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법' 언급한 트럼프, 200년 이어진 군사권 논쟁

최경식 2026. 10. 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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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내란법(Insurrection Act)' 발동 가능성을 다시 언급하면서 대통령의 군사력 국내 투입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주 정부와 대립하거나 이민 문제, 대규모 시위, 선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란법이 거론될 경우,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권한 관계, 시민의 집회·표현의 자유, 군의 국내 정치 개입 문제가 동시에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란법을 언급했다는 것과 실제로 법을 발동했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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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기자의 히스토리 26] 내란법 역사와 논쟁의 초점

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국내와 해외의 주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말>

[최경식 기자]

▲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 치안 상황과 관련해 내란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AI 생성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내란법(Insurrection Act)' 발동 가능성을 다시 언급하면서 대통령의 군사력 국내 투입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공개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광범위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상사태 선포를 배제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도 확정하지도 않는다"고 답했다. 실제 법을 발동한 건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비상권한이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서 내란법은 단순히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다. 주 정부의 치안 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되거나 연방법 집행이 중대한 저항에 부딪히는 등 일정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 대통령이 연방군이나 연방화된 주방위군을 국내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다.

1790년대부터 시작된 대통령의 '군사권'

내란법의 뿌리는 미국 건국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90년대 신생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법 집행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1794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세금 정책에 반발해 무장 저항이 일어난 '위스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민병대를 동원했다.

이후 1807년 법률 개정을 거치면서, 대통령이 미국 영토 내에서 연방 법률의 집행을 방해하는 반란이나 폭력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확대됐다. 남북전쟁과 재건시대를 거치면서 관련 법률은 다시 정비됐고, 현재의 내란법 체계로 이어졌다.

특히 1870~1871년 재건시대에는 남부에서 흑인 유권자와 시민들을 공격하던 폭력단체를 제압하고 연방의 민권법을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즉 내란법은 처음부터 단순한 '시위 진압법'이라기보다 연방정부의 법률을 주 정부나 무장세력의 저항 속에서도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온 셈이다.

20세기 들어 내란법의 의미가 크게 부각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민권운동이다.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에서는 흑인 학생 9명의 공립학교 입학을 둘러싸고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충돌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연방 법원의 학교 통합 명령을 집행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보호하기 위해 연방군을 투입했다.

1960년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흑인 학생 제임스 메러디스의 미시시피대 입학 과정에서 연방정부의 권한을 행사했고, 린든 존슨 대통령 역시 민권운동 과정에서 연방군과 주방위군을 활용했다. 이 사례들은 내란법이 한편으로는 주 정부의 저항으로부터 헌법상 권리를 보호하고 연방법을 집행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내란법의 역사가 항상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만 전개된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철도 파업 등 대규모 노동분쟁과 사회적 혼란을 진압하기 위해 연방군이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일부 파업과 폭력 사태를 연방의 법 집행과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내란법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공질서 유지와 시민의 자유 사이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현대 미국에서 내란법이 실제로 발동된 가장 최근 사례는 1992년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흑인 운전자 로드니 킹을 폭행한 경찰관들이 무죄 평결 받자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방화와 약탈 등이 잇따르면서 지방정부의 치안 능력만으로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졌고,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게 연방 지원을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따라 연방군과 연방화된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내란법이 실제로 발동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다.

내란법을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은 내란법과 '계엄령'을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평상시 연방군이 일반적인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제한하는 '포제 코미타투스법(Posse Comitatus Act)'이 있다. 내란법은 이런 제한에 대한 중요한 예외로 일정한 국내 비상상황에서 군이 법집행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내란법이 발동됐다고 해서 군이 민간정부를 대신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군 역시 헌법과 연방법의 적용을 받는다.

트럼프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내란법이 미국 대통령에게 군사력 투입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주 정부와 대립하거나 이민 문제, 대규모 시위, 선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란법이 거론될 경우,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권한 관계, 시민의 집회·표현의 자유, 군의 국내 정치 개입 문제가 동시에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란법을 언급했다는 것과 실제로 법을 발동했다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현재 논란의 핵심은 대통령이 실제 군사력 투입을 결정했느냐가 아니라, 미국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강력한 비상권한을 대통령이 다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데 있다.

1790년대 신생 연방정부의 질서 유지에서 출발한 내란법은 200년 넘게 미국의 정치·사회적 위기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위스키 반란, 남북전쟁 이후의 재건, 민권운동, 1992년 LA 폭동을 거치면서 그 역할도 달라졌다. 결국 내란법의 역사는 '미국에서 대통령의 국가 질서 유지 권한과 시민의 자유,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권한이 어디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역사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이 오래된 논쟁을 다시 미국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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