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어 AI 놀릴 판…빅테크, 177조 ‘자가발전’ 판 벌렸다 [GMC]

이수민 2026. 10. 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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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원어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사놓고도 전기가 없어 돌리지 못한다면 어떨까. 수퍼카를 사고도 기름이 없어 차고에 세워둔 격이다. 최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빅테크들이 아예 데이터센터 부지 안에 발전설비를 짓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현장 자가발전 시장이 2026~2032년 1300억 달러(약 177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블룸에너지의 연료전지 에너지 서버가 설치된 모습. 이 설비는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망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블룸에너지

전력 부족은 이미 AI 데이터센터의 가동 일정까지 흔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라클은 지난달 24일 뉴멕시코주에 짓는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주피터’의 전력 확보가 늦어질 수 있다며 투자사 블루아울에 ‘불가항력’을 통보했다. 불가항력은 통제할 수 없는 사정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 책임을 면하는 조항이다. 주피터는 천연가스 배관 건설 지연과 수질·대기 허가를 둘러싼 법적 다툼 등으로 차질을 빚어왔다. 블룸버그는 오라클이 임대 계약을 깨려는 게 아니라, 예정된 2028년 가동이 늦어질 경우 임대료 지급 시점을 미루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전력 부족이 AI 투자의 수익 회수 시점까지 늦출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오라클 주가는 5거래일 연속 내려 8.1% 하락했다. 다만 업계에선 주피터가 아직 매출에 기여하는 시설이 아닌 만큼 단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고 봤다. 오라클 대변인 역시 “계획된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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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놀리느니, 전기료 더 낸다


대안으로 떠오른 건 데이터센터 부지에서 필요한 전기를 직접 만드는 ‘현장 자가발전(BTM)’이다. 외부 전력망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전기를 생산해 쓰는 구조다. BI는 미국에서 2032년까지 50기가와트(GW)의 현장 자가발전 설비가 새로 들어설 것으로 봤다. 대형 원전 50기의 발전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BTM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속도다. BI에 따르면 새 복합발전소 건설은 약 5년, 원전은 7~10년이 걸린다. 반면 현장 가스엔진·소형 터빈은 3년 안에,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는 1년 안에도 설치할 수 있다. AI 반도체를 전기 없이 놀리느니 비싼 전기료를 감수하고서라도 서버를 빨리 돌리겠다는 것이다.

투자금이 향하는 곳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발전장비 제조사다. BI는 엔진·터빈 등 발전장비 제조사 몫이 52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2026~2032년). 세계 최대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엔진과 가스터빈 등을 앞세워 2030년 발전 부문 매출을 2024년의 세 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독일 지멘스에너지는 터빈 판매 이후 15~20년에 걸친 유지보수 매출까지 기대할 수 있다.

발전소를 대신 짓고 운영해 전기를 파는 업체들도 수혜를 노린다. 미국 윌리엄스는 가스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연료 공급에서 발전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솔라리스에너지는 빅테크 세 곳과 2GW가 넘는 장기계약을 확보했다. 리버티에너지와 프로페트로는 유전 현장에서 전기를 공급하던 기술을 데이터센터에 적용하고 있다.

연료전지도 대안이다. 설치 기간이 짧고 질소산화물 배출과 물 사용이 적어 인허가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블룸에너지는 오라클과 최대 2.8GW 공급을 추진하며 이 가운데 1.2GW는 계약을 확보했다. 퓨얼셀에너지도 데이터센터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생산 확대 계획에 비해 수주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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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과 배출은 걸림돌


다만 BTM 관련주라고 해서 모두 장밋빛 전망인 것은 아니다. 일반 전원 대비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건설·운영비 등을 발전량으로 나눈 발전단가(LCOE)는 현장 가스발전·연료 전지의 경우 메가와트시(MWh)당 100달러가 넘는다. BI가 비교한 기존 전력망 발전원의 60~80달러보다 높다. 여기에 가스발전 확대에 따른 탄소배출과 지역 주민 반발도 사업의 부담이다.

같은 ‘AI 전력 수혜주’로 묶이지만 주가는 이미 크게 엇갈리고 있다. BI가 집계한 자가발전 관련주는 3년간 104.5% 올라 S&P500 상승률 71%를 웃돌았다. 하지만 블룸에너지가 1500% 넘게 오르는 동안 퓨얼셀에너지는 54% 하락했다(지난 8월 기준). 리버티에너지는 설비투자를 50% 늘리겠다고 발표한 뒤 주가가 20% 넘게 빠졌다. 대규모 투자에도 장기계약을 충분히 확보해 현금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

‘AI 전력 수혜주’라는 이름보다 실제 계약과 수익성을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장비업체는 수주가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와 유지보수 수익, 발전 운영사는 장기계약과 건설자금 확보 여부, 연료전지 업체는 실제 납품과 이익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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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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