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라면 김용범, 유시민, 정용진을 어떻게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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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첫 책 <뉴요커의 문장들>을 출간했다.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를 비롯한 미국 롱폼 저널리즘 기사들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서사 기법을 분석한 책이다.
그렇다면 이런 글쓰기 방식으로 한국의 어떤 사건과 인물을 다뤄볼 수 있을까?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즉 "내가 한국의 <뉴요커> 기자라면, 이 사람을 이렇게 취재해보겠다"라는 고백을 풀어보려 한다.
이제 그 기쁨을 <뉴요커> 같은 한국어 롱폼 기사로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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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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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요커의 문장들> 강진규 지음, 2026년 10월 1일. |
| ⓒ 파이퍼프레스 |
집필을 이어가며 또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뉴요커>라면 한국의 이슈를 어떻게 다뤘을까. 이 기사를 쓴 기자라면, 우리 사회의 저 인물을 어떻게 취재했을까?" 질문은 곧 나 자신의 이야기로 옮겨왔다. "나라면 이 사람을 이렇게 다뤄보고 싶다."
그 바탕에는 국내 언론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로서 스스로를 향한 성찰이기도 하다. 사건과 인물을 끈질기게 따라가는 국내 기사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도덕적·정책적 당위나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판단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알아야 할 맥락(당사자가 지나온 시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상반된 증언, 어떤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든 조건들)을 충분히 보여주는 기사가 아쉬웠다.
그런 기사가 많아진다고 갈등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는 배경을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찬반을 정하기에 앞서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 묻고, 타인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이해의 여지를 마련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글쓰기 방식으로 한국의 어떤 사건과 인물을 다뤄볼 수 있을까?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즉 "내가 한국의 <뉴요커> 기자라면, 이 사람을 이렇게 취재해보겠다"라는 고백을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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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13일 김용범 정책실장이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
| ⓒ 연합뉴스 |
이 사건을 기사로 쓴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그가 물러난 날의 풍경일까, 손실을 본 투자자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정책을 처음 구상했던 순간일까.
어디서 시작하든 첫머리에는 한 사람의 구체적인 장면이 있을 것이다. 주식 매매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대학생일 수도, 회의석상에서 ETF 도입을 역설하는 김 실장일 수도 있다. 손실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는 투자자나 큰 수익을 올린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장면을 택할지는 취재를 통해 결정할 일이다. 다만 그 장면은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이끄는 입구일 뿐, 정책의 옳고 그름을 입증하는 단정적 증거는 아니다. 투자자의 한숨만으로 정책의 실패를 선언할 수 없듯, 웃음만으로 성공을 말할 수 없다.
한 사람의 모습에서 출발한 기사는 차츰 정책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야를 넓힌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두 종목에 레버리지 투자를 몰리게 한 상품은 위험했다는 전문가의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해외 상장 상품만 이용해야 했던 제약을 개선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해외 상장 ETF에 몰리던 자금이 국내로 돌아왔는지, 환율 안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다뤄볼 대목이다.
나라면 이런 주장들을 취재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김 실장을 위한 변론이든 비판이든 근거를 확인하고 반론을 구할 것이다. 정반대의 의견이 가치 있는 이유는 단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정책을 두고 각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차이와 근거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면 독자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자는 결론을 대신 내리지 않는다.
이 사태에서 눈길이 간 대목은 보수정당의 반응이었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 시장 개입의 제한은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 상품 도입이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김 실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고발까지 나섰다.
<뉴요커> 기자라면 보수정당이 내세우는 가치와 이 행동 사이의 모순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정당이 투자자 손실을 이유로 공직자 책임부터 묻는 모습에 아이러니는 없었는지 짚어보고 싶다. 문제 삼은 것이 투자 상품 허용 자체였는지, 도입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었는지 당사자와 전문가에게 물으며 당시의 발언과 결정 과정을 따라가고 싶다. 인물이나 단체가 내세우는 신념과 실제 행동 사이의 모순이 드러날 때 이야기는 한층 깊어진다.
인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유시민 작가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어떨까. 2022년 3월 10일 새벽,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던 시점 KBS 개표방송에서 이재명 후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사랑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오만한 권력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정과 지지가 날 선 비판으로 바뀌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달라진 것은 바라보는 대상일까, 그 자신의 기대와 판단일까. 다만 그를 취재한다면 직접 인터뷰 없이 인물을 보여주는 기사를 써보고 싶다. 판정보다 맥락을 앞세우는 롱폼 저널리즘의 대표적 예시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프로필 기사처럼 말이다.
우선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그를 면밀히 관찰할 것이다. 고르는 단어, 목소리의 톤, 표정과 몸짓의 변화를 기록하겠다. "사랑합니다"라던 순간의 미소와 "오만한 권력자"를 외치던 순간의 얼굴을 나란히 들여다보고, 독자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묘사하고 싶다. 발언을 텍스트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라지기 쉬운 맥락을 기록할 때, 독자는 그 사람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다음은 그를 겪은 이들을 찾아갈 것이다. 함께 일했던 사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뜻을 같이했거나 결별한 사람들에게 그라는 인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물을 것이다.
루비오 프로필 기사 역시 수많은 전현직 외교관과 보좌관을 인터뷰하며 극과 극의 평가를 있는 그대로 펼쳐놓았다. 누군가에게는 국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외교 틀을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장관이었다. 서로 다른 위치의 증언이 충돌할 때 인물의 다면성이 드러나고, 독자는 그 목소리를 따라가며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유 작가의 프로필 역시 일관된 신념과 변절·모순이라는 상반된 시선을 한 기사 안에 다채롭게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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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스크린에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등과 관련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과 회견 TV 생중계 화면이 나오고 있다. |
| ⓒ 연합뉴스 |
유명 배우와의 결혼, 재벌가 후계자, 경영자,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자 한 가정의 가장. 그의 입체적인 서사를 묵직하게 기록한 롱폼 기사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뉴요커>라면 그를 어떻게 다룰까?" 스타필드를 방문했을 때 미국 쇼핑몰과 닮은 공간 배치를 보며 그 구상자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인디애나대학교 시절의 경험이 사업으로 어떻게 옮겨왔는지, 함께 일한 이들은 무엇을 기억하는지 추적해보고 싶다.
세상이 받아들인 평가와 본인이 의도한 구상 사이의 간극을 그는 어떻게 바라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거침없이 소통하던 그가 말을 줄인 지금이 오히려 취재해보고 싶은 적기다. 찬사와 조롱 사이에 감춰진 그 솔직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다. 수많은 변화와 갈등이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만큼 이야기로서의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책을 쓰며 "이 기법으로 한국 사회를 풀어내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하고 홀로 내뱉었던 외침을 독자들 앞에 고백해본다.
지난 15년간 영어로 기사를 써왔지만, 모국어로 첫 책을 내고 독자들과 만난 경험은 특별했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그 울림을 직관적으로 확인하는 기쁨이었다. 이제 그 기쁨을 <뉴요커> 같은 한국어 롱폼 기사로 이어가고자 한다. 이 글에 품은 질문들을 실제 취재와 글로 옮길 수 있다면, 지난 여름 책과 씨름했던 고뇌의 시간도 한층 값지게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47 필자 강진규는 세계 3대 뉴스통신사인 AFP의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며 한국과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의 주요 뉴스를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했고 영자 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언어와 국경을 넘어 좋은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는 방법을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없는 서술의 구조와 논리를 다룬 <뉴요커의 문장들>이 있으며, 번역서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 보고서인 <독보적인 저널리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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