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제처 “허가했다고 합법은 아냐”…임신중지약 ‘입법 공백’ 논란

채혜선 2026. 10. 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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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101인이 함께하는 퍼포먼스'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내년 1분기 인공임신중지(낙태) 약물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하는 유권해석을 내렸던 법제처가 임신중지 행위의 적법성까지 판단한 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낙태 여부를 판가름할 법적 기준이 7년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 도입부터 무리하게 서두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8월 법제처는 ‘모자보건법 개정 전 임신중지약 수입품목허가가 가능한지’ 등을 묻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질의에 “(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또한 안전성·유효성 등 허가에 필요한 요건을 갖췄다면 식약처의 허가는 ‘기속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기속행위는 법에서 정한 조건을 갖추면 행정기관이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법제처 입장이 나오면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멈춰 있던 임신중지약 도입에 속도가 붙었다.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처 등은 지난달 ‘2년간 의사의 직접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내년 1분기까지 임신중지약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제처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선 ‘온도차’가 나타났다.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받은 임신중지약 관련 답변서에 따르면, 법제처는 “약물에 의한 개별 임신중지 행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진 않았다”라고 밝혔다. 앞서 내놓은 해석이 실제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의 법적 정당성을 인정한 건 아니라는 취지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9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주진우 의원에 따르면 법제처의 기존 해석은 법 적용 자체보단 임신중지약의 수입품목허가 여부에만 집중했다. 법제처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몇 주까지, 어떤 사유로 허용할지 등에 대해선 “소관 부처의 정책적 판단 사항”이라고 밝혔다. ‘기속행위’ 판단에도 “‘제출된 자료가 안전성·유효성 등 허가에 필요한 요건을 갖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자신들의 해석엔 구속력이 없는 만큼 임신중지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권해석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적 정비를 대신하거나 임신중지의 허용 범위를 새로 설정한 건 아니다”라면서 “인공임신중절 체계를 입법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실제로 2021년 형법상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사라졌지만, 국회 등의 후속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입법 공백은 여전하다. 품목 허가가 이뤄지더라도 임신중지약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논란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 안팎에선 약물 도입에 앞서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의료진이 임신중지약을 실제로 처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산부인과 단체 3곳은 지난달 “임신중지약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국회의 조속한 논의를 촉구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같은 달 “국회가 제도 공백을 메우는 입법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선 허가, 후 입법’으로 정책 추진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입 과정에 관여한 한 변호사는 “법제처 해석이 약물 낙태를 합법화하는 게 아니고, 현행법상 약물 낙태를 허용하는 규정은 없다. 순서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식약처가 품목 허가를 내주더라도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한계를 정한 것일 뿐 임신중지 약물의 수입품목허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법령해석을 내렸고 같은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가 요건을 갖추고 품목허가를 받은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절 행위는 현행법상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주진우 의원은 “이재명 정부가 입법도 없이 임신중지약 도입부터 밀어붙이고 있다”며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졸속으로 강행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사진 주진우 의원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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