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엄마 말이 날 살게했다…‘카약 2관왕’ 보육원 집 ‘귀한’ 자식 [안혜리의 인생]
아시안게임 2관왕 김효빈 선수 인터뷰
![김효빈 선수가 지난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레이스를 펼친 후 환호하고 있다. 김효빈은 4인승과 2인승 2관왕에 올랐다. [사진 아이치 · 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4/joongang/20261014001556585ycf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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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림 받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형·누나·동생 많아 자랑스러워
피해 준 축구 국대 군 면제 발언
도움 주는 진짜 어른 되고 싶어
」
담담하게 지난 삶을 들려줬을 뿐인데 나 혼자 몇 번을 울컥했다. 최근 막을 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비인기 종목의 온갖 어려움을 뚫고 4인승과 2인승 500m 2관왕에 오른 카누(카약) 김효빈(25·울산시청) 선수와의 지난 10일 인터뷰 얘기다. 생사를 오갈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생후 9개월에 두 살 위 누나와 함께 보육원에 맡겨져, 학창 시절엔 '시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왕따에 자살 충동까지 겪던 청년이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고난 극복 서사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2시간 넘는 인터뷰 후 유독 진한 여운이 남았던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노력을 믿는 성실함, 어떤 출발선에 섰든 인생의 결승선은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자세, 그리고 지금까지 받은 걸 감사할 줄 알고 더 많이 갚고 싶어하는 성숙한 마음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남보다 적다고 투덜대고, 해보지도 않은 채 남 탓 사회 탓부터 하는 요즘 세상 소음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친가족과 다를 바 없는 형·누나·동생이 남보다 더 많아 자랑스러울 뿐"이라는 당당한 이 청년 앞에서 부끄러웠다. 아니, 부러웠다. 김 선수 시각에서 그의 인생을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넌 귀한 우리 집 자식"
유치원 때였다. 왜 우리 집은 다른 친구들 집보다 훨씬 크고 방이 많은지 궁금했다. 원장님(최현숙 충남 부여 삼신늘푸른동산 원장·63)한테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
"응. 보육원. 넌 생후 9개월에 여기 왔어. "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보육원에 산다는 걸 안 후에도 처지를 심각하게 비관하진 않았다. "얘 보육원 산대"라는 놀림 받고 따돌림당할 때마다 물론 힘들었다. 울면서 원장님한테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하소연도 참 많이 했다. 원장님은 늘 단호하게 다독여주셨다. "맞아, 넌 그런 비난 받을 사람이 아니야. 귀한 우리 집 자식이야. " 그래서인지 난 항상 여기를 시설이 아니라 따뜻한 내 집이라고 생각했다. 숙소 생활하다 가끔 놀러 가면 자고 갈 내 방 하나가 여전히 마련돼 있다. 그래서일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원에서 자란 아이들 모두 여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언제든 돌아가면 반겨주는 내 집이라고 여긴다.
![두세 살 무렵. 유모차 뒤 어른이 생명의 은인 최현숙 원장님이다. [사진 김효빈]](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4/joongang/20261014001557842blks.jpg)
중3 때 심리 검사로 우울증 진단을 받아 외부 정신과 상담과 함께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나아지기는커녕 약 탓인지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도 하기 싫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원장님이 의료진과 상의해 결단을 내렸다. "약을 끊어보자. " 불안했지만 그럴 때마다 원장실 가서 차 한잔하며 같이 울어주는 원장님의 진심 어린 얘기를 들으면서 결국 우울증을 극복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내가 시설에 들어오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후 사경을 헤매 인근 대전병원, 심지어 서울의 큰 병원을 숱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 번에 늘 100명 가까이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원장님 이하 20~30명 직원 모두 마치 내가 유일한 자식인 양 지극정성으로 돌봐 아기였던 나를 살렸다. 그리고 원장님은 이렇게 '또' 사춘기 나를 살려냈다. 이때부터 용기를 얻어 더 운동에 집중했다. 내가 원장님을 괜히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올림픽도 영어도, 늦지 않았다
말문이 빨리 트였고 글도 빨리 깨친 나를 두고 원장님 부부는 항상 "넌 공부해라"고 했다. 그런데 유치원 때 진작 단칼에 거절했단다. 어릴 땐 지금(187㎝)과 달리 키가 작았는데 워낙 몸이 약해서인지 오히려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특히 물을 너무 좋아했다. 보육원 인근 부여 백마강(금강)에 자주 갔는데, 저 멀리 물 위에 하얀 게 둥둥 떠다니는 게 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카누"라고 알려줬고, "인근 부여중에 카누부가 있으니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태권도·육상·씨름을 돌고 돌아 중학교부터 카누에 정착했다.
![유치원 무렵. 유치원 시절 태권도를 시작으로 육상 · 씨름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중학교부터 카누를 시작했다. [사진 김효빈]](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4/joongang/20261014001559097agum.jpg)
선수로서의 궁극적 목표는 은퇴할 때 그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 후배들한테 아낌없이 물려주기다. 어린 선수들이 나를 치고 올라가야 카누가 발전하니까. 물론 당장의 목표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카약 4인승 500m 한국 첫 메달이다. 그러려면 우선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등에 나가 포인트를 쌓아 올림픽 본선 티켓부터 거머쥐어야 한다. 현재 점수로는 아직 부족해 계속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큰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 형들과 코치진이 독기 품고 원팀으로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궜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외 경기나 훈련 때 만난 좋아하는 외국 유명 선수들한테 메시지 보내 "내 동작 좀 보고, 피드백 달라"는 부탁을 서슴없이 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아시아 정상이지만 세계 수준에선 우린 아직 약하고 부족한 팀이니까. 훈련 시스템이나 스케줄까지 알려달라, 배워서 해보겠다고 요청하면 다들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어릴 때 공부 안 한 거 처음으로 후회했다. 지금은 번역기 돌려서 어찌어찌 연락 주고받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유료 온라인 영어 수업 신청해서 하루 1시간씩 영어 공부하고 있다.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지만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
미래, 불안하지 않다
카누가 한국에선 생소한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실업팀 수가 많지 않고 기업 스폰서는 꿈도 못 꾼다. 웬만한 장비도 해외 경기 나갔을 때 선수들이 사비로 직접 사 올 정도라 은퇴하면 지도자 자리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 일단 노력하겠지만 만약 지도자가 안 돼도 괜찮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요리를 좋아해 주방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해봤던 터라 그쪽으로 진로를 바꿀 생각도 있다.
보육원 출신, 게다가 운동만 하느라 공부 소홀히 했다고 하면 선수 이후의 내 삶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 '만 18세에 보육원 퇴소하면 나라가 주는 500만원밖에 없어 자립준비청년들 삶이 막막하다'는 식의 언론 보도를 꽤 봤다.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자립정착금과 매달 나오는 자립수당, 아이 이름으로 쌓이는 개인 후원자 통장, 그리고 살아온 생필품 지원 등 다양하다. 신청만 하면 2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청년 임대주택도 있다. 풍족하진 않아도 열심히 살면 살 수 있다. 만약 시설 청년들이 이런 복지혜택을 못 받는다면 그건 시설 원장이나 자립지도사 등 어른들이 제대로 알려주고 챙겨주지 않은 잘못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27일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딴 김효빈 선수(가운데)가 공항에 마중나온 최현숙 원장(사진상 김 선수 오른쪽)과 이공헌 대표(김 선수 왼쪽) 부부에게 각각 금메달을 걸어줬다. 김 선수는 생후 9개월부터 최 원장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컸다. [사진 김효빈]](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14/joongang/20261014001600352cdck.jpg)
최근 물의를 빚은 아시안게임 축구팀의 경솔한 군 면제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어른의 잘못을 떠올리게 된다. 우선, 초등생도 다 아는 기본적 예의 없는 선수들의 발언이나 '절둑 세리모니' 영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뢰 사고로 피해 본 군 장병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나. 이런 선수들 잘못으로 피해는 엉뚱한 다른 선수들이 받을 텐데 정말 화가 난다. 축구팀 안에 이걸 미리 말해준 지도자가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난 다른 어른이 되고 싶다. 어렵게 자란 만큼 작게는 후원이나 봉사활동, 크게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품어주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 당장은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나를 보고 힘 내라고.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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