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명부 조작 의혹에 들끓는 인도…모디 장기집권 최대 위기

전민구 2026. 10.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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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에서 캬네시 쿠마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한 시위자가 경찰에 구금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도에서 1억30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선거인 명부에서 삭제돼 집권당에 유리하도록 명부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확산하며 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Z세대 중심 온라인 정치운동 단체 바퀴벌레국민당(CJP)이 주도하는 시위에 야권이 가세하며 집권 13년 차에 접어든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최대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간) “유권자 명부 개편이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연방의회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에 유리하게 이뤄졌다는 의혹이 확산하면서 이달 들어 거의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갸네시 쿠마르 인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ECI)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논란은 지난해 시작된 ECI의 유권자 명부 정비에서 비롯됐다. ECI가 명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전체 유권자의 약 15%에 해당하는 1억3300만명의 이름을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사망자 2800만명, 이주자 6300만명, 소재 불명자 3000만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명부에서 대거 삭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힌두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집권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무슬림 등 소수집단이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봤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도 매체 인디언익스프레스가 지난달 말 ECI 위원 2명이 명부 정비와 유권자 등록 절차 등을 놓고 내부적으로 우려를 제기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지난 11일 인도 뭄바이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모습. AP=연합뉴스


ECI와 BJP는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ECI는 선관위 내 의견 충돌은 어느 기관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통상적인 일이라며 부적절한 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명부 정비는 중복 등록자와 사망자, 허위 등록자를 걸러내기 위한 조치였으며 잘못 삭제된 유권자는 다시 등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에도 CJP를 중심으로 한 시위는 격화하고 있다. CJP는 지난 2일 경제 중심지인 서부 뭄바이에서 쿠마르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첫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인도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를 비롯해 20여개 야당이 참여하는 정치연합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도 시위에 합류했다. INC는 쿠마르 위원장뿐 아니라 모디 총리와 아미트 샤 내무부 장관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11일 수도 뉴델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인도 당국은 경찰 등 6만명을 투입해 수도권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주요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와 콘크리트 블록을 설치해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지하철역 45곳을 폐쇄하고 시위 예정지와 도심 일대에서는 모바일 통신망까지 차단했다. 인도 경찰은 지난 10일에만 시위 참가자 2400명을 연행해 구금했으며 대부분은 당일 밤 석방됐다고 밝혔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대가 대법원까지 행진하겠다고 예고하자 당국은 12일에도 지하철역 폐쇄 등 추가 대비에 나섰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지난 11일 바퀴벌레국민당(CJP) 공동 창립자 사우라브 다스(오른쪽)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CJP 지도부도 경찰에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아비지트 딥케 CJP 창립자와 사우라브 다스 공동 창립자, 아슈토시 란카 대변인 등 지도부 3명은 지난 10일 뉴델리 도심 잔타르만타르에 시위대 수천 명을 결집할 계획을 세운 상태에서 항공편으로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구금됐다. 이들은 이튿날인 11일 ‘공공의 평온을 유지하겠다’는 서약을 조건으로 석방됐지만 쿠마르 위원장이 사퇴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딥케는 석방 직후 X(옛 트위터)에 모디 총리를 겨냥해 “인도의 수치”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2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 첫날 참석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외신은 이번 시위가 모디 총리 집권 기간 최대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 주요 주의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모디 총리와 집권당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은 “모디 정부는 집권 기간 반대 의견에 극도로 비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왔지만 이번처럼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이번 시위가 심각한 정치적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번 시위는 2014년 집권한 모디 총리에게 가장 큰 정치적 난관이 됐다”고 전했다. 모디 총리는 아직 이번 시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CJP는 지난 5월 수리야 칸트 당시 대법원장이 젊은 실업자를 바퀴벌레에 비유한 발언을 계기로 결성된 정치운동 단체다. 인도 Z세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세를 키운 CJP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현재 2500만명을 넘어섰다. 집권당 BJP의 팔로워 수인 1500만명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CJP는 지난 7월 의대 입학시험 문제 유출 의혹 등을 문제 삼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시위로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이 사퇴했다. 이는 대규모 시위 압박으로 모디 내각 장관이 물러난 첫 사례였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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