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왜 만해를 만나러 갈까, '님' 한 글자에 담긴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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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것은 색다르면서도 꽤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한글날에 만해를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그가 한글을 지키기 위해 <님의 침묵>을 썼다고 단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해석이다.
<님의 침묵> 출간 100년을 맞은 올해 한글날,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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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향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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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시인' 한용운을 기리며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 한용운 관련 전시물을 관람하는 시민들 |
| ⓒ 남사모 |
한글날에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것은 색다르면서도 꽤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만해는 한글학자도, 한글운동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한글이라는 그릇에 사랑과 이별, 자유와 민족, 진리와 깨달음을 담아낸 대표적인 '우리말 시인'이었다. 더욱이 올해는 그의 대표 시집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한글날에 만해를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그 생각의 출발은 문자 한 통이었다. 7일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인 '남사모' 회장이 한글날을 앞두고 행사 안내를 보내왔다. "한글날 특별히 만해학교에서 만납니다." 10월 9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 제30기 만해학교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한글날 행사를 만해 한용운 기념관에서?'
처음에는 조금 뜻밖이었다. 한글날이면 세종대왕이 먼저 떠오른다. 한글 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주시경과 최현배 같은 학자들도 생각난다. 그런데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이라니. 호기심이 생겨 한글과 만해의 인연을 따라가 보았다.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고 애틋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인연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님의 침묵>이다. 한용운은 한학과 불교 경전에 능통해 한문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사상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한국 문학사의 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어려운 한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우리말이었다. 그는 1925년 백담사에서 시를 쓰고 이듬해인 1926년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88편의 시가 실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너무나 평범한 한 글자가 있었다.
'님'.
짧은 한 글자였지만 만해의 손에 들어가자 그릇이 커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가고, 빼앗긴 조국이 들어가고, 자유와 진리가 들어갔다. 작은 씨앗 하나에서 큰 나무가 자라듯 평범한 우리말 하나가 거대한 사상의 언어가 된 것이다. <님의 침묵> 첫 구절은 100년 전 우리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00년 전 우리말 모습을 그대로 간직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
지금이라면 '님은 갔습니다'라고 쓸 문장이다. 낯선 표기 속에는 1920년대 우리말의 시간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 <님의 침묵>에는 충청지역 방언과 토속적인 표현,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투도 나타난다. 한용운은 책상 위에서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며 실제로 사용하던 말을 시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만해가 우리말의 '뜻'뿐 아니라 '소리'까지 시에 담았다는 점이다. <님의 침묵>의 띄어쓰기와 행갈이, 구두점 사용 등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를 시인이 숨 쉬며 말하는 호흡과 시적 리듬의 측면에서도 살펴본다. 글자가 악보라면 띄어쓰기는 쉼표였고, 행갈이는 숨을 고르는 자리였던 셈이다. 그래서 초판의 표기를 오늘날 맞춤법에 맞게 지나치게 손질하면 원작의 리듬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이 대목에서 만해와 한글의 관계를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한용운을 주시경이나 최현배와 같은 의미의 '한글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글 맞춤법을 연구하거나 한글 보급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한글을 지키기 위해 <님의 침묵>을 썼다고 단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해석이다.
그러나 한글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글자로 무엇을 표현했느냐는 것이다. 세종이 백성에게 글자를 주었다면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은 그 글자에 삶을 불어넣었다. 만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말로 사랑을 말했고 이별을 노래했으며, 자유와 진리를 생각하게 했다. 한글이라는 악기가 있었다면 만해는 그 악기로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한글날에 만해를 기억해야 할 이유 있어
특히 그의 삶을 생각하면 그 언어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한용운은 승려이자 시인이었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런 사람이 쓴 '님', '침묵', '이별', '사랑'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연애시의 언어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래서 <님의 침묵>의 '님'은 연인에서 조국, 자유, 진리, 절대적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해석돼 왔다. 바로 여기에 한글날에 만해를 기억할 이유가 있다.
한글날에는 한글을 만든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한글을 연구하고 지킨 사람도 기려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한글이 튼튼한 나무라면 한용운의 시는 그 나무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올해는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이다. 그리고 한글날인 9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에서는 제30기 만해학교가 열린다. 전보삼 관장이 '만해의 님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만해의 시를 노래로 만나는 특강과 정악 공연 등이 이어진다. <님의 침묵> 초간본을 비롯한 기념관 소장자료도 해설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한글날에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봐도 좋겠다. 남한산성의 가을길을 걷고 만해기념관에 들어가 100년 전 <님의 침묵>을 펼쳐보는 것이다.
한글은 글자를 만든 역사이면서 그 글자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저항하고 노래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님의 침묵> 출간 100년을 맞은 올해 한글날,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연치유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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