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대만서 공책 사업, 사장님이 돈 대신 선택한 것

허정은 2026. 10.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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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일은 정말 돈 벌기 어렵다는 거예요. 열정과 인내심이 많이 있어야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하다가 생산까지 더해지면, 처음엔 기쁠 수 있지만 조금 지나면 훨씬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디자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리테일 마케팅, 유통, 판매, 원가 및 창고 재고 등등 새로운 업무가 계속 나와요. 그만큼 디자인과 사업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는 거예요."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창작이라는 것을 정말 꽉 붙잡고 있어야 해요. 돈을 벌어서 회사 규모를 키우거나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창작의 핵심은 계속 뒤로 밀리고, 결국 흐트러지거든요. 저희도 한동안 그랬어요. 디자인하는 것 외에도 일상적 판매, 창고 재고, 제조, 공장 관리까지 해야 하니, 전체 역량이 분산됐죠."

《 group 》 성공담이 아닌 시작담 : https://omn.kr/group/bside_club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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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이 아닌 시작담] 16년간 노트 디자인 창작, 계속 꿈을 좇는 조엘님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원하는 일이 있는데 두려워서 시작을 망설이는 2030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기자말>

[허정은 기자]

▲ 대만 타이베이 디화제 거리 가판대 대만 타이베이 디화제 거리 가판대에서 손님에게 공책 설명을 해주고 있는 Indeer 대표 조엘
ⓒ 허정은
북적이는 대만 타이베이 디화제 거리. 핸드메이드 공책을 파는 작은 가판대 앞에서 사람들이 가던 발길을 멈춥니다. 각종 한약 냄새가 풍기고 쫀득한 버블티가 만들어지는 주변 가게들 가운데, 여기서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이 작은 가판대만 보고서는 이 브랜드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디어(Indeer)라는 브랜드 창업자인 조엘(Joel)은 무려 16년 동안 공책을 만들어 오고 있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브랜드를 운영해 왔습니다.

조엘과 길거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같은 거리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가게로 자리를 옮겨 지난 9월 26일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조엘은 20년 넘게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여전히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로 진행되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의 꿈과 희망이 있었어요"

- 인디어(Indeer)가 어떤 브랜드인지 설명 부탁드려요.

"저는 종이를 좋아해요, 그 종이 특유의 느낌이요. 그래서 종이 특유의 느낌을 살린 핸드메이드 공책과 저희가 디자인한 그림이 실린 제품을 만들어요. 그리고 자체적으로 인쇄 작업을 하죠."
▲ 제품 사진 직접 자신만의 그림을 넣을 수 있는 포켓이 있는 Indeer만의 핸드메이드 공책
ⓒ 허정은
-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원래 디자인 일을 했어요. 클라이언트를 위해 브랜딩, 마케팅, 심지어 상품 디자인까지 다 하다 보니, 그렇다면 '내 사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저희만의 상품을 만들며 시작했어요. 브랜드 초반에는 제 상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외주 작업도 같이 했어요."

- 디자인만 할 수도 있었는데, 공책을 만들게 된 이유가 있나요?

"22년 전 대만에서 인디 문화가 유행하던 때 '문청(文靑)' 집단이 있었어요. 문화 예술적 감각이 강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문구나 독립 창작을 참 좋아했어요. 저도 이때 인디 문화를 좋아했죠(웃음). 원래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었기에, '아! 공책을 만들어야겠다!'라고 느껴 시작하게 되었죠."

- 브랜드 초기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한 개 이상의 일을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맞아요. 대략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은 기존 일과 브랜드 창업을 병행했어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고 고단했죠. 너무 피곤해서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러 가다가 신호등 기다리는 잠깐 사이 잠이 들 정도였어요."

- 처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지만, 동시에 보지 못했던 여러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일은 정말 돈 벌기 어렵다는 거예요. 열정과 인내심이 많이 있어야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하다가 생산까지 더해지면, 처음엔 기쁠 수 있지만 조금 지나면 훨씬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디자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리테일 마케팅, 유통, 판매, 원가 및 창고 재고 등등 새로운 업무가 계속 나와요. 그만큼 디자인과 사업을 운영하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는 거예요."

- 이렇게 힘든 시기가 있었음에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나요?

"사실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났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저 계속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했을 뿐이에요. 유통 채널을 뚫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재료 살 돈을 구하러 다녔어요. 처음 디자인부터 끝까지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말 여러 가지가 필요했으니까요."

-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믿어주셨어요?

"매일매일, 그냥 하나의 꿈과 희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래만 바라봤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했어요."

"나만의 무언가를 실현하고 싶다는 마음"

- 이때 꿈이 뭐였나요? 그 꿈이 뭐였기에 그렇게 조엘 님의 가슴을 뛰게 했나요?

"나만의 브랜드, 나만의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나만의 무언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좋았고 희망이었어요. 디자인하고, 무언가를 창작하고, 공책을 만드는 것이 저 자신에게 강력한 내적 동기였죠. 이 시기에는 돈 벌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이때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계속 쏟아붓기만 했죠. 그저 나만의 무언가를 실현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했어요."

- 그렇다면 언제 기존 일을 접고 내 꿈에만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셨나요?

"브랜드 이외의 일들이 일종의 소음처럼 되었을 때예요. 이때 디자인 외주 일은 전부 끊기로 결정했어요."

- 두렵진 않으셨어요? 이전까지 나의 일상이었던 것들을 잘라낼 때,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하고 의심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순간 저는 정말 기뻤어요. 다 괜찮다고 느꼈고요."
▲ 가게 내부 생산부터 판매까지 이루어지는 대만에 위치한 Indeer 가게 내부 모습
ⓒ 허정은
나의 꿈이 흐려질 때

- 무언가를 창작하고 만든다는 것 자체가 조엘님에게 하나의 소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예술가라면 돈 버는 건 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창작에 집중하는 게 필요해요. 창작을 붙잡고 잘 해내는 게 가장 기본이니까요. 안 그러면 많은 일이 당신을 조각조각 나눠버리고, 결국 창작 자체가 사라질 수 있어요."

- 사업을 하면서 창작이 흐려졌던 때가 있나요?

"저희 브랜드가 약 서른 명 규모였을 때가 있었어요. 이때 저희 상품은 대만의 큰 체인 서점, 백화점, 온라인 플랫폼까지 다 입점해 있었죠. 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공장까지 직접 가동하던 때였어요. 경기가 좋았어요. 그런데 돈 버는 게 바빠 창작이 줄어들었어요."
▲ Indeer 직원 Indeer 브랜드 대표 조엘과 함께 운영하는 팀원들
ⓒ 허정은
- 사업이 잘 되는 게 왜 문제가 됐을까요?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창작이라는 것을 정말 꽉 붙잡고 있어야 해요. 돈을 벌어서 회사 규모를 키우거나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창작의 핵심은 계속 뒤로 밀리고, 결국 흐트러지거든요. 저희도 한동안 그랬어요. 디자인하는 것 외에도 일상적 판매, 창고 재고, 제조, 공장 관리까지 해야 하니, 전체 역량이 분산됐죠."

- 경영을 위해 신경 쓸 게 많아진 거군요.

"맞아요. 새로운 게 창작될 여유가 없어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창작에 대한 감각이 점점 대중적이고 평범해져요. 어찌 됐든 돈은 벌리니까요. 그런데 경제가 안 좋아지면 문제가 생겨요. 그렇게 돈이 없어졌을 때는 이미 창작의 본질도 잃어버린 상태고, 팀을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워지죠."

- 이렇게 창작이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문화 디자인 브랜드인데 새로운 게 없다면 그건 잘못된 거고, 일종의 노화예요. 손님들도 느끼죠. 그러면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이 사람 장사만 하네' 느끼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 수도 있죠. 나의 본질을 지켜야 해요. 저에게는 그게 창작이고요."

-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나요?

"현실적인 여러 변화와 고려 끝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창작의 비중을 높이고,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지속할 수 있는 규모로 운영하는 거죠."

- 지금은 몇 명이 함께 일하고 있나요?

"팀에는 네 명이 주로 일하고, 파트타임으로 두 명이 더 있어요."

- 작은 팀일수록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하죠. 각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소규모 팀에서는 역할을 딱 구분하기 어려워요. 규모도 자원도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경계 없이 모두가 여러 방면의 일을 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 진수님 대만 타이베이 위치한 Indeer 가게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진수님
ⓒ 허정은
- 오늘 인터뷰 통역을 도와주시는 동시에 여기서 함께 일하시는 진수님이 계신데요. 한국 분이세요. 어떻게 대만에서 조엘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나요?

진수 : "한국에서 디자인 전공 졸업을 앞두고 하고 싶은 게 뚜렷하지 않은 거예요. 꼭 직장이 아니더라도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있었고요. 그런데 문득 1년 전에 대만에서 샀던 노트 한 권이 기억났어요. 그리고 즉흥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혹시 기회가 되면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고요. 그렇게 조엘 사장님과 통화하고 올해 8월 바로 대만에 와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

- 조엘님은 어떻게 외국인인 진수님을 팀으로 맞이하게 되었어요?

"루틴 밖의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이 있는 게 훨씬 함께 나아가기 쉬우니까요. 새로운 시도가 없다면 우리의 창조성은 반복되는 루틴에 묻혀버릴 수도 있어요. 진수가 있기 때문에 저도 더 새로운 실험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 앞으로 인디어(Indeer)는 어떤 모습일까요?

"노트를 하나의 그릇(매개체)으로 만들고 싶어요. 공책에 콘텐츠를 담고 IP(지식재산권)로 출시할 수도 있고요. 예전에는 공책만으로도 잘 팔렸지만, 요즘 젊은 세대를 고려하면 콘텐츠가 필요해요.또 정말 다양한 형태로 상상력을 펼쳐서 공책을 만들고 싶어요. 전시를 해볼 수도 있고요!"

-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지 벌써 16년이 넘었는데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모습이네요.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변화해야 해요. 주변 환경은 계속 바뀌기에, 새로운 걸 시도해야 도태되지 않거든요."

- 나만의 무언가를 세상에 이제 막 꺼내 놓으려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나요?

"스탑(STOP)! 생각을 멈추세요. 미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게 필요합니다. 저도 솔직히 생각이 참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생각만 하다 보면 걱정이 많아지고 두려워지기도 하죠.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 조엘님 노트에 직접 메시지를 적으며 설명하고 있는 Indeer 브랜드 대표 조엘님
ⓒ 허정은
고이지 않는 삶

'꿈을 좇다'라는 말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무모한가요? 순수한가요? 20년 이상 브랜드를 지켜오면서도 고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는 조엘님에게서는 삶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꿈을 좇는 건 무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꿈을 좇지 않는 게 더 무모한 일이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 나서는 주체성을 저버리면, 조금씩 고이고 낡아갈 뿐이니까요. 비즈니스가 아닌 창작을 위해 사업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한 조엘님의 선택이 그래서 마음에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엘님은 공책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창작해 나가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인터뷰 사진 대만 타이베이에 위치한 Indeer 가게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왼쪽부터 진수, 조엘, 정은
ⓒ 허정은
《 group 》 성공담이 아닌 시작담 : https://omn.kr/group/bside_club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bside_seoul 인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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