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의 가장자리 읽기] 전문화의 끝, AI

무엇인가의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아버지는 가끔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최첨단의 기계는 라디오였는데, 그것의 원리가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분해해 내부를 살펴보고 다시 조립했다. 그렇게 기계의 원리를 파악한 기쁨과 재미는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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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편해질수록 지성 위축돼
모든 걸 아는 괴테적 교양 옛말
전문화의 최신 산물 AI 앞에서
인간은 겁먹은 원시인 아닌가
」

이런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주변의 친숙한 기기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그 기기를 자신의 지식을 통해 지배하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예컨대 우리는 스마트폰이 고장 났을 때 그것을 해체해서 직접 수리하지 못한다. 즐겨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앱의 원리 또한 알지 못한다. 주변의 기기들은 갈수록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에 비례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을 지배하는 원리에 대해 더욱 무지해져만 간다. 생활의 편리함이 우리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에 반비례해서 우리의 지성은 점점 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이치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모든 분야 학자였던 정약용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8세기의 괴테를 특징짓는 말은 아마도 ‘전인(全人)’일 것이다. 그는 정치·예술·과학 등 자기 시대의 모든 분야에 대해 의미 있는 견해를 피력할 수 있었다. 괴테와 불과 10여 살 차이가 나는 ‘모든 분야의 학자’ 정약용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자신의 전인적 관심을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이렇게 표명한 바 있다. “문학적 표현 방식이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고 본래 내 천성에 적합하기는 했지만, 모든 종류의 사물에 대한 사색 또한 내게는 낯설지 않았다.”(전영애·최민숙 역)
그러나 괴테가 추구했던 전인적 지식은 20세기에 가속화한 전문화와 더불어 그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괴테적 의미의 전인교육은 더 이상 없어.”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13년을 배경으로 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신지영 역)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무질은 더 이상 한 인간이 한 세계 전체를 마주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재미있게도 저 짧은 구절이 구체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질 문학의 옹호자이자 그의 소설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밀란 쿤데라의 글에서 발견된다. 쿤데라의 『불멸』은 괴테를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여기서 우리는 무질의 저 문장을 자세히 부연하는 것과 같은 글을 찾을 수 있다.
“괴테는 (…) 교양인이라면 자기 주변의 집기들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짧고 독특한 역사의 한순간을 살았었다. 괴테는 무엇으로 어떻게 자신의 저택이 건축되었으며 어째서 석유등이 빛을 내는지 알고 있었고, 자기가 사용하는 망원경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손수 감히 외과수술을 시술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를 간호한 의사와의 친교를 통해, 몇몇 시술 과정에 참관할 수 있을 만큼 그것에도 정통할 수가 있었다. 기계류의 세계가 그에게는 이해할 수 있고 불투명하지 않은 세계였던 것이다.”(김병욱 역)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에어컨이나 세탁기 같은 생활에 불가결한 기계가 고장 났을 때도 직접 손대지 못하고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괴테가 그의 회중시계의 원리를 알았다면, 우리는 손목에 매달려 반짝이는 스마트워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을 ‘전문화’의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화의 역사는 느리지만 깊다. 하이데거는 ‘휴머니즘 서간’에서, 근원적인 고대 그리스의 사유가 종식되면서 여러 전문적인 분야들이 출현했다고 지적한다. “근원적 사유가 종식되자마자 논리학·윤리학·자연학 따위의 이름들조차도 비로소 대두하기 시작한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위대한 시대에 그러한 명칭 없이 사유의 힘을 발휘했다. 그들은 사유를 한 번도 철학이라 명명한 바 없다.”(이선일 역) 근원적인 사유는 논리학·윤리학·자연학 등의 분과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철학’이라는 명칭조차 필요로 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그 사유는 한 분야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자연 전체와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근원적 사유 이래 점진적으로 전개된 학문의 분화와 전문화는 현대에 와서 가장 빠르고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건 내 분야가 아니라서 몰라요.” 이제 학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아주 먼 분야가 아니라, 자기 전공과 미세하게 차이 나는 것에 대해서조차 말이다.
범접 허용하지 않는 AI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문화의 역사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일면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최종적인 결과물을 심각하게 숙고해야 하는 시점에 인류는 내몰린 것 같다. 그 결과물이란 바로 AI이다. 괴테는 자기 주변을 이루는 모든 기기나 도구들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삶에서 뗄 수 없게 된 AI의 정체에 대해서 모른다. AI를 사용하는 예술가는 어떤 원리로 그로부터 미술품이나 영화가 탄생하는지 모르고, 개발자는 어떻게 AI로부터 소프트웨어가 탄생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AI를 만든 자조차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는지 다는 모른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기계를 기분 좋게 바라보는 창조자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이 어떤 위험한 인간으로 자라날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자식과 한집살이를 하는 부모와 같다.
이제 AI 자신이 인간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하여 자신의 비밀을 인간과 공유하지 않는 최고의 ‘전문가’가 된 것이다. 누구도 AI만큼 ‘전문적’이며 동시에 ‘전인적’일 수 없다. AI가 이 두 가지를 모두 독점하며, 역설적이게도 AI가 주도하는 시대 인류는 자기 주변의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원시 시대의 인류와도 같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전문화의 벽, 즉 무지의 벽을 넘어서는 전인성의 불씨가 다 죽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운 눈길을 던진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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