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건설경기 침체 속 주택 정비사업 시장 ‘신탁방식’ 뜬다

2026. 10. 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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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분당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2차 선도지구가 발표되고, 노후신도시 정비사업 시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 주요 단지나 목동 등 서울 내 알짜 정비사업 구역 16곳 이상은 물론, 1기 신도시 선도지구들까지 신탁사와 손을 잡으며 시장 선호도가 달라지고 있다.

신탁 수수료 조정이나 계약 해지 요건 등 모호했던 지침들이 명확해지고, 조합 방식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업을 완수한 사례가 꾸준히 쌓인다면 소유자들의 불신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신탁 방식의 제도적 강점들이 고금리 장기화와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실전에서 힘을 발휘한다면, 머잖아 신탁 방식이 정비사업 시장의 대세이자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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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우의 부동산 읽기]
전통 조합방식 자금 조달 능력 부족
가격 협상력·사업 주도권서 ‘열세’
선도지구 추진 단지들 ‘신탁’ 눈돌려
신탁사 전문성 사업 지연 사전 차단
사업비 조달 부담·공사비 절감 줄여
관련 법 개정 ‘신탁’ 대중화 가능성

최근 분당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2차 선도지구가 발표되고, 노후신도시 정비사업 시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다수의 선도지구 추진 단지들이 전통적 조합 방식 대신 신탁 방식을 선택하거나 검토한다는 것이다. 조합 방식의 정비사업은 정비 계획 수립이나 건축 설계 등 초기 인허가 단계부터 막대한 자금이 요구된다. 하지만 조합 대부분은 자체 자금 조달 능력이 부족해 사업 초기부터 시공사로부터 사업 자금을 대여받거나 대출 보증에 의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로 인해 사실상 시공사가 대주단 역할을 겸하면서 조합은 자연스레 가격 협상력과 사업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에 노출된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나 공사 중단 등 사업 장기화 피해 역시 이런 취약한 자금력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 방식 정비사업의 구조적 한계는 시공 계약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다수의 시공 계약은 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준공까지 공사를 진행하는 ‘분양불’ 조건으로 이뤄진다. 이 방식은 미분양 리스크나 조합의 낮은 신용도 같은 정성적 위험이 공사비에 전가되기에, 사업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사비가 적정한지 검증하기가 까다롭다. 특히 설계 변경이나 물가 상승을 이유로 시공사가 공사비 상향을 요구할 때,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 임원진으로서는 인상분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실무 검증제도가 존재하지만 행정 소송이나 민원 제기 등이 얽혀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지고, 늘어난 시간만큼 커진 금융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 몫으로 남는다.

최근 노후신도시 정비사업 시장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다수의 선도지구 추진 단지들이 전통적 조합 방식 대신 신탁 방식을 선택하거나 검토한다는 것이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이란 위탁자인 소유자와 수탁자인 신탁사 간 신임 관계를 바탕으로, 자금력과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소유자 이익을 위해 재산의 개발과 관리를 대행하는 제도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여러 사업장에서 신탁 방식이 각광받는 건 조합 방식의 이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이란 위탁자인 소유자와 수탁자인 신탁사 간 신임 관계를 바탕으로, 자금력과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소유자 이익을 위해 재산의 개발과 관리를 대행하는 제도다. 2016년 관련 법 개정으로 신탁사가 사업 시행자로 참여하는 길이 열렸으나, 초기에는 낯선 제도에 대한 거부감과 대중성 부족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여의도 주요 단지나 목동 등 서울 내 알짜 정비사업 구역 16곳 이상은 물론, 1기 신도시 선도지구들까지 신탁사와 손을 잡으며 시장 선호도가 달라지고 있다.

신탁 방식이 재조명받는 가장 큰 이유는 사업비 조달 부담 경감과 공사비 절감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분양시장 침체와 건설 원가 상승, 대출 금리 인상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신탁사는 든든한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 신탁사가 시행자로 참여하면 신탁 계정으로 직접 사업비를 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탁사 자체의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보증을 받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비교적 저리에 사업비 대출을 끌어올 수 있다. 이렇게 확보된 자금력 덕에 시공사로부터 사업비를 빌릴 필요가 없어지면, 앞서 언급한 분양불 대신 건축 공정률에 따라 비용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기성불’ 방식 도급계약 체결이 가능해진다. 이는 시공사가 짊어질 금융 리스크를 줄여줘 분양불 대비 훨씬 합리적 수준으로 공사비 계약을 체결할 동력이 된다.

신탁사의 전문성은 정비사업의 고질적 병폐인 사업 지연을 사전 차단하는 데 기여한다. 조합설립 인가나 정비구역 지정 등 초기 단계부터 시공 조건, 건축 설계, 비용 내역 등을 시공사와 사전 협의해 불필요한 설계 변경을 예방할 수 있다. 공사 중에 시공사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해도 신탁사의 축적된 데이터와 전문 인력으로 철저하고 빠른 검증이 가능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율 확보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신탁 사업자로 지정받으려면 최소 소유자 과반의 동의와 사업 토지 면적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신탁 등기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내 재산을 남에게 맡긴다는 심리적 거부감과 향후 개발 이익 일부를 수수료로 지급한다는 점이 주민 반대를 부추겨 사업 장기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의율을 원활히 확보하려면 신탁 방식에 대한 오해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신탁사가 사업 과정의 주요 현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실제로는 주민 대표기구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며 구체적인 운영 지침을 인허가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시공사 선정 등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안건 역시 정부의 입찰 시스템을 거쳐 주민총회 투표로 결정되므로 신탁사의 일방적 의사결정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정부도 신탁업자가 시행할 경우 공정한 계약을 위한 표준 계약서와 시행 규정을 마련하도록 법안을 정비했다. 신탁 수수료 조정이나 계약 해지 요건 등 모호했던 지침들이 명확해지고, 조합 방식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업을 완수한 사례가 꾸준히 쌓인다면 소유자들의 불신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령이 개정됨에 따라 신탁 방식이 대중화 될 가능성도 커졌다. 소유자 동의 요건을 충족하면 신탁사가 입안권자에게 정비구역 지정을 직접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또한 신탁사 제안으로 정비구역이 지정될 경우 사업시행자로 동시 지정돼 정비 계획과 사업시행계획을 통합해 처리하는 패스트트랙이 가능해졌다. 노후도 요건을 갖춘 역세권 정비구역의 경우 종상향으로 용적률 완화 특례까지 적용받을 수 있어, 사업성이 담보된 지역을 중심으로 신탁사의 참여 유인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신탁 방식의 제도적 강점들이 고금리 장기화와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실전에서 힘을 발휘한다면, 머잖아 신탁 방식이 정비사업 시장의 대세이자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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