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이별 속설은 법원 탓? 이 노래 때문입니다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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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과 덕수궁은 내가 좋아하는 답사 장소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판매한 첫 번째 기록을 남긴 독일 상인 골샤키 상점이 있었던 곳도 정동이고, 골샤키 상점의 커피 판매 광고를 게재했던 <독립신문> 사옥이 있었던 곳도 덕수궁 남쪽 돌담길 근처였다. 당시 지도에는 덕수궁 남쪽 돌담길을 '공사관거리(Legation Street)'로, 덕수궁 북쪽 돌담길을 '가구거리(Furniture Street)'로 표기할 정도로 근대 문물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곳도 정동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걸으면 역사를 만나고, 어디에서 멈추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정동이고 덕수궁 돌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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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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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11월 5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 돌담길. |
| ⓒ 연합뉴스 |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구의 외교관, 선교사, 의료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정동이었고, 당시 새로 등장한 전차의 서쪽 출발지와 경인선, 경의선 등 기차의 시발과 종착 정거장도 정동에서 가까운 서대문과 염천교 사이에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종 임금이 일본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1896년 2월 서양 공사관이 밀집해 있던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의 무대로서의 정동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1년을 머물렀던 고종은 1897년 2월 덕수궁으로 환궁하였고, 그해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황제로 등극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정동의 덕수궁(당시 명칭은 경운궁)이 대한제국의 명실상부한 정치 일번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판매한 첫 번째 기록을 남긴 독일 상인 골샤키 상점이 있었던 곳도 정동이고, 골샤키 상점의 커피 판매 광고를 게재했던 <독립신문> 사옥이 있었던 곳도 덕수궁 남쪽 돌담길 근처였다. 당시 지도에는 덕수궁 남쪽 돌담길을 '공사관거리(Legation Street)'로, 덕수궁 북쪽 돌담길을 '가구거리(Furniture Street)'로 표기할 정도로 근대 문물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던 곳도 정동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걸으면 역사를 만나고, 어디에서 멈추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정동이고 덕수궁 돌담길이다.
연인과 덕수궁 돌담길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
그런데 덕수궁 돌담길에는 언제부터인지 흥미로운 도시 전설이 하나가 만들어져 내려왔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다. 이런 속설은 언제, 어떤 배경 속에 탄생하였을까? 가장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는 경성재판소 청사의 등장이다. 1928년에 덕수궁 남쪽 돌담길 맞은편 언덕,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 재판소 청사가 문을 열었기 때문에 이혼하러 법원에 가는 부부들이 돌담길을 걸었던 데서 그런 이야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미디어허브 서울> 2018년 6월 15일 자에는 "1928년 경성지방법원, 고등법원 등의 청사 확장 및 이전과 함께 법원 단지가 되어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은 연인은 헤어진다는 풍문을 낳기도 했다"는 글이 나온다. 사실일까?
이 속설의 기원을 알기는 어려우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매우 근거가 부족하다. 이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재판소 '평리원'이 문을 연 것은 1895년이었다. 1898년 9월에 발생한 '고종커피독살기도사건'의 주모자와 관련자 수십 명에 대한 재판이 열렸던 곳도 이곳이었다. 1928년에는 같은 장소에 새로 건물을 신축하고 경성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등 사법 관련 기관이 대거 들어서면서 명실상부한 법원단지가 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20세기 초반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이혼할 때 법원의 결정이 필수적이지도 않았다. 부부가 헤어지기로 결심해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관공서 호적 담당 부서에 제출하면 절차가 완료되었다. 굳이 재판소에 갈 필요가 없었다.
재판은커녕 이혼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였던 아내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법적 보장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한 것조차 매우 늦었다. 1963년에 이르러서다. 서울가정법원이 신설된 해다. 당시 호적법 개정은 협의이혼 신고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개정 이유는 그 취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협의이혼 신고에 대하여 관계 공무원으로 하여금 협의의 진정성립 여부를 심사하게 하여 일방당사자의 자의에 의한 신고로 일어나는 피해를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진정성립 여부를 심사"한다는 것은 당사자의 이혼 의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전에는 배우자 한쪽이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혼신고를 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한 장치가 1963년에 처음 마련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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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이 들어선 이곳에는 과거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 등이 있었다. 서울가정법원은 1989년, 대법원은 1995년 각각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2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앞 시민들이 모인 모습. |
| ⓒ 연합뉴스 |
심지어 1950년대까지 덕수궁 돌담길은 '사랑의 언덕길'로 불렸다. 1956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자유부인>의 동명 원작 소설(정비석, 1954년 발표)에 나오는 내용이다. 높은 담과 우거진 나무 때문에 외부 시선이 가려져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러 찾아오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덕수궁 돌담길이었다. 이별의 돌담길이 아니라 만남의 돌담길이었다. 1900년대 초반에 덕수궁 일대를 표현하는 용어인 '랑데뷰거리'의 연속이었다.
덕수궁 돌담길이 이별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이었다. 정두수 작사, 한산도 작곡의 '덕수궁 돌담길'의 인기였다. 진송남이 부른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비나리는 덕수궁 돌담장길을 우산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길래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밤에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길을 비를 맞고 말없이 거니는 사람
옛날에는 두 사람 거닐던 길을 지금은 어이해서 혼자 거닐까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에"
훗날 <서울신문>은 덕수궁 돌담길 전설이 이 노래의 인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2004년 5월 11일 자).
1980년에는 인기 절정이었던 가수 혜은이가 길옥윤 작사/작곡 '옛사랑의 돌담길'을 발표했다. "아아 지금은 사라진 정다웠던 그 사람이여, 덕수궁의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 나 혼자서 걸어가는 옛사랑의 돌담길"이라는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다.
이 노래가 등장할 즈음인 1979년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민법' 개정으로 1979년 1월 1일부터 협의이혼을 하려는 부부는 정동 소재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게 되었다. 이 법이 발효된 이후 이혼을 앞둔 부부가 이 길을 어색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으면 그 쓸쓸함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덕수궁 돌담길 이별 전설은 등장하고 퍼졌다. 1986년쯤에는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전설이 소개될 정도였다. KBS 라디오 <김희애의 FM 인기가요>의 인기 코너였던 '말괄량이 여고생 비밀일기'였다.
이런 도시 전설이 여고괴담 수준으로 강력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별의 길' 덕수궁 돌담길이 '연인의 길' 이미지를 여전히 공유하고 있었다. 1988년에 발표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는 덕수궁 돌담길을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을 노래하였다.
도시전설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장소에 축적된 역사적 사실과 사람들의 경험, 장소의 이미지, 대중문화가 서로 결합하면서 생겨난다. 복잡한 현실은 이야기하기 쉬운 한 문장으로 압축되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서로 전달하면서 전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덕수궁 이별 전설은 이런 도시전설 모습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매우 재미있는 역사 교육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도시전설은 관광자원이나 문화자산으로 활용될 수는 없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독일 하멜른은 1284년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사라졌다는 도시 전설을 도시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만든 좋은 사례다. 피리 부는 사나이 복장의 가이드 투어, 피리 부는 사나이 박물관, 야외극, 뮤지컬 등이 개발되었다.
도시전설의 진위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스토리텔링의 소재로서의 가치가 중요하다. 덕수궁 돌담길 입구 안내판에 "덕수궁 돌담길, 정말 연인이 걸으면 헤어질까?"라는 문구를 넣어 궁금증을 유발하고, 마지막에는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길에는 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가 넘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로 마무리하는 안내판을 설치하면 어떨까? 정동극장에서 시작된 난타처럼, 덕수궁 돌담길 전설을 이용한 뮤지컬이나 연극 하나쯤 만들면 어떨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의 저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 외(2022) <정동> 서울정동협의체. 이길상(2025)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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