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트럼프 지지 팻말이 사라졌다”…흔들리는 ‘트럼프 컨트리’

임성수 2026. 10. 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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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 오랫동안 트럼프 지지 팻말을 현관에 세워놓던 집이 있었다. 며칠 전 지나가는데 그 팻말이 사라졌더라. '마침내(Finally)'라고 생각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매컴 카운티 워런의 한 월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꺼내던 백인 중년 여성 잰은 동네 분위기를 전하며 "트럼프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미시간주에서는 1.4%포인트 차로 피 말리는 신승을 거뒀는데 매컴 카운티에서 13%포인트 격차로 압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일 매컴 카운티 세인트클레어쇼어에서 열린 캔버싱(canvassing·유권자 방문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여성 자원봉사자 켈리 캐시머(44)는 "동네 마당마다 꽂혀 있던 트럼프 팻말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제 지친 것 같다"며 "매컴 카운티는 항상 공화당 지역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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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포드 픽업 트럭 공장에서 지난달 30일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디어본=임성수 특파원

“우리 집 근처에 오랫동안 트럼프 지지 팻말을 현관에 세워놓던 집이 있었다. 며칠 전 지나가는데 그 팻말이 사라졌더라. ‘마침내(Finally)’라고 생각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매컴 카운티 워런의 한 월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꺼내던 백인 중년 여성 잰은 동네 분위기를 전하며 “트럼프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휘발유 가격과 식료품 가격을 거론하며 “그(트럼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디트로이트 교외 매컴 카운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미시간주는 늘 요동치는 ‘스윙 스테이트’지만 매컴 카운티만은 트럼프의 텃밭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부터 세 차례 모두 매컴 카운티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미시간주에서는 1.4%포인트 차로 피 말리는 신승을 거뒀는데 매컴 카운티에서 13%포인트 격차로 압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매컴 카운티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자동차 산업 노동자와 백인 블루칼라 유권자 상당수가 트럼프 쪽으로 이동하면서 ‘트럼프 컨트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매컴 카운티에서도 균열의 목소리가 감지됐다. 

매컴 카운티를 비롯해 디트로이트, 디어본 등에서 1박 2일간 만난 미시간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의 정책, 특히 경제 정책에 실망한 목소리가 뚜렷했다. 월마트에서 시설관리 기술자로 일하는 흑인 남성 빌(43)은 자신이 트럼프 지지자라고 밝혔지만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는 주유소에서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본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주유소에서 ‘인생의 결정’을 한다. 휘발유를 10달러를 넣을지, 5달러만 넣고 나머지 5달러는 식료품을 사는 데 쓸지 결정해야 한다.” 빌은 “경제가 더 나빠지고 있다”며 “트럼프 첫 임기 때가 나았다. 그때는 도심이나 빈민가까지 정책 효과가 있었고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은 지지층도 방어하기 버거운 모습이었다. 월마트 인근에서 성조기를 들고 산책 중이던 트럼프 지지자 가이 케어처(60)는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로 이민을 꼽으며 “미국에 오려면 교육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서 이 나라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경제가 나빠졌다는 지적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즉답 대신 “미국은 자기 나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나라들의 일에 너무 관여하고 있다”며 외교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지난달 30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의 포드 루지 센터 외관. 이곳에서는 미국 픽업 트럭의 상징인 F-150이 조립 생산된다. 디어본=임성수 특파원

민심의 동요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됐다. 지난달 30일 디트로이트 서쪽에 위치한 디어본의 포드 루지 센터(Rouge Center). 미국 픽업 트럭의 상징인 ‘F-150’을 조립 생산하는 이곳의 노동자들도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공장 문을 나서던 흑인 여성 노동자 알리시아(58)는 "식료품 가격이 정말 많이 올랐다. 이러다간 정말 우리가 먹을 음식을 길러야 할 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포드에서만 30년을 일했다는 그의 관심사는 거창한 정치 구호보다 당장의 일자리와 생활비였다. 그는 중간선거 최대 이슈에 대해 “일자리, 고용 안정”이라며 “지금 계속 관세 문제가 있지 않느냐.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해고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재건을 내걸었다. 캐나다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내년 1월 1일부터 50%로 두 배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포드 공장의 백인 노동자 마이크(45)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나는 그가 노동자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돈을 버는 사람들, 상위 계층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캐나다와의 무역 전쟁이 모든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올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캐나다와 부품을 주고받기 때문에, 그게 막히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40대 흑인 노동자 브랜든 역시 캐나다와의 무역 갈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부품이 얼마나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며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음 주에는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포드의 F-150은 디어본에서 최종 조립되지만 핵심 부품은 캐나다에서 국경을 건너 넘어온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었다는 백인 노동자 조시 라이트(45) 역시 이번 선거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로 “노동자 안전과 시간당 임금(hourly pay)”을 꼽으며 “우리는 경제, 더 나은 물가를 기대했다. 그런데 아직 현실에 반영되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포드에서 27년간 일한 그는 “주식시장은 올랐을지 모르겠지만 밑바닥에서는 분명 고통을 느끼고 있다”며 “기름값과 음식값, 그런 것들이 다 쌓이고 있다. 주식시장이 좋아 보이는 것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디어본, 매컴 카운티 등에서 만난 유권자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이 케어처, 알리시아, 잰과 에밀리, 빌, 마크 포튼, 켈리 캐시머. 디트로이트·디어본=임성수 특파원

미시간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최대 접전지 중 하나다. 특히 연방 상원의원 선거는 공화당의 마이크 로저스 후보와 민주당의 압둘 엘사예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난 1일 매컴 카운티 세인트클레어쇼어에서 열린 캔버싱(canvassing·유권자 방문 선거운동) 현장에서 만난 여성 자원봉사자 켈리 캐시머(44)는 “동네 마당마다 꽂혀 있던 트럼프 팻말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제 지친 것 같다”며 “매컴 카운티는 항상 공화당 지역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 미시간주 컴 카운티 세인트클레어쇼어의 한 주택가에 지난 1일(현지시간)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압둘 엘사예드를 지지하는 팻말이 꽂혀 있다. 임성수 특파원

인근 웨인카운티에 사는 은퇴 의사 잰(66)은 이날 처음으로 캔버싱에 나왔다. 그는 “나는 의료 시스템이 오래 전부터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엘사예드가 내세우는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전 국민 의료보험)’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엘사예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나보다 더 급진적이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함께 나온 에밀리(38) 역시 15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의료 체계의 현실을 봤다고 했다. 그 역시 엘사예드의 의료 정책을 지지하며 “엘사예드를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주류 민주당원이다. 적어도 내가 자라면서 배운 ‘주류 민주당 정책’은 그런 것이었다”고 옹호했다.

공화당 인사들도 생활비 문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컴 카운티의 공화당 외곽 조직 ‘미시간 매터스(Michigan Matters)’ 사무실에서 만난 마크 포튼(79) 의장은 “생활비 등 비용 문제 때문에 우리가 일부 지지를 잃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휘발유 가격 인상이 트럼프의 잘못은 아니라면서도 “사람들은 주유소에 가서 기름값을 보고 그냥 질려버린다”고 했다. 

미국 미시간주 매컴 카운티의 공화당 지지 조직인 ‘미시간 매터스’의 사무실 모습. 자원봉사자들이 선거 홍보물을 준비하고 있다. 임성수 특파원

미시간 매터스는 매컴 카운티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지지 팻말과 홍보물을 나눠주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포튼 의장은 상원선거 승리를 자신했다. 그는 “나는 마이크 로저스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며 “흥미로운 선거가 될 것이다. 로저스를 지지해서라기보다 민주당 후보에 반대해서 투표하는 표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했다.

매컴 카운티의 표심이 선거 당일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거리에서 하나둘 사라지는 트럼프 팻말을 증언하는 목소리,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트럼프 컨트리’의 변화는 서서히 감지되는 듯했다.

디트로이트·디어본(미시간주)=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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