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세 번 갈아타고 갈 정도라고? 동네 이발소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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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 동네의 작은 터키계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남자 미용사가 앞을 막아섰다.
수염기르기가 다시 유행하고 그것이 전문 손질 수요를 키웠으며 터키, 아랍 문화권의 가꾸기 전통이 더 넓은 고객층을 만났다고 설명한다.
2천 년 전 로마의 이발소도 동네 소식과 소문이 오가는 남자들의 사랑방이었다.
수년 전 문전박대를 받았던 그 미용실을 다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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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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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 동네의 '스타이발소'. 창마다 수염 기른 이발사 그림이 가득하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한국 작가 구정아의 전시 포스터가 걸려 있다. |
| ⓒ 고정희 |
'센 여자들의 도시에서, 남자들도 자기들끼리 편하게 있고 싶은 모양이네.'
어렸을 때만 해도 이발소와 미용실은 따로였다. 그러다 어느새 남녀가 같은 미용실에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그런데 남자들만의 이발소가 돌아왔다.
그 뒤로는 바버샵이 자꾸 눈에 띄었다. 런던의 카리브계 동네에서 본 바버샵 안의 남자들은 서로 무척 즐거워 보였다. 우리 동네 이발소와 닮았으면서도 공기는 뭔가 달랐다. 여행자인 내가 그 차이를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같은 '남자들만의 공간'에도 저마다 다른 표정이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백화점에서 세련된 '오리엔트 바버샵'과 마주쳤다. "동방의 몸단장 문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기법"을 선보이는 곳으로 소개한다.
그제야 궁금해졌다. 내가 우연히 이런 가게를 계속 만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어떤 물결이 일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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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하노버의 바버샵. 오토바이와 새로운 헤어컷은 남성의 상징일까. |
| ⓒ 고정희 |
2013년 말, 터키계 야카르 형제는 독일인 중산층들이 사는 샤를로텐부르크 구에 이발소를 열었다. 크로이츠베르크나 노이쾰른 등 터키계 주민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독일인들이 이발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착상했다고 한다. 독일인들도 이발소에서 동방의 사치를 좀 누리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눈을 찡긋했다.
독일인들이 터키계 이발소 앞에서 망설인 이유는 분명하다. 서로 가족처럼 어울린 사람들 틈에 끼는 어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카르 형제는 새 가게에 이런 문구를 내걸었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인도, 터키인도, 아랍인도 아닙니다. 그냥 남자입니다."
나는 남녀 사이의 경계를 보았는데, 그들은 남자들 사이에도 '끼리끼리'가 있음을 인지하고 다리를 놓으려 했다.
'프레시'한 남자가 진짜 남자야!
그러다 독일 주간지 부록판인<차이트매거진>에서 '블랙 엑설런스'라는 이름의 바버샵을 다룬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이 가게도 형제가 열었다. 말컴과 아벨 투레 형제는 기니 출신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프로 헤어(아프리카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곱슬이 강하고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형태의 헤어스타일)를 제대로 다루는 가게를 꿈꾸며 2021년 문을 열었는데, 이제 여러 나라 출신의 이발사들이 일하고 백인 소년들도 많이 온다.
17세 청소년 핀은 브란덴부르크에서 기차를 세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온다. 가장 비싼 이발사에게 40유로를 내고 머리를 맡기기 위해서다. 기사를 읽다가 자꾸 멈춰야 했다. 테이퍼 페이드(페이드컷의 한 종류), 버즈컷(바리깡을 사용해 머리카락을 매우 짧고 균일하게 자르는 남성 숏스타일), 그릴즈(치아 위에 착용하는 일종의 치과용 보석이자 장신구), 룩스맥서(외모 개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 모르는 말 투성이었다. 머리 모양과 장신구, 외모를 가꾸는 방식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동네 이발소에서 시작된 나의 관찰이 여기까지 왔다.
말컴은 예전엔 머리를 멋지게 하고 귀걸이를 하면 "너 동성애자야?"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데 지금 열네 살짜리 손님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남자는 프레시해 보여야 해요. 좋은 옷을 입고, 몸을 단련하고, 좋은 냄새가 나야 한다고요."
꾸미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겼던 시절에서 이제는 그래야 남자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터키계, 아랍계 청소년들이 늘 말끔한 모습으로 다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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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절 시위가 열린 크로이츠베르크 거리. 시위와 파티가 어우러진 이날, 공들여 다듬은 머리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
| ⓒ 고정희 |
저 곱슬머리를 다듬는데 무엇이 필요했을까. 부조만 보고 실제 손질법까지 알 수는 없고, 가발이나 가짜 수염을 붙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토록 공들여 새긴 머리와 수염이 아무 뜻 없는 장식이었을 리는 없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도 '사랑의 기술'이라는 글을 써서 남자들에게 늘 단정히 가꾸라고 충고한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있어 왔다. 다만 시대에 따라서 무엇을 멋있다고 여기는지 그 기준이 달라진다. 히피 세대에겐 더부룩한 것이 멋이었다.
앞서 언급한 '블랙 엑설런스'에서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낸다. "마음을 달래주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2천 년 전 로마의 이발소도 동네 소식과 소문이 오가는 남자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년들은 "외모를 잘 가꾸면, 왠지 안전할 것 같아서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왕의 수염의 정교한 무늬가 권력의 과시였다면, 소년의 잘 가꾼 머리는 자신을 지키는 갑옷으로도 보인다. 중세의 기사라면 문장을 새긴 방패와 투구 장식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갑옷도 군복도 없는 평화로운 도시에서 소년들은 무엇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지킬까. 그 답 중 하나가 이발소의 의자 위에서 다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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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를린의 공원 길을 걸어가는 청년들. 짧게 다듬은 옆머리에 저마다의 스타일을 더했다. |
| ⓒ 고정희 |
몇 집 건너 다른 이발소에 들어가 보았다. 아제르바이잔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다. 사장도 손님들도 독일어를 못 한다며 웃기만 하고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한 손님에게 수염이 참 아름답다고 했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건 알아듣지 않았냐고 하자 다시 웃으며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계획했던 인터뷰는 무산되었다. 딱히 묻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진이라도 찍으려 했던 것인데 사진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는 것이 의아했다. 이곳은 같은 동방계라도 백화점의 바버샵과는 사뭇 다른 곳이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곳도 아니고 청소년들이 개인 SNS 사진을 위해 가꾸러 오는 곳도 아니다. 동족들끼리 모이는 곳이 분명했다.
허탕을 치고 귀가하는 길에 슬그머니 상상력이 발동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정권의 탄압을 피해많은 언론인과 야당 인사들이 유럽으로 망명했고 베를린이 중심지라는 말을 들었다.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인은 오랫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리며 주변의 여러 나라에게 지독히 시달렸다. 그 끝에 이라크 북부의 자치지역을 얻었다.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사진 인터뷰는 거절을 당했어도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란 인상은 남았다. 쿠르드 청년의 깍듯함이 뜬금없이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일제강점기 때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밀사와 비밀 결사가 떠 올랐다. 남자들끼리 오래 앉아 있어도, 자주 드나들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곳. 비밀 결사가 만나기에 이발소만 한 곳이 또 있을까. 물론 순전히 내 상상이다. 조심스러워하는 그들에게 혹시라도 이 기사가 누가되지 않는 마음에서 나의 이런 상상은 아무 근거가 없음을 덧붙인다. 그러나 몇 년 전 나를 막아섰던 그 문 안에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문이 있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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