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재능은 없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무명 반란’ 일으킨 마서영의 진솔한 고백

정대균 2026. 10.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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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골프 선수들에게 '어떤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자신의 롤모델을 얘기한다거나 다승왕, 상금왕 등 개인 타이틀 획득이 목표라는 판에 박힌 답을 내놓는다. '선한 영향력'이 골프를 하는 주요 이유라고 말하는 선수는 36년 골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해 온 필자의 기억 속에도 손에 꼽을 정도다.

"감각은 없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그의 당찬 마인드와 우승의 영광을 팬들과 나누며 '선한 영향력'을 다짐하는 모습은 비단 골프 팬들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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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서영. KLPGA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골프 선수들에게 ‘어떤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자신의 롤모델을 얘기한다거나 다승왕, 상금왕 등 개인 타이틀 획득이 목표라는 판에 박힌 답을 내놓는다. ‘선한 영향력’이 골프를 하는 주요 이유라고 말하는 선수는 36년 골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해 온 필자의 기억 속에도 손에 꼽을 정도다.

더욱이 그 주인공은 투어에서 수년간 명성을 쌓아온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다. 투어 데뷔 4년 차, 무려 83번째 출전 대회 만에 마침내 ‘무명’의 딱지를 떼어낸 선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짐짓 놀랍고도 신선했다.

지난 18일 막을 내린 KLPGA 투어 아이스버그·서울신문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쥔 마서영의 이야기다. 그는 생애 첫 승을 앞둔 극심한 중압감 속에서도 최종 라운드 내내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갤러리와 팬들을 먼저 놀라게 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승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조금의 떨림이나 가식 없이, 또렷하게 자신이 해야 할 말들을 진심을 담아 쏟아냈다. 순간 현장에서는 ‘대물’이 나타났다는 예감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생애 첫 우승 소감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 말 말고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요.”

▲오늘 처음 챔피언조에서 경기했다. 초반에는 샷이 다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전반 플레이는 어땠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오늘 챔피언조에서 선두로 출발하긴 했지만, ‘꼭 우승해야겠다’는 마음은 아예 비우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전반에 샷이 생각보다 너무 안 풀려서 오늘은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기보다 위기가 오면 최대한 파로 막자는 생각만 하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방송 인터뷰에서 본인처럼 ‘재능이 없는 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고 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이유와, 반대로 이것만큼은 재능이 있다고 믿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비교해 봤을 때, 제 연습량이 절대 적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정말 안 될 때는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골프장에 남아 계속 연습했던 적도 많아요. 그런데도 노력만큼 결과가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많아서 ‘나는 확실히 타고난 감각적인 재능은 없구나’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신, 저는 ‘지구력’과 ‘근성’에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화려한 골프 감각은 부족할지 몰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지난해보다 비거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그린 적중률도 높아졌습니다. 기술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비결이 무엇인가

“투어를 직접 뛰어보니 제 기존 비거리로는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겨울 휴식기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을 정말 독하게 했습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시간씩 웨이트에 매달렸더니 거리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더라고요. 아이언 샷 거리도 함께 늘어나면서 더 짧은 클럽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린 적중률이 높아졌고, 이것이 좋은 상승세로 이어진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시즌 막판까지 상금 순위가 56위여서 시드 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을 텐데, 최종일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감이 있었나

“남은 두 대회가 저에게 시급하고 또 굉장히 중요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위와 상황에 얽매여 신경 쓴다고 해서 갑자기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당시 샷 감각 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저 자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대회로 순위를 충분히 더 끌어올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내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다른 운동을 했다고 들었다

“네, 골프를 접하기 전에는 인라인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지역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시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스케이팅을 타며 하체와 코어의 균형 잡는 훈련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지금도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는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

▲데뷔 후 시드 유지에 어려움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최근 급등한 성장에 이어 규모가 큰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다. 인생 역전 같은 느낌도 드는지, 이번 우승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정말 ‘인생 역전’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우승’이라는 두 글자는 늘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언제나 간절히 바라기만 하는 꿈같은 일이었거든요. 이번 우승을 발판 삼아 앞으로 열 단계 정도는 훌쩍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번에 극심한 압박 속에서 우승 경쟁을 치르고 소중한 경험을 쌓아봤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비슷한 긴장감 속 상황에서도 훨씬 더 단단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티샷이 곤란한 위기 상황에 놓일 때도 침착하게 수습하며 파를 지켜냈습니다. 경기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과 아찔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가장 기억에 남고 짜릿했던 순간은 10번 홀에서 나무 밑 트러블 상황이었을 때예요. 공이 하필 나무 아래 들어가 있었는데 다행히 운 좋게도 핀 방향으로 시야가 딱 트여 있더라고요. 그때 ‘오늘 내게 운이 따르는구나!’라는 직감이 들었고, 그 한 번의 샷이 남은 전체 경기력에도 좋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반면 아찔했던 순간은 딱 한 장면만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전반 홀 내내 아찔했거든요. 티샷이 계속 제가 의도한 방향과 정반대로 터져서 ‘오늘 내 샷은 왜 이러지?’라는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전반전이었습니다.”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남은 시즌에 임하는 각오와 목표,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수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우선 남은 두 대회에서 기회가 된다면 우승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너무 쫓기듯 조급하게 달려왔는데, 앞으로는 오랜만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경기를 즐기면서 임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앞으로 팬들과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널리 베풀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멋진 골퍼로 오래 기억되고 싶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구슬땀을 흘리던 무명 선수의 저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다. 천부적인 감각의 부재를 치열한 지구력과 철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극복해 낸 마서영.

“감각은 없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그의 당찬 마인드와 우승의 영광을 팬들과 나누며 ‘선한 영향력’을 다짐하는 모습은 비단 골프 팬들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생애 첫 우승을 기점으로 ‘열 단계 성장’을 예고한 마서영. 투어의 판도를 흔들 ‘대물’의 진정한 반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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