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옥금의 한국에 산다는 것] 근본부터 바꿔야할 계절근로자제도

2026. 10. 5. 00: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지난해 이맘때, 이 연재를 통해 계절근로자 제도의 문제와 브로커들의 개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자체가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최근 정읍시의 계절근로자에 대한 여권압류, 허위이탈신고, 중간착취 방조 의혹에 대해 필리핀 피해 노동자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진정서를 접수했다. 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정읍시의 충격적이고도 부끄러운 행태를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소재였던 정읍시의 사례는 이러한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노동자의 이탈을 막는다는 이유로 지자체가 여권을 장기간 보관하고,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의 거주지를 알면서도 허위이탈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의혹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브로커의 중간착취 등 불법행위가 확인되거나 지자체가 이를 알고도 묵인·방조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철저한 조사와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위반 정도와 책임에 따라 계절노동자 배정 중단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해야 한다. 농촌의 인력 부족이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 농촌 일손 절실해 데려온 노동자
임금 착취, 여권 압수 피해 당해
인권 보호 위해 전면 재설계해야
」

김지윤 기자

계절노동자 제도는 농촌의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가 확대되는 동안 정작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할 장치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노동자를 얼마나 많이 데려올 것인가에만 집중한 결과, 현장에서는 임금 착취와 여권 압수, 불법적인 금품 요구, 사업장 변경을 빌미로 한 협박 등 심각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개별 사건을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제도의 운용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첫째, 계절노동자 제도의 주무 부처를 법무부에서 고용노동부로 전환해야 한다. 이들은 비자를 받아 입국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임금과 근로시간, 산업재해, 사업장 변경 등 노동 현장의 문제를 겪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비자 발급과 인원 배정에 치중된 법무부 중심 관리는 현장의 권리 침해를 막기 어렵다. 출입국 관리는 법무부가 맡되, 노동자 수급부터 근로 감독과 인권 보호까지는 전문성을 갖춘 고용노동부가 책임지는 구조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에 맡겨진 불투명한 송출 구조를 공공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개별 지자체가 해외 지자체와 직접 협약을 맺어 모집하는 방식은 역량 부족으로 인해 불법 브로커가 개입할 사각지대를 만든다.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송출 과정과 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산업인력공단 등 기존 공공기관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모집부터 입국·배치·귀국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고,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비용과 계약 내용을 사전에 명확히 공개하는 국가 차원의 공공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현장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계절노동자도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정당한 휴게시간을 보장받아야 하며,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비자 연장이나 체류 자격, 재입국 여부를 무기로 노동자를 위협하는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여권과 신분증을 강제로 빼앗거나 사업장 변경을 막기 위해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노동자가 피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독립적인 상담과 신고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계절노동자 제도의 목적은 농촌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노동자의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 노동자를 필요한 시기에 데려와 쓰고 돌려보내는 인력으로만 바라본다면 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제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노동자를 얼마나 많이 배정할 것인지가 아니라, 노동자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 데려온 노동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제도라면, 그 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계절노동자 제도의 근본적인 재설계와 책임 있는 관리 체계 마련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