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개가 시신 뜯어먹는다…러 점령지 덮친 ‘참혹한 재앙’

전민구 2026. 10. 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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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청 앞에서 "점령된 올레시키에서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인들이여! 러시아가 인도주의 통로를 마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을이 되면 우리는 분명 죽을 것이다. 나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점점 약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올레시키의 전 시장 테티아나 하사넨코가 공개한 올레시키 주민 메시지는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인기(드론) 촬영 영상과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아파트와 주택은 파괴됐고 포탄, 지뢰 폭발로 불탄 차량들이 도로변에 버려져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굶주린 개들이 거리에서 시신의 잔해를 뜯어먹는 모습도 목격됐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러시아에 점령된 우크라이나 도시 올레시키가 ‘킬 존’에 갇혀 굶주리기 시작했다”며 “인도주의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레시키는 우크라이나전쟁 남부 전선 한가운데 자리한 도시로 전쟁 첫날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에 점령됐다. 이후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헤르손과 마주한 최전선 도시가 됐다. 2022년 11월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을 탈환하자 러시아군은 올레시키로 이동해 강변에 지뢰를 매설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곳곳에 매설된 지뢰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론 공격으로 주민들의 탈출은 물론 외부의 구호물자 반입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2023년 인근 댐 폭발로 대홍수까지 겪은 올레시키는 올해 들어 드론 공격이 급증하고 식량 공급마저 끊기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한때 2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던 번성한 관광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현재 올레시키에는 어린이 약 40명을 포함해 약 2000명의 민간인이 남아 있지만, 식량이 바닥난 것은 물론 의료·전기·가스·난방 등 기본적인 생활 기반도 붕괴된 상태다. 하사넨코 전 시장에 따르면 마지막 육로 식량 공급은 지난 5월 26일이었다. 식량 운반 차량의 운전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보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어떤 종류의 보급품도 없다. 완전한 봉쇄 상태다. 마치 공포 영화 같다”고 호소하고 있다. 올해 초 가까스로 도시를 탈출한 볼로디미르 코스티안은 NYT에 “아포칼립스(종말)다”며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으로, 올레시키로 추정되는 장소 상공을 비행하는 드론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주민들의 탈출을 막고 식량을 압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호물자를 투하하려는 우크라이나 드론을 공격하고 어렵게 식량을 수거한 주민들을 위협하며 이들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NYT에 “인도적 지원이 공격받아선 안 된다”며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민간인을 대피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주민들의 도시 이탈을 막고 드론을 이용해 식량과 식수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NYT는 “올레시키의 이런 운명은 우크라이나전쟁이 얼마나 풀기 어려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짚었다.

지난달 28일 러시아의 드론 공격에 맞아 화염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아카데미 건물에서 경찰이 이호르 말체프스키 부원장을 구출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양측 간 긴장은 고조되는 양상이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겨냥한 공세에 집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키이우 중심부까지 공격을 받으면서 국가보안국(SBU), 국립과학아카데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관저 등 정부청사와 외교시설도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는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 흑해 주요 거점에 대한 공세도 강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도시·항구를 향한 러시아의 끈질긴 공세로 우크라이나의 흑해 곡물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가 경제의 생명줄이 끊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개전 이후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의 공세가 유럽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루마니아 흑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상업용 선박에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옥수수를 운송하던 민간 선박을 중립 수역에서 러시아 드론 2대가 끔찍하게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위치한 한 건물이 러시아의 드론 공격을 받아 파괴된 모습. AFP=연합뉴스


흑해까지 사실상 ‘전장’이 되며 우크라이나 경제에 미칠 타격도 커질 전망이다. 타라스 비소츠키 우크라이나 농업장관은 항구 폐쇄가 계속될 경우 올해 6월부터 2027년 6월까지 최소 80억 달러(약 10조7500억원)의 수입을 잃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액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우크라이나도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자체 개발한 지상발사형 탄도미사일 ‘펠리컨 미사일 FP-7’을 실전 배치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주요 산업시설 등을 겨냥하고 있다.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는 무인 로봇과 드론을 대거 투입한 작전을 벌여 러시아에 빼앗겼던 영토 일부를 탈환하기도 했다. 안드리 비렐츠키 우크라이나 준장은 지난달 28일 “작전을 통해 총 176㎢의 영토를 되찾았다”며 “최근 전투에서만 러시아군 약 2000명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말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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