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원 아깝지 않다"…당장 전기 못 뽑아 파는 '발전소'에 열광하는 까닭[사이언스 스코프]

김종화 2026. 10. 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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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스코프(Science Scope)'는 특정 과학기술 현상을 확대해 들여다보고 그 의미와 미래를 심층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자원을 가진 나라가 유리하지만, 핵융합은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운전하고 핵융합로를 설계·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핵융합은 단순한 발전기술이 아니라 미래 국가의 에너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기술"이라며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을 먼저 확보한 국가가 미래 에너지 시장과 관련 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요국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융합으로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지 검증하고, 실제 발전소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시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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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보다 안전한 '인공 태양'
에너지 패권 바꿀 핵융합 경쟁
편집자주
'사이언스 스코프(Science Scope)'는 특정 과학기술 현상을 확대해 들여다보고 그 의미와 미래를 심층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프랑스 카다라슈 ITER 토카막(Tokamak) 내부에서 핵융합로 조립이 진행되고 있다. 진공용기와 초전도 자석 등 핵심 장치를 통합해 '인공 태양' 구현에 필요한 기술을 검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융합 실험시설이다. ITER Organization 제공

태양을 지구 위에 만들 수 있을까.

한때는 공상과학(SF) 영화 속 상상이었지만, 세계는 지금 이 질문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프랑스 카다라슈에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공동 건설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간 기업들까지 뛰어들어 '인공 태양' 상용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아직 세계 어디에도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는 발전소는커녕, 경제성을 입증한 사례조차 없다. 그런데도 주요국들은 왜 막대한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있을까.

세계가 만드는 것은 발전소 하나가 아니다. 미래 에너지 패권이다. 핵융합은 미래 에너지 시장과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 없는 발전소에 수십조원이 몰리는 이유

핵융합이 주목받는 이유는 인류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탄소 배출 절감을 요구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앞으로 세계 전력 소비 증가의 상당 부분을 AI와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친환경적이지만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원자력은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안전성과 방사성 폐기물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Cadarache)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전경. ITER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핵융합 연구 프로젝트로,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ITER Organization 제공

핵융합은 이런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태양처럼 수소 원자핵을 융합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연료도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무엇보다 날씨와 관계없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저 전원이 될 수 있다.

핵융합의 진짜 가치는 '기술기반 에너지'라는 점에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자원을 가진 나라가 유리하지만, 핵융합은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운전하고 핵융합로를 설계·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에너지 패권의 기준이 자원에서 기술로 바뀌는 셈이다.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부원장은 "핵융합은 단순한 발전기술이 아니라 미래 국가의 에너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기술"이라며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을 먼저 확보한 국가가 미래 에너지 시장과 관련 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요국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상용화를 가로막던 기술 장벽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고온 초전도 자석과 핵융합 소재, 삼중수소 연료주기 등 핵심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공 연구기관뿐 아니라 민간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CFS), 헬리온 에너지 등 스타트업들이 수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핵융합, 왜 원전보다 안전하다고 할까

핵융합은 원자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원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반응 원리와 위험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재 원전은 우라늄이 쪼개지는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다. 반응이 시작되면 이를 지속적으로 제어해야 하며, 냉각 기능을 잃을 경우 노심용융과 같은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역시 장기간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반면 핵융합은 수소 원자핵이 서로 합쳐지면서 에너지를 만든다. 이 반응은 약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와 강력한 자기장이 동시에 유지될 때만 지속된다. 온도나 밀도, 자기장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무너지면 플라스마는 곧바로 식고 핵융합 반응도 즉시 멈춘다.

쉽게 말해 핵분열은 한 번 붙으면 계속 타는 장작불에 가깝고, 핵융합은 조건을 계속 맞춰줘야만 유지되는 토치 불꽃과 비슷하다. 연료 공급이나 초고온 상태가 끊기면 불꽃이 바로 꺼지듯 핵융합도 자연스럽게 반응이 멈춘다.

윤 부원장은 "핵융합은 장치를 켜기는 어렵지만 끄기는 매우 쉽다"며 "장치에 이상이 생겨도 반응이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멈추는 것이 핵융합의 가장 큰 안전성"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핵융합도 삼중수소를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고, 고에너지 중성자가 장치를 방사화시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형태의 중대사고 가능성은 원리적으로 매우 낮다고 설명한다.

ITER는 발전소가 아니다…미래 산업 만드는 '기술 플랫폼'

프랑스 카다라쉬 ITER 건설 현장에서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진공용기(Vacuum Vessel) 섹터 모듈을 토카막 피트(Tokamak Pit)로 옮겨 조립하는 모습. ITER는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 7개 회원이 공동 추진하는 세계 최대 핵융합 프로젝트다. ITER Organization 제공

현재 핵융합 연구의 중심에는 프랑스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가 있다.

많은 사람이 ITER를 미래의 핵융합 발전소로 생각하지만, ITER의 목표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핵융합으로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지 검증하고, 실제 발전소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시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ITER가 성공하더라도 상업용 발전소는 이후 실증로(DEMO)를 거쳐야 완성된다.

그렇다면 아직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ITER에 왜 35개국이 참여하는 것일까.

ITER의 가장 큰 가치는 '장치'보다 '경험'에 있다. 핵융합로를 실제 설계·제작·조립하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 자체가 미래 핵융합 산업의 핵심 자산이다.

윤 부원장은 "ITER는 핵융합 발전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통합적으로 검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라며 "설계와 제작, 조립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이야말로 후속 핵융합로 개발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한국 역시 ITER 사업을 통해 진공용기와 열차폐체 등 핵심 장치를 제작하며 초전도, 극저온, 초고진공, 대형 정밀용접 기술을 축적해 왔다. 최근 추진 중인 한국형 혁신핵융합로 개념설계에도 ITER에서 확보한 설계 데이터와 공학적 경험이 활용되고 있다.

세계는 ITER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ITER와 KSTAR가 채택한 토카막(Tokamak) 방식이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지만, 미국에서는 레이저 핵융합과 FRC(역자기장 배설), Z-핀치(Z-pinch) 등 더 작고 경제적인 발전소를 목표로 한 다양한 방식도 동시에 개발되고 있다. 아직 어떤 방식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AI 생성 이미지

연구실 넘어 발전소로…'누가 먼저 상용화하느냐'의 싸움

핵융합은 여전히 미완성 기술이다. 경제성과 내구성, 삼중수소 연료주기, 핵융합 소재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계가 던지는 질문은 이미 달라졌다. 과거에는 "핵융합이 가능할까"를 물었다면, 이제는 "누가 가장 먼저 경제성을 갖춘 발전소를 만들 것인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국가별 전략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대형 연구시설과 핵심기술에 장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기초 연구를 지원하고 민간 기업이 상용화를 주도하는 방식이다. 유럽과 일본도 공공 연구 기반 위에 민간 참여를 확대하며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역시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아니다. KSTAR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온 플라스마 운전 기술을 확보했고, ITER 참여를 통해 핵융합로 설계와 제작 경험도 축적했다.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산업에서 쌓아온 정밀 제작 역량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앞으로는 국제 협력의 성격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핵융합 연구는 인류 공동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방형 협력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상용화가 가까워질수록 핵심 설계와 운전 데이터, 제조기술은 국가와 기업의 전략자산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카다라쉬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 현장.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는 핵심 설비인 토카막(Tokamak)과 진공용기(Vacuum Vessel) 조립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ITER Organization 제공

핵융합은 아직 상업용 발전소를 만들지 못했고, 상용화 시점을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계는 더 이상 핵융합의 가능성에만 투자하지 않는다. 미래 에너지 질서와 산업 주도권에 투자하고 있다.

핵융합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티븐 코울리 미국 프린스턴 플라스마물리연구소(PPPL) 소장은 "핵융합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니라 상용화를 향해 나아가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윤 부원장은 "석유 시대에는 자원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핵융합 시대에는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도 KSTAR와 ITER에서 축적한 강점을 바탕으로 핵융합 시대를 이끄는 핵심 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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