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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건의 수술을 집도하면서 재수술이 거의 없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85세 남성의 환자가 있습니다. "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어할 것입니다." "환자가 수술 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편히 계시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잘 모르겠지만, 수술을 한 뒤에 6개월이나 1~2년 정도 살았다면 그 수술은 환자를 위해 재고해 봤어야 하는 수술입니다.
수천 건의 수술을 집도하면서 재수술이 거의 없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85세 남성의 환자가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반대한 수술이었습니다. 그 나이와 환자의 전신 상태를 고려하면 수술보다는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당신 아버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내 아버지라면 더욱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수술하면 고생하며 1년을 살 수 있고, 수술하지 않으면 반년을 살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단순히 더 오래 사는 것이 항상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생존 기간과 삶의 질은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수술은 80세부터는 신중해질 것을 권유하고, 85세부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신중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어할 것입니다.”
당시 환자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체중이 30kg 후반에 불과할 정도로 쇠약했고, 수술을 원활하게 진행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자식들이 여한이 없도록 수술해 주세요.”
아들들은 아버지가 수술대 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수술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테이블 다이(table die)라고 하는, 수술 중 목숨을 잃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이 들고 쇠약한 환자에게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환자가 수술 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편히 계시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보겠습니까? 아버지 수술도 안 시켰다고 할 것 아닙니까. 교수님께서 안 해주신다면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수술은 하겠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서 할 것이라는 보호자의 말에 할 수 없이 저는 수술을 허락했습니다. 어차피 할 수술이라면 다른 집도의가 고생하느니 내가 하는 게 나을 성싶었습니다. 수술을 하다 보면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한눈에 드러납니다. 이미 장기들은 탄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경우 수술 후에 유착이 잘 일어날 뿐 아니라 상처가 더디 아물고 잘 터져서 누공이 생기게 됩니다.
겨우 봉합은 했지만 터질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나의 우려는 1주일 안에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수술 첫날부터 많은 분비물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이상 징후가 왔습니다. 다시 처리한 다음에도 그 환자는 한 달을 더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수술이 능사가 아니라고 아무리 보호자를 말려도 꿈쩍도 안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보호자가 아들이든, 혹은 아버지든 누구도 환자에게 수술 테이블 위에서 죽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수술 결정은 반드시 환자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내려져야 합니다.
수술을 하면 조금 오래 살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짧게 산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게 더 환자를 위하는 일인지는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몇 달을 더 산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있는 결정은 아닙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고 수술 후에도 힘들어할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수술을 결정할 때 가장 고민해야 하는 것은 수술 후의 삶의 질입니다.
“여한이 없게 수술을 해주십시오.”
이처럼 수술을 결정할 때 판단 기준이 결코 보호자들의 ‘여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보호자들의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수술은 인체의 균형을 인위적으로 다소 깨뜨려버리는 일입니다. 한번 깨어진 균형은 나이가 많거나 병약할수록 제대로 회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무리해서 몸의 균형을 깨어버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몸 상태를 잘 관리하는 게 지혜로운 선택으로 환자에게도 득이 될 수 있습니다.
수술 등으로 인한 고통이 심하면 환자들은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잘 모르겠지만, 수술을 한 뒤에 6개월이나 1~2년 정도 살았다면 그 수술은 환자를 위해 재고해 봤어야 하는 수술입니다.
내 아버지나, 아내이고 남편이라면, 내 가족이라면 생각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절대로 그 상황에서 수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 앞에 신중한 선택은 어떤 경우라도 과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할 때는 득과 실을 잘 따져보아 득과 실이 반반이라면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득이 60퍼센트 실이 40퍼센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득이 80~90%는 된다면 수술을 진행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작은 규모의 수술이라도 모든 수술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수술은 마술이 아닙니다. 컨디션이 좋은 일반인도 수술은 힘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 환자처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수술이 잘 마쳐져서 수술 후 후유증이 없이 잘 마무리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체는 외부로부터 방어막이 잘 구축돼 있습니다. 수술을 하면 싹 낫게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방어막만 침범해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인체는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수술은 늘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정돼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모든 수술은 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한 환자에게는 큰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결정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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