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속에 웃고 있나요…‘배드 모닝’ K콘텐츠

노승욱 매경이코노미 기자(inyeon@mk.co.kr) 2026. 10. 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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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열흘간의 축제 시작을 알렸다. 올해는 59개국 246편의 공식 초청작을 포함해 총 315편이 관객을 만난다. 한국 진출 10주년을 맞은 넷플릭스도 모두 5편을 영화제에서 선보인다.

그러나 화려한 레드카펫 뒤편의 제작 현장에는 냉기가 돈다. 투자 위축과 제작비 급등, 극장·TV 수요 감소가 겹치며 ‘제작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화제작 ‘가능한 사랑’도 국내 투자 유치에 실패해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사례다. 글로벌 흥행은 이어지는데 중예산 작품과 중소 제작사는 설 자리를 잃는 K콘텐츠의 ‘외화내빈’ 역설을 들여다봤다.

수익률 -33%·제작 반 토막 ‘첩첩산중’

이창동도 투자 못 받아…넷플릭스 의존↑

약 100편.

국내에서 방영된 드라마 편수다(2024년 기준, 한국방송학회). 2022년 141편에서 2년 새 약 30% 줄었다. 감소분은 방송사와 국내 OTT 등 국내 유통 창구에서 발생한 반면, 넷플릭스·디즈니+ 등 글로벌 OTT 오리지널 수는 유지되거나 되레 늘었다. 제작비는 같은 기간 더 가파르게 뛰었다.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2018년 5억5000만원에서 2024년 35억원으로 6배 넘게 올랐지만, 방송사 방영권료는 과거 제작비의 40~70% 수준에서 최근 20~30%까지 낮아졌다. 국내외 판매 수익을 모두 합쳐도 제작비의 75~80% 정도만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돈이 안 되니 방송사 편성과 제작은 줄고,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의존도는 더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문제는 줄어든 국내 편성의 빈자리를 모두 해외 시장이 메워주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9월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의 ‘골든타임: 한류의 물적 기반 사수를 위한 정책 패러다임 전환’ 세미나에선, 국내에서 연간 130~140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더라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거나 해외에 노출되는 작품은 약 40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드라마 제작사 입장에선 줄어든 방송사·국내 OTT 편성 대신 몇 안 되는 글로벌 OTT의 ‘간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OTT 의존이 높아질수록 제작사의 IP 축적이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다. 제작비를 플랫폼이 부담하는 대신 IP를 가져가는 계약이 많아, 작품이 흥행해도 굿즈, 스핀오프, 리메이크 등 후속 수익이 제작사에 충분히 남지 않을 수 있다. 제작 편수 감소가 다시 다음 작품의 투자 여력 약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2022년 드라마 제작 자회사를 만들고 원작 IP와 작가, 감독에 투자했는데 돌이켜보면 시장의 고점을 잡은 셈”이라며 “ ‘오징어 게임’ 이후 글로벌 OTT가 한국 드라마의 흥행 공식을 익히면서 유명 배우와 작가, 연출에게 자금이 몰렸고 제작비가 빠르게 뛰며 산업이 흔들리게 됐다”고 고개를 저었다.

영화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한국 상업영화(순제작비 30억원 이상) 개봉 편수는 31편으로, 전년 37편에 비해 6편(16%) 줄었다. 수년 전 제작한 뒤 상영관을 못 잡아 개봉이 지연된 편수도 포함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감소세는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이유는 역시 돈이 안 돼서다. 지난해 한국영화 평균 투자 수익률은 -33.1%로 최근 1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6년 29.8%였던 수익률은 2019년 10.9%로 급감한 뒤 2020년부터 6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국민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도 연간 4.2회에서 2.08회로 반 토막 났다.

상황이 이렇자 영화계는 극장 관객 수 마지노선인 ‘1억명’ 붕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억609만명으로 전년보다 13.8%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평균 2억2098만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토피아2’ ‘귀멸의 칼날’ 등 해외 작품이 흥행한 덕분이다. 한국영화 매출도 4191억원으로 39.4% 감소,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부진은 다시 신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국내 투자배급사는 기존 영화에서 회수한 자금을 다음 작품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수요 감소와 흥행 실패가 누적되자 신규 투자 기준은 높아지고, 제작사는 차기작 개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실제 순제작비 100억원 이상 고예산 작품 개봉 편수는 2024년 11편에서 지난해 8편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순제작비 30억~100억원 미만 중예산 영화도 26편에서 23편으로 감소했다. 특히 50억~80억원대 영화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59.7%로 곤두박질쳤다. “새로운 영화가 기획·제작되지 않는 구조적 위기”라는 게 영진위의 진단이다.

영화계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제작에 들어간 한국 상업영화는 20~30편 수준에 그쳤다. 과거 매년 40~50편씩 만들어지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 토막 난 셈이다.

세계는 열광하는데

‘제작 절벽’에 빠진 K콘텐츠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선 K콘텐츠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성장 모델 찾기에 분주하다. 베트남 등 해외 진출을 통한 ‘IP 선점’, 제작비 절감이 가능한 ‘AI 제작’, 크라우드펀딩 등 팬덤과 대중에게 제작비를 조달하는 ‘콘텐츠 금융 다변화’, OTT가 보유한 IP를 활용해 게임 등 2차 콘텐츠를 개발하는 ‘IP N차 활용’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은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등 포괄적인 지원과 함께 AI 활용 등 제작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 지원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며 “K콘텐츠가 더 많이 제작되고 더 넓게 유통될 수 있도록 길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동현 런업컴퍼니 대표
“K콘텐츠, 베트남·AI서 돌파구 찾아야”
김동현 런업컴퍼니 대표
런업컴퍼니는 국내 배우 육성·캐스팅과 콘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에서 영화 제작·배급·리메이크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콘텐츠 기업이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숏폼 제작과 배우 초상권·이미지를 활용한 AI IP 사업까지 추진하며 새로운 제작·수익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Q. 국내 콘텐츠 산업이 위기라는 말이 많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체감하나.

A. 코로나 때 OTT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콘텐츠 시장도 함께 커졌지만 코로나 이후 한국 영화 시장이 급격히 침체됐다. 런업컴퍼니가 직접 제작한 영화도 극장 개봉 일정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극장과 배급사 모두 확실히 돈이 될 작품이 아니면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몇 년 뒤에야 개봉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Q. 그래서 베트남 시장으로 눈을 돌렸나.

A. 국내 극장 시장은 줄어드는데 베트남은 반대로 영화관과 관객이 계속 늘고 있었다. 2024년 현지에서 제작과 배급 관련 라이선스를 확보했다. 지금은 사업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지에서 영화 5편과 OTT 콘텐츠와 영화의 제작 대행도 진행했다.

Q. 베트남 영화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베트남은 대형 TV 보급이 더디고, 월 정액 구독료도 부담스러워 집에서 OTT를 보는 문화가 정착하지 않았다. 또한 더운 날씨로 인해 ‘몰링(malling)’이 발달, 자연스레 영화관에서 데이트나 가족 여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젊은층은 평소 스마트폰으로 숏폼을 소비하다가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기고 싶을 때 극장을 찾는다. 전반적으로 1990년대~2000년대 초반 국내 영화 시장 성장기와 비슷하다.

Q. AI가 확산되면 배우나 제작사의 수익 모델도 달라질까.

A. 배우의 얼굴과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IP가 될 수 있다. 배우가 직접 촬영하지 않아도 자신의 캐릭터가 AI 영상에 등장하고, 사용될 때마다 수익을 배분받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동시에 AI가 기존 영상과 인물을 학습해 새로운 영상을 만드는 만큼 초상권이나 저작권 분쟁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는 권리관계가 명확한 ‘클린 데이터’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IP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AI 영상 제작 플랫폼 회사와 IP 셰어 파트너십을 맺고 사업 전개를 추진하고 있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80호(2026.10.14~10.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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