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조개가 되다니, 옛 사람들의 기묘한 상상

노시은 2026. 10. 8. 07:2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차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보다 손부터 따뜻한 잔을 찾는 때입니다.

도사들의 수행까지는 모르겠지만, 차 한 잔을 우리고 식히고 마시는 동안에는 생각도 그 속도를 따라옵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슬이 차가워지는 절기 한로의 서늘함을 건너는 백계관과 생대추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노시은 기자]

▲  제철에 어울리는 차와 다식으로 꾸려본 찻자리.
ⓒ 노시은
열어둔 창문을 닫으러 갑니다. 낮에는 분명 기분 좋았던 바람인데, 해가 기울자 발목부터 서늘해집니다. 창밖은 아직 환하고 나뭇잎도 여전히 푸른데, 집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벌써 저녁의 온도를 알고 있네요. 맨발에 양말을 꿰고, 물을 올립니다. 차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보다 손부터 따뜻한 잔을 찾는 때입니다.

백로에 하얗게 맺혔던 이슬이 한로(10월 8일)에는 차가워집니다. 차가울 한(寒), 이슬 로(露). 눈으로 바라보던 물방울에 어느새 살갗이 알아챌 온도가 생겼습니다. 이슬이 차가워졌다는 말은 밤새 풀잎에 내려앉은 물기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지요. 걷어찼던 이불을 다시 끌어당기고, 찬물 앞에서 잠깐 망설이고, 옷장 안쪽의 긴소매를 꺼내는 손끝에도 한로가 와 있습니다.

이렇게 공기가 달라지는 계절에, 옛 사람들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새가 바다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는 겁니다.

참새의 깃털을 닮은 조개 껍데기

한로의 삼후(三候), 곧 절기를 셋으로 나누어 살핀 옛 기록 가운데 두 번째가 '작입대수위합(雀入大水爲蛤)'입니다.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는 뜻이지요. 첫 번째에는 기러기가 손님으로 찾아오고, 세 번째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했으니, 그 사이에서 참새 혼자 엄청난 변신을 해낸 셈입니다.

함께 읽는 절기 차 책은 이 상상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가을이 깊어지자 참새가 눈에 잘 띄지 않고, 바닷가에서는 조개가 많이 보였습니다. 마침 조개껍데기의 무늬와 색이 참새의 깃털을 닮았으니, 저 새가 물속으로 들어가 조개가 되었으리라 여겼다는 것이죠.

물론 참새가 정말 사라지거나 조개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갈색 깃털의 얼룩과 조개껍데기의 줄무늬를 나란히 떠올려보면, 그 엉뚱한 짐작에 잠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하늘을 부산하게 날던 작은 것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 단단한 껍데기를 닫는다니요. 가을의 움직임을 이보다 조용하고 기묘하게 그릴 수도 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양기가 물러나고 음기가 짙어지는 계절의 표현으로 읽었습니다. 날아다니던 것이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에서 가을이 깊어지는 방향을 본 것이지요. 창문을 닫고 소매 안으로 손을 넣는 저도 그 상상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깥으로 내놓았던 몸을 조금씩 거두어들이고 있으니까요.

한로 무렵 우리 들판에서는 가을걷이와 타작이 한창입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거두고, 말리고, 갈무리해야 하지요. 마당에 널린 곡식에는 고마운 볕과 바람이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몸은 메마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입술이 거칠어지고, 세수한 얼굴이 당기고, 자꾸 물 한 모금을 찾게 되는 식입니다.

전통 의학에서는 가을의 건조함을 '추조(秋燥)'라 불렀습니다. 가을을 폐와 연결하고, 음을 기르며 메마른 것을 촉촉하게 한다는 '자음윤조(滋陰潤燥)'를 양생의 방향으로 삼았지요. 책에서 한로의 음식으로 달고 담백하며 촉촉한 것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물의 온도를 새삼 살피게 되는 계절입니다. 따뜻하게 우린 차를 한 김 식혀 입술에 대고, 서둘러 삼키지 않고 천천히 넘깁니다. 향을 맡으려고 잔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면 희미한 김이 코끝을 스칩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따뜻함이 이렇게 잠깐 모습을 드러내네요.

가을의 몸을 살피던 마음은 우리 옛 노래에도 남아 있습니다. 고려가요 <동동>의 구월 노래에는 중양절에 약으로 먹는 국화가 등장하지요. 임을 그리워하는 노래 한편에 계절의 꽃을 먹던 풍습이 담겨 있습니다. 한로와 음력 구월 구일 중양절은 같은 날은 아니지만, 국화가 피는 가을의 문화를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중국 시인 원진은 국화를 유독 사랑하는 이유를, 이 꽃이 지고 나면 더는 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옛 노래에서는 몸을 위해 먹던 꽃을, 먼 곳의 시인은 마지막까지 아껴 바라보았네요. 서늘한 바람 속에서 꽃 한 송이를 보는 마음에도, 찻잔을 드는 손에도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온기가 있습니다.

흰 수탉의 볏을 닮은 백계관
▲  암차 중에 명차로 알려진 백차는 독특하게 찻잎이 노란 빛을 띄고 있다.
ⓒ 노시은
한로의 차로 꺼낸 것은 백계관(白雞冠)입니다. 집에 한 포 남아 있던 중국 푸젠성 무이산의 우롱차이지요. 이름을 풀면 흰 닭의 볏. 참새가 조개가 된다는 이야기를 읽다가 찻잔에 흰 수탉을 들이게 되었으니, 이번 차 시간에는 유난히 새들이 바쁩니다.

백계관은 무이암차의 사대명총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라는 싹과 잎이 연한 황록색을 띠고, 그 모양이 흰 수탉의 볏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백'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지만 백차는 아닙니다. 짙푸른 차밭 사이에서 밝은 잎을 내미는 품종의 생김새가 이름에 담긴 것이죠.

책은 백계관을 '도가의 신선 차'라고 소개합니다. 송나라 도사 백옥섬이 길렀다는 전승과, 무이산 지지암의 도사들이 수행하며 마셨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바위산과 도관, 그 곁의 연노란 찻잎을 떠올리면 작은 차 봉투 너머로 먼 풍경이 열립니다.
▲  백계관을 한 포 탈탈 개완 안으로 털어 넣었다.
ⓒ 노시은
개완에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젖은 찻잎의 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책은 그 향을 풀과 약재, 때로는 버섯이나 신선한 옥수수에 비유합니다. 그 설명을 곁에 두고 코끝에 닿는 향을 천천히 살핍니다. 익숙한 냄새 같다가도 이름을 붙이려 하면 조금 달아나네요.

밝은 노란빛의 찻물을 입에 머금습니다. 삼킨 뒤에도 잠시 잔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손바닥에 남아 있는 따뜻함을 조금 더 쥐고 싶어서요. 도사들의 수행까지는 모르겠지만, 차 한 잔을 우리고 식히고 마시는 동안에는 생각도 그 속도를 따라옵니다. 물이 식을 만큼 기다리는 일이 가을 저녁에는 그다지 아깝지 않습니다.

천천히 누리는 한입

곁들인 다식은 생대추입니다. 붉은 갈색으로 익은 것 몇 알을 씻어 작은 접시에 담았습니다. 노란 찻물 옆에 놓으니 별다른 장식 없이도 가을색이 갖추어집니다.
▲  백계관에 어울리는 다식은 단물이 가득 오른 대추. 아삭거리는 식감은 딱 지금만 느낄 수 있다.
ⓒ 노시은
한 알 베어 물면 팽팽한 껍질이 터지고 단단한 속살이 아삭하게 부서집니다. 대추를 씹고 난 뒤 차를 마십니다. 입안에 남은 과일의 단맛 위로 따뜻한 찻물이 지나갑니다. 한입은 서늘하고 한 모금은 따뜻합니다. 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번갈아 누리다 보니 작은 접시가 쉬 비워지지 않습니다.
▲  달콤하고 아삭이는 대추, 지금 많이 먹어둬야 한다.
ⓒ 노시은
생대추에는 수분과 비타민 C가 들어 있습니다. 품종과 익은 정도에 따라 함량은 다르지만, 제철 열매를 그대로 먹는 즐거움에 영양도 함께하는 셈이지요. 오늘의 대추는 오래 달여낸 약차도, 꿀에 조린 정과도 아닙니다. 수확한 열매의 단단함과 물기를 그대로 맛보는 과일입니다.

말린 대추는 두고두고 만날 수 있지만 이 아삭함은 제때 누리고 싶습니다. 가을걷이에는 겨울을 위해 남겨두는 일이 중요했겠지만, 거둔 것을 지금 맛보는 기쁨도 있었을 테니까요. 볕에 말리기 전에 몇 알, 주전자에 넣기 전에 한입. 이번 찻상에는 그 짧은 틈을 옮겨놓았습니다.

참새가 조개가 된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달라진 바람 앞에서 제 몸을 움츠렸겠지요. 같은 계절을 건너며 우리는 창문을 닫고, 물을 끓이고, 잘 익은 열매를 먹습니다. 무이산에서 온 차 한 잔에 우리 가을의 대추 몇 알이면 저녁을 맞을 준비는 이만하면 되겠습니다.

차가 조금 남아 있습니다. 대추를 한 알 더 고릅니다. 창밖의 빛이 더 옅어지기 전에, 따뜻한 한 모금과 아삭한 한입을 천천히 누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