한 화성 땅에서 눈물겹게 키워낸 감자 덕분에 지구로 귀환한다.
마치 SF 재난 영화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하는 요즘,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먹고 살고 있을까? 지난 9월 서울에서 현재의 농업을 넘어 미래의 함께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청년 여성 농부 김후주를 만났다.
▲ 김후주 농부 서울에서 열린 919 기후정의행진에서 남태령 깃발을 든 청년 여성 농부 김후주
ⓒ 변정정희
이 땅에서 유기농 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의 의미

봄이면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황갈색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은 농부 김후주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3대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이다. 저마다 크기가 다르고 더러 흠도 있지만 탐스러운 배는 유기 농사를 짓는 과수원의 결실답다. 우리나라에서는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3년 이상 농사를 지어야 유기농산물로 인증 받을 수 있다. 농업용수와 토양 역시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깐깐한 검사 아래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우리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이 먹거나 환자식, 유아식으로 사용하는 비싼 식재료라고 여긴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 유기 농사를 짓는 농부는 그 너머를 말한다.

"유기농이라는 게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생태에 대한 존중이죠. 외부적인 투입을 최소화해서 생태계를 보존하는 거예요. 저희는 수출에 대한 요구가 많이 들어오는데 하지 않아요.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농사의 방향을 생각해요."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들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와 살포한 뒤에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이다.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을 멈춘다는 것은, 땅을 터전으로 삼는 미생물과 곤충, 동물을 살리는 일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먹고 살기 위해 땅을 파헤쳐왔다. 농경으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산업형 농업'을 하는 지금, 고효율과 고수익을 향해 달려가며 더 많은 욕심을 쏟아붓고 있다. 이 땅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처음부터 '지구적인 대의'를 품고 유기농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조부모님 때는 일반적인 농사 방식인 관행농이었고, 부모님 때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사실 요즘 농산물은 식탁에 오를 때쯤이면 걱정할 만큼 농약이 남아 있지 않다. 자라면서 햇빛, 비, 바람에 떨어지고 분해되기 때문이다. 설사 잔류 농약이 남아 있다고 해도 씻거나 껍질을 벗기면 대부분 제거된다. 농약의 독성을 가장 걱정해야 할 이는 살포할 때 당장 피부와 호흡기에 노출되는 농부다. 유기농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농부인 것이다. 부모님은 건강한 농부가 건강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유기농을 결심했다.
▲ 농업 유기농은 땅을 지키는 농업이다
ⓒ 변정정희
실패였다. 초록빛으로 반짝여야 할 나뭇잎들이 갈변하면서 후드득 떨어졌다. 커다랗고 아삭한 배가 작고 딱딱한 돌배가 되었다. 병충해도 들끓었다. 농약을 중단한 첫 해 나무들은 견디지 못했다. 농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주변에서는 동네에서 제일 큰 과수원집 아들이 미쳤다고 했다. 아버지는 제대로 유기농을 배우고 싶어 농대에 진학했으나 관련 전공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유기농을 장려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모님은 전국 배 농가는 물론 해외까지 찾아다니며 유기농법을 공부했다.

배나무들아, 덥지? 오늘만 성장을 좀 멈춰줄래?

1만 2천 평. 드넓게 펼쳐진 땅에 배나무가 자란다. 더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잎들이 푸르게 흔들리고, 아름답고 튼실한 열매가 맺힌다. 어느덧 자리 잡힌 유기농 배 과수원을 부모님은 딸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고민하던 김후주는 고향 땅으로 되돌아왔다. 하필 '철학과'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농담했지만, 어렵게 확립한 유기농 기술을 이어받고, 오랫동안 일군 유기 농지도 보존하고 싶었다. 청년 농부는 땅에서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농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관행농에 반하며 유기농을 시작한 것처럼, 딸은 아버지와 싸우며 자신만의 과수원을 만들어 갔다. 기존의 유기농법을 이어가되, 홍보와 판매 방식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등 과감하게 바꾸었다. 당시 매일 다투느라 부녀 관계가 위기였다고 말했지만, 매출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진짜 위기는 밖에 있었다. 전업 농부가 된 지 10년. 예측할 수 없는 폭염과 장마, 폭우, 가뭄, 돌발 한파가 점점 더 심해졌다. 특히, 올여름은 관측 사상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할 만큼 뜨겁고 가물었다. 냉각조끼나 머리에 쓰는 양산 같은 보호장비를 마련해 겨우 넘겼다. 하지만 모두 무사히 지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농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과 이주민들은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대책으로 '폭염중대경보 발령 시 논밭으로 절대 나가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경보가 없었던 날이 며칠이나 있었을까?

"농사는 '배나무들아. 오늘만 성장을 좀 멈춰줄래? 너무 덥지? 우리 같이 좀 쉬자.' 이렇게 할 수 없어요. '시기'라는 게 너무 중요한 업종이고요. 일단 농작물들이 죽어 나가면 방법이 없어요. 그냥 다 죽는 거예요."
▲ 배 재난과 같은 기후 위기를 이기고 자라난 배
ⓒ 변정정희
모두가 죽어갈 때 살아남은 것은 병충해뿐이다. 올해는 노린재와 총채벌레가 극성이었다.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년 대비하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처럼 대응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그나마 익숙한 병충해는 낫다. 새로운 기후에 따라 조부모님 때는 없었던 병이 생기면 속수무책이다.

몇 해 전부터 배 농가에 불어닥친 과수화상병은 예방약도, 치료제도 없다. 나무가 마치 불에 탄 듯 검게 말라 죽는다. 농부의 속도 타들어 간다. 유기 농가에서는 금속 성분이나 미생물을 이용하는 등 생화학적인 방법을 연구해 보지만, 일반 농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어찌할까? 결국 전염된 나무를 잘라 불태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강력한 전염성 탓에 심하면 과수원을 폐원시켜야 한다. 몇 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떠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랬듯이 과수화상병 병균 역시 십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경로로 들어와 우리 농가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기후 재난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부가 다음 해 농사를 기약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대책으로 스마트팜 도입을 독려하지만, 누구보다 IT에 친숙한 30대 청년 여성 농부는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에 첨단기술을 적용해 과채류를 키우는 일은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든다. 이마저도 곡물과 감자, 고구마같이 식량이 될 만한 작물은 재배가 불가능하다.

기술이 발전하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현실은 빙하가 녹아 산이 무너지고, 폭염으로 논밭이 타들어 가는 디스토피아다. 농사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열매는 찍어내는 공산품과 다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문제는 농촌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0세 미만 청년은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70대 이상이 대다수인 농촌에서 그들이 가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음 세대는, 아니 20년 후에는 무엇을 먹고 살까?

유기농이면서 싸고 달고 번지르르한 배는 없다

농부가 사라지는 이유는, 농사가 어렵고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유기농 인증 제도는 농가를 단속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몇 년 동안 공들여 유기 농사를 지어도 근처 논밭에서 드론으로 뿌린 농약 한 방울이라도 날아와 검출되는 날이면 모든 게 무효로 돌아간다. 단속에 가까운 제도가 친환경 농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 그런가 하면 유기농으로 애써 키운 농산물이 시장에서는 모양, 크기, 색깔 등 유통 기준에 미달한다면서 등급 외 농산물로 버려진다. 기후가 재난처럼 변해갈수록 열매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지만, 사계절 내내 쾌적한 마트에서 과일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싸면서도 달고 크고 예쁜 상품을 원한다.

"거래처에서 '점이 2개 이상 있는 이런 배는 못 받아요.' 이러면서 전량 반품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1년 정도 문제 제기를 하면서 여러 얘기를 해봤는데 안 돼서 최근에 탈퇴했어요."

부모님 때부터 거래한 한 친환경 생활협동조합에 배 납품을 포기했다. 유기농 배는 외관상으로 얼룩이 있거나 딱지가 생길 때가 있다. 가끔 벌레가 먹어 파여 있을 때도 있다. 당연히 맛과 영양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건강한 농산물이다.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특, 대, 중 등급을 보고 과일을 샀을까? 당도를 표시하는 브릭스 숫자를 따지며 과일을 먹었을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폐기되는 규격 외 농산물은 약 5조 원어치에 달한다. 농부들의 한 해 노동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재배할 때 사용한 물과 에너지가 버려지고, 폐기될 때 그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 친환경 농산물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만난 친환경 방식으로 키워 직거래로 판매하는 농산물
ⓒ 변정정희
"유기농 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방법은 생산한 농산물을 잘 소비해 주시는 거예요. 외관상의 문제가 있지만, 드시는 데 문제없는 것을 사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요즘 저희가 친환경 학교 급식에 배를 보내고 있는데, 먹거리 교육이나 환경 교육, 농업 교육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최근 규격 외 농산물을 못난이 농산물이나 차별 없는 농산물이라 부르며 판매하는 곳이 생겨났다.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지며 시장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생산자와 소비자가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농사를 짓는 이도, 농산물을 먹는 이도 모두 같은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다.

밭농사 너머 아스팔트 위에서

단물이 꽉 들어차며 배가 영그는 수확의 계절, 농부에게 한창 바쁠 가을이지만, 김후주는 아산의 배밭이 아닌 서울의 아스팔트 위에 있는 날이 더 많다. 그에게는 수확해야 할 또 다른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농민 운동의 일환인 아스팔트 농사는, 논밭을 떠나 낯선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모여 농민의 권리를 외치며 투쟁하는 일이다.

"농부들이 막 '갑부 돼가지고 편하게 살자' 이게 아니고, 나라의 식량 주권이나 환경, 생태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거예요. 농민들의 얘기를 비농민 시민들이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농민권리 도심 아스팔트 위에서 농민의 권리를 함께 외치고 있는 시민
ⓒ 변정정희
지난 윤석열 탄핵 정국 때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권리를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 농민들 역시 함께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이 결성한 '전봉준 투쟁단'은 트랙터를 이끌고 앞장섰다. 그중 남태령에서 농민과 청년 여성이 연대한 집회는 '남태령 대첩'이라 불리며 특별한 승리로 회자되고 있다. 엑스에서 '향연'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김후주는 당시 SNS를 이용해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농민과 청년 여성을 연결하며 투쟁에 앞장선 인물 중 하나다.

처음 유기농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는 농사법을 설명하는 대신 '유기농 운동'이라고 답했다. 유기농은 이 땅에서 연결된 우리가 모두 함께 먹고 사는 문제이다. 농부 한 명이 아닌 여러 농민이 목소리를 모아야 하고, 소비자이며 동료 시민인 우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시장이 바뀌고, 정치가 달라져야 해결될 수 있다. 요즘 김후주는 과수원을 부모님과 나눠 운영하며,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정당의 전국농업인위원회, 청년농업인 모임 등 다양한 곳에서 청년 여성 농부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누구나 농업이나 기후 위기에 관해 얘기할 수 있어요. 비판하거나 욕하기는 쉬운데, 다음 단계가 너무 어려워요. 한 명의 실천은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지역, 나라, 세계와 같은 이런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투쟁과 협의와 조율들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완전 찐 농업인도 아니고 완전 찐 정치인도 아닌 그 중간에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의견을 모으고, 자리를 만들고, 혼자 하던 것을 함께 해보고, 그게 좋으면 더 크게 확대하는 식으로 해보려고요."

기후 재난으로 피폐해진 이 땅은 반도체와 AI, 데이터 산업을 위해 다시 한번 파헤쳐지고 있다. 과연 망해버린 지구에서 한 그릇의 샐러드 없이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 청년 여성 농부가 땅을 되살릴 밭농사를 짓는다. 사회를 되살릴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 유기농 운동이다. 부디 건강한 땅에서 건강한 농부가 만든 건강한 열매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필자 소개] 변정정희: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했으며, 최근 르포르타주 작업을 하며 새로운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 <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을 썼고, <우리가 잃어버린 푸른 시간>, <작가노동 선언>,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를 함께 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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