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한 마디에 대유행, 조선 선비들의 '인스타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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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투명한 물속에서 은빛 솜털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감상하는 것, 이 또한 차를 즐기는 훌륭한 완상(玩賞)이 되니까요.
내 손에 가장 익숙한 도구들과, 굳은 감각을 상큼하게 깨워주는 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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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노시은 기자]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기록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내년 다이어리를 무엇으로 구비할지 기분 좋은 고민의 바람이 살랑입니다. 넘길 달력이 아직 몇 장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선은 벌써 새해로 넘어가는 셈이죠.
저 역시 발빠른 기록광들이 뭘 선택했는지 염탐하기도 하고 화려한 신상 다이어리의 유혹에 슬그머니 시선을 빼앗기며 한 달여를 보낸 끝에, 마침내 긴 고민의 마침표를 찍기로 했습니다. 새것을 들이지 말고, 이미 곁에 있는 것을 아끼며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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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에 주력으로 쓸 다이어리를 뭘로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 그나저나 야금야금 사모은 노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
| ⓒ 노시은 |
표지가 귀여운 노트를 택해 기분 전환을 해볼까. 아니면 만년필 잉크를 든든하게 버텨주는 기능이 훌륭한 종이를 고를까. 아니면 용도에 맞게 여러 권의 얇은 노트를 분리해서 사용해 볼까. 고려해야 할 것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조선시대 데스크테리어, 책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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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록(李亨祿)의 <책가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형록은 57세가 되던 1864년에 이응록(李膺祿)으로 개명했다가 64세인 1871년 이택균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한다. |
| ⓒ 공공누리 |
"비록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던 국왕의 말은, 곧 지식인들 사이에서 거대한 유행의 물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중에는 단순히 책만 그리는 것을 넘어, 양반층 사이에서 청나라로부터 들여온 진귀한 벼루, 도자기, 향로, 심지어 서양식 자명종 시계까지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문방청완(文房淸玩 서재의 맑고 아취 있는 기물을 감상하고 즐긴다)'이 대유행하며 병풍 속 칸칸마다 온갖 수집품들이 가득 채워진 것입니다. 서양의 선투시도법과 명암법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사물을 입체적으로 배치한 이 그림들은, 조선 지식인들이 자신의 고상한 안목과 취향을 과시하는 고도의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이자 컬렉션 전시장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저의 물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비록 연경(베이징)에서 물 건너온 비싼 골동품은 아니지만, 표지가 예뻐서 사놓고 차마 쓰지 못했던 수많은 노트와 손에 익은 만년필은 저만의 애틋한 '문방청완'이었습니다.
하지만 옛 선비들이 진귀한 기물을 화폭에 박제해 두고 눈으로 감상하는 데 그쳤다면, 오늘날의 저는 기꺼이 실사용의 기쁨을 누려보기로 합니다. 아껴두었던 노트의 첫 장을 쫙 펼치는 순간, 제 책상 위는 박제된 정물화가 아니라 사유가 흐르는 살아있는 책가도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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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남에서 나오는 백호은침은 연한 금빛이 도는 털이 그야말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
| ⓒ 노시은 |
보통 백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복건성(푸젠성) 복정(푸딩) 지역의 차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복건성의 백차가 맑고 슴슴하며 단아한 난초 향을 품고 있다면, 운남대엽종(雲南大葉種)으로 만든 운남의 백차는 그 결이 사뭇 다릅니다.
백호은침은 찻잎의 여린 싹눈만을 채엽하여 덖거나 비비는 과정 없이 약한 햇볕이나 그늘에서 자연스럽게 시들려 말리는 위조(萎凋) 과정만을 거칩니다. 인위적인 열을 가하지 않아 찻잎 겉면의 은빛 솜털(백호)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죠.
보이차의 고향이기도 한 운남성의 풍부한 자연, 그 비옥한 흙의 기운을 듬뿍 머금은 대엽종 싹눈으로 만든 운남백호은침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외관과 달리 입안에서 터지는 향미가 무척이나 상큼하고 싱그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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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 솜털이 부유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백호은침을 마실 때 즐거움 중 하나이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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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동포동 살이 오른 제철 밤을 쪄내면 포실포실 은은한 단맛의 속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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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다지 근사하지 않고 무질서해 보이는 나의 책장. 역시 그림 속 이상적 책가도와 현실의 책가도는 꽤 다르다. |
| ⓒ 노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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