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미운털도 털이다

2026. 10. 1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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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너그럽다는 점이다. 상대가 일을 하다 실수를 저지르면 일일이 지적하는 대신 내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다.

작업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아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어도, 자기가 한 실수를 내가 한 것으로 착각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내가 의견을 내면 다 듣기도 전에 "아니야" 하는 말로 잘라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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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점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너그럽다는 점이다. 상대가 일을 하다 실수를 저지르면 일일이 지적하는 대신 내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은 사람이 나와 일하고 싶어 한다.

자찬만 하면 꼴사나우니 자폭을 하여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나의 단점은 상대방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사람을 밑도 끝도 없이 싫어한다는 점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실수까지 낱낱이 파헤쳐 가며 내가 그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고히 한다. 그러다 보면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그가 아무리 살갑게 굴어와도 ‘어쩌라고’ 하는 소리만 되뇌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작업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아 일을 두 번 하게 만들어도, 자기가 한 실수를 내가 한 것으로 착각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어떠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식어버렸다. 그 사건을 구구절절 서술하지 않고 ‘어떠한’이라고 얼버무린 이유는, 너무나도 사소한 대목에서 무례함을 느낀 내가 쪼잔하게 비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냉랭해진 나를 보며 그 사람은 불쾌함을 느낄 테지만 작금의 상황이 유쾌하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음을 넓게 써보려 해도 그 사람이 싫다. 그깟 일로 사람을 미워하며 두고두고 이를 가는 나는 더 싫다. 인간관계를 단칼에 정리하는 스스로의 냉정함에 괴로워질 때면 ‘만났다가도 헤어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런데 이 말이 적용되지 않는 동료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간병 동료인 엄마다. 반년째 아빠를 간병하고 있는 엄마와 나는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연하곤란이 생긴 아빠는 점도 증진제를 섞은 되직한 물을 마셔야 하지만 엄마는 매번 “아빠는 쪼끔씩 드시니까 괜찮아” 하며 맹물을 준다. 아빠가 몸을 긁으면 보습제를 바르는 것이 우선이건만 엄마는 항상 “그까짓 거 아무 소용없어” 하며 스테로이드 연고를 꺼내 든다. 내가 의견을 내면 다 듣기도 전에 “아니야” 하는 말로 잘라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인연을 끊어버렸을 테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를 무슨 수로 저버린단 말인가. 엄마를 이해해보려 부단히 노력했다.

엄마는 칠십이 넘었다, 엄마는 간병이 처음이다, 엄마는 칠십 넘은 간병인 중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다 보면 성난 마음이 차차 수그러들었다. 이런 나의 노력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서울로 보톡스를 맞으러 갔다. 몸져누운 남편을 붙잡고 우는 대신 자신을 가꾸는 태도는 높이 살 만했으나 구태여 멀리까지 다녀와 피곤하다며 죽상을 짓는 모습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 버렸다. 그 후, 엄마가 열무김치에 밥을 비벼 먹거나 휴대폰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만 해도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한 엄마는 내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엄마와 나는 병실에서 제각기 할 일을 할 뿐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 어색한 공기를 가르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오, 테이크 유어 메디신.” 고개를 돌려보니 아빠는 엄마가 주는 약을 받아먹고 있었다. 뜬금없는 상황에서 영어를 쓰는 엄마도, 엄마의 영어를 용케 알아들은 아빠도 우스워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웃었다. 웃음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맑은 시냇물로 씻어낸 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졌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엄마의 장점은, 본인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주변 사람을 웃게 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엄마와 내가 드라마 속 모녀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내가 당신을 미워할라 치면 마트에 가서 ‘땅콩버러’를 사오라고 말하고, 내가 당신을 또 미워할라 치면 조금 전에 ‘닥터’가 회진을 다녀가셨다고 말하며 나를 거듭 웃게 했다. 자신의 무수한 단점을 강력한 장점 하나로 무마하는 엄마의 재주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런 엄마를 본받아 나도 나의 장점인 너그러움을 십분 발휘하기로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자비를 베풀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지. 미운털도 털인데 뽑아도 뽑아도 자라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랴.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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