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22살인데요” 분장에 가려진 피에로의 찐얼굴 [한우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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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이 물어보면 22살이라고 해요. 내년에 23살 되는 거죠."
"오늘은 운이 좋네요. 보통은 피에로한테까지 대기실을 내주진 않거든요. 대부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해요."
"예전엔 제가 서 있으면 피에로가 신기한 중고등학생들이 막 쫓아오기도 했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보호자 손을 잡고 풍선 받으러 와요. 오픈런처럼 줄을 서요. 저보다는 풍선을 먼저 보는 게 아쉽긴 하죠."
"섭외 문의가 오면 가격을 먼저 부르지 않고 예산부터 물어요. 거기에 맞춰 드리겠다고 하죠. 돈도 중요하지만 피에로를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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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만 찾는 시대, 22년째 ‘사람’을 보는 피에로
제일 먼저 와서 제일 늦게 가는 피에로의 하루

“사람들이 나이 물어보면 22살이라고 해요. 내년에 23살 되는 거죠.”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한 주민센터 행사장 대기실. ‘삐에로빈’ 신승빈씨가 손바닥만 한 휴대용 거울 앞에서 흰 분장용 파우더 ‘백분’을 얼굴에 두드리며 말했다. 올해로 피에로 22년차. 처음 피에로로 분장하던 날 그는 다시 태어났다. 취재에 앞서 그가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니 분장 전 모습과 나이는 비밀로 하고 싶어요. 아이들 환상을 깨면 안 되잖아요.”
신씨가 주민센터에 도착한 건 낮 12시30분. 행사 시작 1시간 전이었다. 행사 관계자로부터 분장할 공간을 안내받은 그가 대기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네요. 보통은 피에로한테까지 대기실을 내주진 않거든요. 대부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해요.”
회색 디지털 위장 무늬 가방을 열자 알록달록한 피에로 옷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빨강·주황·파랑·분홍 마름모가 촘촘히 박히고 소매 끝이 풍선처럼 부푼 셔츠와 전국 행사장을 돌며 선물받은 작은 기념품들이 잔뜩 달려 있는 청 멜빵바지, 그리고 무지개색 양말….

옷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다시 앉은 그는 백분을 3분 내내 쉬지 않고 두드렸다. 얼굴이 하얗게 덮이자 붓을 꺼내 들어 코와 볼은 빨갛게, 눈썹은 파랗게, 눈 주변은 노랗게 물들였다. 눈 밑엔 파란 눈물 자국을 그려 넣었다. “말 그대로 슬퍼도 웃어야 하는 게 피에로거든요.”
마지막으로 일자로 자른 앞머리가 모자 아래로 가지런히 떨어지도록 노란 챙이 달린 빨간 모자를 대여섯 번 고쳐 썼다. 그는 삐에로빈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22년간 ‘바가지 머리’로 살아왔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목소리가 바뀔 거예요.” 한 톤 높아진 목소리였다. 신승빈이 삐에로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씨는 원래 말수가 적었다고 한다. 말을 아예 못 하는 줄 오해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그의 성격이 바뀐 건 피에로로 다시 태어나면서다. “그래도 여전히 내성적인 구석은 남아 있어서요. 말하다 보면 말이 입 안에서 맴돌 때도 있고 그런데, 그래도 천천히 재밌게 얘기하려고 해요.”
오후 1시30분, 행사장에 나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뾱뾱’ 소리가 났다. 입에서 내는 소리였다. ‘뾱뾱’ 소리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땐 음성 변조를 한 듯한 높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는 행사장에 차려진 부스를 하나하나 돌며 ‘삐에로빈의 시그니처’인 풍선 꽃 머리핀을 만들어 건넸다. 머리핀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초 남짓. 내빈 소개 순서엔 무대 옆에서 꽃잎을 흩날렸다.

삐에로빈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등장 20분 만에 행사장 곳곳엔 꽃 머리핀을 꽂은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40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피에로! 피에로!”라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눈치도 빨랐다. 뜨개 수세미를 파는 바자회 부스에 가서는 손바닥만 한 마술용 소품 500원짜리를 내밀며 웃음을 선사하고, “예쁘게 하고 있어야 많이 팔리지”라며 판매자들 머리에 풍선 꽃 머리핀을 꽂아줬다.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가수 옆에선 풍선으로 기타를 만들어 들고 호응을 유도했다. 주민이 그 풍선 기타를 가져가자 곧바로 풍선 마이크를 만들어 다시 박수를 끌어냈다.
그는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행사장 빈틈을 채우는 안개꽃 같은 존재였다. 행사장 옆으로 차가 지나가면 ‘뾱뾱’ 소리를 내며 교통정리를 했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겐 “부추전 좀 먹고 가세요”라며 손님을 끌었다. 임산부에게는 ‘임신한 곰돌이’ 풍선을 만들어 건넸고, 행사장을 찾은 13명 아이들의 손과 머리에 풍선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

아이를 품은 곰돌이 풍선을 받은 임산부 최모(30)씨는 “피에로를 실제로 본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공들인 풍선도 처음”이라며 “너무 열심히 하셔서 고마울 정도”라고 말했다. 엄마와 풍선 머리끈을 나눠 맞춘 김리아(8)양은 “웃기고 귀여워요.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빨간 풍선 꽃팔찌를 받아 간 용산구 주민 장순옥(77)씨는 “사람을 가리지도 않고 상냥하고 붙임성 있게 오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맞아주니 너무 고맙다”고 했다.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 윤모씨는 “감초 역할로 부른 건데 호응 유도를 자연스럽게 잘하시더라”며 “다음 행사 때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삐에로빈의 명함을 챙겨 갔다.
그는 ‘공연’과 ‘행사’를 구분해 말했다.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무대 위에서 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공연이라면, 이날처럼 서커스의 광대가 그렇듯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즐거움을 주는 건 행사라는 것이다. 그는 이 행사를 ‘삐에로 퍼포먼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은 점점 피에로가 아닌 풍선으로 향하고 있다. “예전엔 제가 서 있으면 피에로가 신기한 중고등학생들이 막 쫓아오기도 했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보호자 손을 잡고 풍선 받으러 와요. 오픈런처럼 줄을 서요. 저보다는 풍선을 먼저 보는 게 아쉽긴 하죠.”
그래서 그는 웬만하면 줄을 세우지 않는다. 혹여나 줄이 생기더라도 주문은 받지 않는다. 앞선 아이에게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어주면 뒤에 선 아이들이 모두 같은 걸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들의 옷이나 신발에 그려진 캐릭터를 보고 그에 맞는 풍선을 만들어준다. 헬로키티 신발을 신은 아이에겐 키티를, 공룡 옷을 입은 아이에겐 공룡을 건네는 식이다.
그는 ‘아무나 피에로를 하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분장 없이 선글라스를 낀 채 풍선만 불어줘도 피에로라 불린다는 것이다. “저는 선글라스 안 좋아해요. 사람끼리 소통하는 건데 눈을 보고 얘기해야죠.”
그가 이날 목에 걸고 다닌 작은 전광판도 같은 고민에서 나왔다. 그는 쓰지 않는 스마트폰 공기계 화면에 ‘삐에로아티스트 삐에로빈’이라는 글자를 띄운 채로 돌아다녔다. “한국에선 피에로 하면 풍선을 공짜로 주는 아르바이트 정도로만 생각하니까요. 이것도 직업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축제 포스터나 팸플릿에서 그의 이름이 빠지는 일도 잦다. 그럴 때면 그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직접 일정을 올리곤 한다.

피에로가 된 건 우연이었다. 이벤트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행사 포스터 붙이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처음 피에로를 만났다. 4년간 회사에 몸담은 뒤 독립했다. 풍선은 회사에서 기본기를 배웠고 나머지는 혼자 익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인터넷에 ‘피에로’를 검색해봐요. 저만의 의상, 풍선 모양을 만들고 싶어서요. 남들이랑 똑같은 건 싫더라고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몸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일당은 10만원대에 머물렀다. 코로나 이후 물가가 오르며 삐에로의 몸값도 두세 배로 뛰었다. 좋으면서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중간에 낀 대행사들이 웃돈을 얹으면서 ‘피에로는 비싸다’는 인식만 남았기 때문이다.
“섭외 문의가 오면 가격을 먼저 부르지 않고 예산부터 물어요. 거기에 맞춰 드리겠다고 하죠. 돈도 중요하지만 피에로를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으니까요.”
코로나19가 덮쳤을 땐 일이 뚝 끊겼다. 그는 경기 수원의 반도체 공장 일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버텼다. “몇십 년 이것만 했으니까 다른 일을 하는 게 겁이 나더라고요.” 그는 행사가 없는 겨울이면 지금도 우울해진다고 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피에로를 못 해서다.


한때 그의 팬클럽을 만들어줬던 중학생은 지금 다른 지역에서 아이 엄마가 됐다. 그가 돌잔치를 맡았던 아기는 스무 살이 넘었다. 무명 시절의 가수 임영웅을 거리공연에서,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던 걸그룹 리센느를 축제장에서 만난 인연도 있다. 그들이 스타가 되는 걸 보며 씁쓸하진 않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위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아래에서 1등을 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소개글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위에서 1등보다 아래에서 1등하는 삐에로.’
그의 목표는 ‘30살 피에로’가 되는 것이다. 해외처럼 삐에로를 공연자로 대우하는 분위기는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다. “마음은 계속하고 싶죠.”
오후 4시, 각 부스에서 준비했던 재료가 소진되면서 행사는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그래도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부스를 정리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다가가 “집에 있는 아들딸 갖다주라”며 풍선을 하나하나 만들어 건넸다.
무대와 부스가 하나둘 해체되고 철거된 집기들이 1t 트럭에 실리는 동안에도 그는 행사장을 돌았다. 음향팀까지 챙긴 뒤에야 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제야 몸 풀렸는데 끝나버렸네.” 행사 관계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던 그에게 결국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피에로님은 언제 가세요?”
그제야 대기실로 돌아온 그는 무지개색 양말부터 벗어 신발 안에 넣었다. 멜빵바지와 알록달록한 셔츠를 벗자 다시 검은 카고바지에 검은 민소매 차림이 됐다.

이어 클렌징 티슈와 클렌징폼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클렌징 티슈로 백분을 한 번 닦아내고, 클렌징폼으로 얼굴을 씻은 뒤 미처 지워지지 않은 부분을 티슈로 다시 훔쳐냈다. 분장용 파우더와 물감은 땀과 피지에 번지지 않도록 유성으로 만들어져 여러 번 닦아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모공 깊이 박힌 노폐물을 빼러 일주일에 한 번은 사우나를 찾는다고 했다.
원래 목소리로 돌아온 그가 22년간 지켜온 원칙을 말했다. “소방관분들이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 마음으로 일해요.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마지막에 나오자고요.”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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