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어떻게 타요?” 미국인 관광객, 한국서 놀라는 이유
직장인 손모(51)씨는 출근길 지하철역에서야 교통카드가 있는 지갑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아챘다. 예전 같으면 집으로 발길을 돌렸겠지만, 그는 대신 스마트폰의 모바일 교통카드 앱을 이용해 개찰구를 지났다.
이후 회사에서는 간편결제 앱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로비 게이트는 모바일 사원증을 태그해 통과했다. 점심 식사비 결제는 물론, 읽고 싶던 책을 주문하는 일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끝났다. 귀가할 때까지 실물 플라스틱 카드나 현금을 꺼낼 일은 없었다. 손씨는 “예전에는 지갑을 두고 나오면 하루 종일 불안해 일이 손에 안 잡혔는데, 이제는 모바일 페이와 디지털 지갑 덕분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바일기기 등 실물카드 없이 카드 결제한 규모와 비중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joongang/20261005060213729myuf.jpg)
이른바 ‘지갑 없는 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4일 한국은행의 ‘국내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결제 금액 가운데 실물 카드를 제시하지 않고 모바일 기기 등을 이용한 결제 비중은 55.7%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21년 상반기(47.0%)보다 8.7%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하루 평균 결제 금액 역시 같은 기간 1조1280억원에서 1조7890억원으로 5년 새 6600억원 넘게 급증했다.
단순히 결제뿐만 아니다. 스마트폰에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탑재로 실물 플라스틱 카드 소지 필요성이 사라졌다. 병의원이나 관공서에서 모바일 신분증을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주요국 모두에서 실물 신용카드나 현금 없이 모바일 기기만으로 결제한 비중과 규모가 계속 늘고 있다.

중국 상하이의 주부 위메이(38)씨는 아침 식사 구매는 물론 전통시장에서의 채소가게 결제까지 결제앱 위챗페이 QR 코드로 해결한다. 아파트 관리비도 알리페이 생활 서비스를 이용해 납부한다. 시부모님 명절 용돈은 위챗 홍바오(전자 세뱃돈)로 보낸다. 위메이씨는 “지난 생일날 남편이 선물해 준 빨간색 지갑은 미개봉 상태로 그대로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세계 주요국 중 모바일 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나라는 중국이다. 결제 전문기업 월드페이가 발간하는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모바일 지갑 결제 비중은 87%로 2020년(40.2%) 대비 2배 가까이로 늘었다. QR 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은행에서 결제 금액이 빠져나가는 식의 거래가 90%에 육박한다.
미국 역시 모바일 결제 비중이 급증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발간하는 보고서(Diary of Consumer Payment Choice)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소비자의 모바일 결제 비중은 27%로 한 해 전(23%)보다 4%포인트 늘었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는 올해 이 비중이 3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자연스레 현금 사용 비중은 감소 추세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월평균 지출액 대비 현금 지출 비중은 17.4%로 2021년(21.6%)보다 4.2%포인트 하락했다. 현금도 매달 50만원 미만을 지출한 비중이 같은 기간 59.6%에서 80.1%까지 늘었다. 이제는 경조사 부조금이나 서비스 팁 등도 모바일 이체로 지급하는 일이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말 전국 은행의 ATM 수도 2만4711대로 지난 2022년 대비 15.7% 감소했다.
지갑 없는 사회가 확산하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된 가상자산) 사용이 일상화하면 신용카드나 현금 사용 빈도는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결제 환경의 변화가 디지털 플랫폼이나 기기 사용에 취약한 고령층과 어린이·외국인 등 금융 취약 계층의 불편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을 찾은 미국인 관광객 제니(35)는 환전해 온 원화 현찰 때문에 입국 직후부터 애를 먹었다. 공항 카페 키오스크부터 ‘현금 없는 시내버스’까지 현금을 받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제니는 “친구들에게 한국 여행 전 모바일 결제 방식을 미리 익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결제 기기 고장이나 배터리 방전, 통신 장애, 해킹 사고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결제 마비 위험도 우려된다. 정대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금 결제는 디지털 결제에 비해 화폐 발행과 유통·관리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라며 “결제의 디지털화로 아낀 비용을 ‘키오스크 도우미’와 같은 취약층을 위한 결제 안내 서비스를 늘리는 데 쓸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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