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회사 3곳 짬짜미에 손배 소송, '공방'이 시작됐다

정태원 2026. 10. 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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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참사,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 개인 정보 유출 사건.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기업의 행위로 매우 많은 사람이 똑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피해 복구는 개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가'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제도가 집단소송입니다.

근거 없는 대규모 소송은 초기에 걸러내고, 실제 피해를 본 사람은 비용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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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ABC]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 보여주는 형식적인 피고 답변의 '무게감'

가습기 살균제 참사,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 개인 정보 유출 사건.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기업의 행위로 매우 많은 사람이 똑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피해 복구는 개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가'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제도가 집단소송입니다. 현재 각종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LKB평산집단소송센터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아직은 생소한 집단소송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정태원 기자]

▲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판매업자에 대해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가격변경 현황 보고명령 등 시정명령을 내리고, 총 408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12일 밝혔다. 제당사 3곳은 지난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회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 변경의 폭과 시기 등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CJ제일제당의 브랜드 백설과 삼양사의 큐원 등 설탕 제품이 진열돼 있다. 2026.02.12. xconfind@newsis.com
ⓒ 뉴시스
2026년 4월 21일, 지방의 한 제과업체를 대리해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이른바 제당 3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습니다. 설탕 담합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제과업체라면 설탕 못지않게 밀가루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이 업체가 사용하는 밀가루는 호주산 유기농 제품이었습니다. 국내 제분업체의 담합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밀가루는 빼고, 설탕 하나만 들고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석 달쯤 지났을 무렵, 평소 자주 가던 중식당 사장님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중식당은 밀가루와 설탕, 전분을 모두 많이 씁니다. 공교롭게도 세 품목 모두 담합이 적발된 품목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주변 식당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한 분이 관심을 보였고, 또 다른 분이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한 분, 두 분 모여 어렵게 열두 분이 됐습니다.

2026년 7월 두 번째 소장을 냈습니다. 이번에는 제당 3사에 제분업체 7곳, 전분 제조사 4곳까지 상대방이 됐습니다.

형식적인 피고 답변서... 그 무게감

첫 제과업체 사건에서 제당 3사는 모두 이른바 형식적 답변서를 냈습니다.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해 달라.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밝히겠다"는 정도의 답변입니다. 관련 사건의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출됐고, 재판기일은 추정됐습니다. 소장은 시작됐지만 재판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한 업체가 본격적인 준비서면을 냈습니다. 취지를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원고는 우리 회사에서 설탕을 직접 산 것이 아니라 도매업체를 통해 구입했습니다. 담합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손해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증명하십시오.'

변호사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실제 손해액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설탕값이 올랐다고 해서 오른 금액 전부를 담합으로 인한 손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국제 원당 가격이 올랐을 수도 있고, 환율이나 운송비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을 하나씩 가려내고 나면 결국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담합이 없었다면 설탕 가격은 얼마였을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년간의 가격과 거래자료를 분석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의 감정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다시 비용 문제가 생깁니다. 몇백만 원, 많아야 몇천만 원의 손해를 돌려받기 위해 소송에 나선 소상공인에게 감정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원고의 어려움... 그 무게감
▲  2026년 7월 7일, 과자·빵·음료·빙과·맥주 등 먹거리는 물론 제지·철강 등 산업용 원재료로 쓰이는 전분·전분당 가격을 7년 넘게 짬짜미한 업체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상㈜, (유)사조씨피케이, ㈜삼양사, 씨제이제일제당㈜ 등 4곳이 7년 5개월에 걸쳐 식품업체, 제지사, 철강사 등 사업자 간 거래(B2B)에 적용되는 전분·전분당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총 7천 476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빵.
ⓒ 연합뉴스
중식당 열두 곳 사건도 비슷한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피고들은 모두 형식적인 답변서를 제출했습니다.

앞으로 '도매상을 통해 구입했으니 직접 거래관계가 없다', '손해가 있다면 구체적인 액수를 입증하라'는 주장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단계에 이르면 다시 현실적인 문제가 남습니다. 손해액은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감정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입니다.

열 두 곳 모두 소상공인입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법리보다 비용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몇 년 뒤 받을지도 모르는 배상금보다 식당 사장님들에게는 당장 내일의 장사가 더 급합니다. 가게 문을 열고, 식재료를 사고, 직원 월급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제야 다른 법무법인들이 왜 이 분야에 선뜻 들어오지 않는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됐습니다. 피해업체는 많아 보여도 실제 원고 한 사람을 법정까지 데려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더딥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해도 그 돈이 피해업체에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자가 형사처벌을 받아도 피해자의 손해가 저절로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잃은 돈을 돌려받으려면 결국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개별 업체의 피해액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데, 소송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
▲  2026년 5월 21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및 제268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밀가루 담합 조사결과 및 대응방안을 보고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집단소송제도를 떠올리게 됩니다. 미국과 유럽에는 다수 피해자가 함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여러 제도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제가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담합 피해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제도는 아직 없습니다.

일반 집단소송제 도입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턱을 무작정 낮추자는 뜻은 아닙니다. 근거 없는 대규모 소송은 초기에 걸러내고, 실제 피해를 본 사람은 비용 때문에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이 어디에서 멈추게 되는지, 이제는 제도의 문턱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송은 법정 안에서만 진행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백만 원의 손해 때문에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소송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함께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비용과 입증 부담을 나눌 수 있고, 혼자라면 포기했을 문제를 법정에서 따져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사건을 계속 가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제과업체 한 곳과 중식당 열두 곳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소장을 내야 하고, 누군가는 첫 번째 위임장에 이름을 적어야 합니다.

집단적인 권리구제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이 '나도 피해를 봤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옆에 또 한 사람이 서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열 두 곳에서 멈출지, 스무 곳을 넘어 백 곳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결과를 미리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여기까지 온 사람들과 함께 한 걸음 더 가보려고 합니다.

* 필자 소개 : 군법무관과 검사로 20년간 공직에서 활동한 후 현재는 변호사로 집단소송, 기업자문, 형사사건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 담합 등 다수 피해자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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